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행입문 - 강의 4

2007.02.27 18:25

현성스님 Views:9557

강의 4
지난 주에 자심관(慈心觀)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계(限界) 파제(破除)를 수행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한계 파제를 위하여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 미워하거나 원수 같은 사람을 각각 한 사람 씩 네 사람을 정하여 돌아가면서 자애심을 전하는 수행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수행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좋아함이 사라지고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존경함이 사라지고 미워하거나 원수 같은 사람에게서 미워하는 마음 원수같이 생각하는 마음이 사라져 4사람 모두를 평등하게, 분별하는 마음 일어남이 없이 관할 수 있을 때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좋아하고 싫어하여 분별하던 한계가 파하여 제거되었다고 하여 한계 파제라고 합니다. 이 경험은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수행을 통해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원인은 내가 좋아하였던 사람에게 내가 좋아할 만한 성품이 있어 내가 좋아한 것이 아니요 내가 싫어하였던 사람에게 내가 싫어할 성품이 있어 내가 싫어한 것이 아니라 우연한 인연으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고 우연한 인연으로 내가 그 사람을 미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전에 어떤 사람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도와 주었습니다. 자연히 나에게는 이 사람이 좋아 보이고 만나면 반갑습니다. 똑 같이 10년 전에 어떤 사람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를 놓았습니다. 자연히 나는 이 사람을 싫어하고 만날 때마다 미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도 변하고 그 사람도 변하고 나의 생활환경도 그 사람들의 생활환경도 변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때 알았던 친구는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어졌어도 그 때 image만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는 눈도 이와 같습니다.
자심관(慈心觀)에서 하는 이러한 관법을 통해서 그 동안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람에 대한 상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신이 실재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닌데 한 순간의 인연으로 나에 의하여 그 사람이 좋은 사람도 되고 나쁜 사람도 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관법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있었던 수 많은 허상들이 현재의 나의 생각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과거에 있었던 모든 허상을 지워버리는 작업입니다. 나의 판단은 이 찰나에 내가 감지하는 느낌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은 과거에 의하여 지배받을 것이 아니라 현재는 현재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단체의 회원이나 혹은 직장의 동요들 사이에도 오랜 세월 사기는 동안에 좋은 일 나쁜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의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경우들이 흔히 있습니다. 이것은 본 수행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나간 세월에 의한 분별심이고 편견이라는 것입니다. 지나간 세월에 의한 분별심을 버리면 현재 우리가 선입견 없이 직관하는 데로 그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분별심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수행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의하여 현재 나의 판단이 지배받으면 비현실적인 판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에 의한 판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판단하는 기준이 세워질 때 우리는 현재에 살면서 항상 현재에 맞게 자기를 update 쇠신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나이 드신 분들의 판단의 기준이 과거에 있기 때문에 신세대와의 생각의 차이가 깊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살아도 안되고 미래에 살아도 안됩니다. 우리는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전 시간에 코끝에 나의 영상을 두고 코끝을 관하면서 나에게 정신적 고통이 없게 하여 주소서라고 염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코끝을 관하면서 염송을 하게 되면 집중력이 길러집니다. 집중력이 길러진다는 것은 산만한 마음을 정리하여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 잘 진행된다는 뜻입니다. 산만한 마음이란 이 생각 저 생각이 산만하게 일어나 내 마음을 어디론가 끌고 다니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나를 과거로도 대리고 다니고 미래로도 대리고 다니면서 나로 하여금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혹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근심 걱정 공포 슬픔에 잠기게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나로 하여금 우울증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현재 여기에서 살게 하지 않고 과거 어느 곳 혹은 미래 어느 곳에서 환상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방황하는 나의 생각들은 현재를 등한시하는 비현실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정신 집중을 연마하는 수련은 정신 집중하는 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과거와 미래에서 일으키는 환상적인 생각을 돌려 현재 여기의 문제에 주의를 집중하게 하는 현실적인 득이 있게 하는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가볍고 편안하게 하는 득이 있습니다.      
비희사심관(悲喜捨心觀)

