[법화경]제17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2007.10.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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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분별공덕품이란 분별을 함으로서 얻어지는 이익을 가르치는 품이다. 무엇을 분별한다는 말씀인가? 이 품의 내용으로 보면 법화경과 다른 모든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과 분별할 수 있는 이가 얻는 이익이다. 법화경 중에서도 부처님의 수명이 무량무변한 아승지겁이라고 하는 말씀에 가장 기쁜 환희심을 내는 이가 무량공덕을 얻는다고 하는 것을 설하는 품이다.

이 「분별공덕품」에서는 첫째, 지난 주 여래수량품에서 부처님이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니라. 그리고 수명이 한량없는 아승지겁에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않느니라.” 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도 놀라지 아니하고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마음을 가졌던 “6백 80만억 나유타 항하 모래 수 같이 많은 중생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나고 죽는 일이 없어지고, 또 그 천 배의 보살마하살은 문지(聞持)다라니를 얻어 한 번 들은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여 사물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며, 한 세계의 미진수(微塵數) 만큼 많은 보살마하살이 아무리 어려운 일에 당하여도 즐겁게 설명할 수 있는 걸림 없는 변재(辯才)를 얻었으며, 또 한 세계의 미진수 만큼 많은 보살마하살이 백천만억 무량한 선(旋)다라니를 얻어 일체 집착을 돌려 공(空)도리에 들었다. 또 어떤 보살은 물러나지 않는 법륜(法輪)에, 혹은 청정한 법륜에, 혹은 태어나고 죽는 것을 8번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어떤 이는 4번, 3번, 2번, 혹은 1번 다시 태어나는 동안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었다.  
부처님의 수명이 영원하단 말씀 듣고, 이를 믿어 이해하는 모든 중생들이 자기들도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여 기쁨으로 공양하고, 부처님의 이름이 널리 들려 많은 중생에게 이익이 되고 많은 선근을 갖추어 보리심을 발하게 된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부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팔십만억 나유타 겁 동안에 걸쳐 지혜바라밀을 빼놓고, 다섯 가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바라밀을 행하는 공덕은 부처님의 수명이 영원하다는 말씀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남에게 전하여 얻어지는 공덕에 비유하면 백 분의 일, 천 분의 일, 백천만억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숫자로나 비유로도 능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부처님의 수명이 무한하고 길고 먼 것을 듣고 그 말의 뜻을 알면 이 사람이 얻는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 능히 여래의 위없이 높은 지혜를 일으키리라.” 라고 하셨다.
또 “이 경을 듣고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듣게 하고 자신도 간직하고 남에게도 간직케 하며, 자신도 쓰고 다른 사람에게도 쓰도록 하며 또는 꽃과 향과 영락·당번·증개·향유·소등으로 법화경에 널리 공양하면, 이 사람이 받는 공덕은 한량없고 가없어 결국에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루게 되리라.” 라고 하셨다.
그리고 또 법화경을 믿고 이해하고 읽고 외우고 쓰고 남을 위해 설해주는 이와 같은 사람은 부처님을 위해 탑과 절을 세우거나, 승방(僧坊)을 짓고 의복·음식·침구·탕약 등 네 가지를 스님들께 공양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법화경을 수지독송하는 선남자 선여인은 이미 탑을 세우고 승방을 지어 많은 스님들께 공양한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라고 하셨다. 이 부분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阿逸多, 是善男子 善女人不須爲我復起塔寺及作僧坊 以四事供養衆僧 所以者何 是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是經典者 爲已起塔造立僧坊供養衆僧  

‘여래께서 무량한 세월 전에 이미 깨달으심을 얻으셨고 앞으로도 무량한 수명을 가지셨다’는 말씀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던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부정하고 오직 법화경만이 있다는 분별심을 갖는 자만이 정각을 이룰 수 있다고 하시고, 법화경 이외를 소의 경전으로 하는 탑, 절, 승방을 세우는데 가담해서도 안 되고 시주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다음의 문장에서는 이경을 수지 독송할 뿐만이 아니라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행하면 그 공덕은 가장 수승하여 한량없고 가없으니 비유하면 허공의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상하가 한량없는 것과 같아 일체종지(一切種智)에 빨리 이르게 되리라고 하여, 법화경을 수지독송하면서 육바라밀을 닦을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러한 법화경의 경구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다.”고 할 수 없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은 불멸(佛滅) 후 약 300년경에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가 대결하는 가운데 대중부(大衆部)에서 찬술(撰述)한 것이란 심정을 갖게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고, 부처님의 화술(話術)은 분리(分離)적이 아니고 화합(和合)적이셨다. 이러한 경구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집에서 법화경만 읽으면 절게 나가지 않아도, 절에서 하는 불공에 참여하지 않아도, 법문을 듣지 않아도 모든 선덕(善德)을 다 쌓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여 절에서 대중과 함께하는 불공이나 법회에 참여함으로서 얻어지는 공덕을 소홀히 생각하여 대중과 화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염려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