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제6 수기품(授記品)

2007.10.2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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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 수기품(授記品)

세존께서 마하가섭, 수보리, 마하가전연, 대목건련에게 차례로 수기를 주셨다. “마하가섭은 오는 세상에 반드시 3백만억 여러 부처님을 친견하고 받들며 공양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며, 널리 여러 부처님의 한량없는 큰 법을 설하고 최후의 몸으로 성불하리니, 그 이름은 광명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라 하리라. 그 나라의 이름은 광덕(光德)이요, 겁의 이름은 대장엄(大莊嚴)이며, 부처님의 수명은 12소겁이요, 정법(正法)이 세상에 머물기는 20소겁이며, 상법(像法)도 또한 20소겁을 머무르리라.” 하셨다.
더럽고 추악함이 없고 보배로 장엄된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이다. 이 세계에는 한량없이 많은 성문 연각 보살승이 있어 마(魔)들이 부처님께 귀하여 부처님 법을 보호하고 지키니 마가 없는 세계이다.
수보리, 마하가전연, 대목건련도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수기를 받았다.

「수기품」에서 수행자가 수많은 겁을 수행하여 첫째 부처가 될 자격으로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와 출세간의 일을 훤히 알아서 바르게 판단하고 행할 수 있어, 모든 사람들의 스승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을 조절하거나 억제할 수 있어, 만인을 이롭게 하여 만인으로부터 응당 공양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선인(善因)은 선과(善果), 악인(惡因)은 악과(惡果)를 낳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이다. 부처님을 따라 수많은 겁 동안 퇴굴(退屈), 만족, 안심, 게으름, 자만(自慢) 등을 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수도(修道)하는 정진력으로 마침내 성불하는 수기를 받게 되었다.
셋째 부처님께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하는 공덕이 무량하여 마침내 성불하는 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스승을 섬기는 예이다.
넷째 수기(授記)를 갈망하는 마음의 중요성이 더 없이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마하가섭과 같이 수많은 대덕스님들을 찾아 ‘친견하고 받들며 공양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는 사람은 일념으로 부처님을 닮고자 하는 신념이 정립된 수행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한다면 이 사람에게 얻어지는 것은 저절로 삿(邪)된 기운이 점점 소멸되어 과거세에 지은 모든 악업(惡業)이 힘을 잃고 점차 사라지는 효과를 얻어 부처님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훌륭하신 스님들의 생각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하가섭이 부처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거세에 지은 모든 악업으로 인한 사기(邪氣)를 완전히 소멸하기 위해서는 “오는 세상에 반드시 3백만억 여러 부처님을 친견하고 받들며 공양”함이 필요함을 부처님은 예언하시고 마하가섭이 조금도 어김없이 그렇게 할 것임을 확신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사기(邪氣)를 정기(正氣)로 바꾸어 성불하게 하는 방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제5 약초유품(藥草喩品)에서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를 맞고, 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하더라도, 종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같은 종류라고 하더라도 모양과 성질이 달라 사용하는 용도도 다르듯이 중생에게도 종류가 다르고, 같은 종류라 하더라도 근기와 성질이 다르니 그들의 필요에 응하여 법을 설할 수 있어야 함을 시사하셨다.
그리고 하근기 중생은 계율을 잘 지키고 선행을 많이 하여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고, 중 근기 중생은 사제(四諦)을 배우거나 선정수행을 하여 자기의 욕심과 분노를 극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며, 상 근기 중생은 자기 극복을 할 수 있는 수행을 하면서도 중생들을 부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살이라 했다.
제6 수기품(授記品)에서는 마하가섭, 수보리, 마하가전연, 대목건련에 수기를 주셨다. 성문, 연각, 보살승이 되었다고, 혹은 아라한이 되었다고 자만하지 말고 부처가 될 때까지 삼백만억 부처님들께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할 것을 주문하셨다. 수많은 겁을 통해 불문(佛門)안에 있으면 결국 성불하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