비심관(悲心觀 Karuna-Bhavana)
비심관(悲心觀)은 현재 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을 건지기 위한 관법입니다. 위에서 설한 바와 같이 자애심을 배육하였으면 비심관(悲心觀) [비범주(悲梵住 the sublime abiding of compassion)라고도 함]을 수행함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비심관(悲心觀)을 배육하기 위하여 먼저 고통받는 중생을 같은 성(性)이고 살아 있는 중생 중에서 택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 중생을 위하여 비심(悲心)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의 고통의 원인도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소송에 의한 괴로움, 사업 실패, 학업 실패, 혹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등 다양합니다.
그 고통받는 사람의 영상을 코끝에 안치하고 그 코끝 영상을 관면서 ‘이 사람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하는 주문을 외우며  비심(悲心)을 배육합니다.
이 때 코끝에 세우는 영상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상을 심안(心眼)으로 보기도 하고 그가 그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우게 되면 몸에서 비심력(悲心力)이 솟아나 비심(悲心)의 작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들의 마음이 흥분하였을 때 그 마음의 흥분이 몸에 전파되어 몸이 흥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과거에 있었던 어떤 슬픈 영상을 떠올릴 때 그 마음의 슬픔이 몸에 전파되어 몸이 슬픈 모습을 갖게 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이 심안(心眼)으로 고통의 영상을 관하면서  ‘이 사람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면 몸에서 비심력(悲心力)이 작동하여 우리들의 몸에 고유하게 있는 면역성으로 하여금 작용을 더욱 활발하게 합니다. 그리고 심안(心眼)으로 고통에서 벗어난 행복한 모습을 관 함으로서 비심력(悲心力)이 작동해야할 방향을 제시하여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수행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하여 하는 사이에 사정이 많이 좋아 질 수 있습니다. 내 밖에 있는 사람에게 비심력(悲心力)을 전파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 수행을 하는 목적이 선정을 성취하는데 있기 때문에 위에서 설한 취상(取相)과 사상(似相)이 나타날 때까지 반복하여야 합니다.
행복하여 고통 받는 모습이 없는 중생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으면 윤회의 과정에서 삼악도에 다시 태어날 위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은 자기가 지은 악업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중생은 비심관(悲心觀)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병사(老病死)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각한 후에 자심관(慈心觀)에서 한 것과 같이 자신,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그리고 원적(怨敵) 중 한 사람 씩 택하여 개인들 사이에 차별이 제거되고, 이 네 사람에 대하여 무분별심이 성취되고, 각각의 경우에 취상과 사상을 성취할 때까지 수행을 계속한다.

희심관(喜心觀 Mudita-Bhavana)
희심관(喜心觀)(희범주(喜梵住))을 수행하기 위하여 같은 동성(同性)의 사람이고 살아 있고 행복한 사람 중 당신이 좋아하고 다정한 사람을 선택하여야 한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 가운데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당신을 행복하고 기쁘게 만드는 사람을 선택하라.
그 행복한 사람의 영상을 코끝에 놓고 코끝을 관하면서 ‘그가 성취한 번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도록 기원합니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희심을 배육하여야 한다. 그리고 난 후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그리고 원적(怨敵)에 대하여 똑 같은 방법으로 이들 개인 사이에 차별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때까지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난 후 우주의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택하여 희심관(喜心觀)을 배육하라.

사심관(捨心觀 Upekkha-bhavana)
사심관(捨心觀)을 개발하기 위하여 살아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을 선택하여 자심관(慈心觀) 비심관(悲心觀) 희심관(喜心觀) 각각을 그 사람에 대하여 수행한다. 그리고 나서 사심관(捨心觀)을 배육한다. 사심관(捨心觀)을 배육하기 위하여 자기의 감정을 성찰한다. 주로 좋아하고 싫어하거나 슬프고 기뻐하는 등 정(情)에 집착하는 것을 관하여 이들의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일이 잘 되어갈 때 기쁨에 집착하여 오만하여 진다든지 낭비하지 않고 일이 잘 못될 때를 대비해서 비축하고 또 잘 못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정밀하게 자기 검사를 하라는 명(命)으로 생각하고 실수하지 않게 주의하여 나가고, 일이 잘 못되어갈 때 낙심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않고 신중하게 심사숙고하면서 잘 못된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돌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도록 하는 마음을 관하는 법이다. 이렇게 하면 일이 잘 된다고 기쁨에 넘치는 일도 없고 잘 못된다고 실망에 빠지는 일도 없이 점차 마음은 평준화되고, 또 일이 잘 되고 잘 못되는 그 폭(幅)이 점차 좁아지면서 계속 바른 길로 성장하여 가게 되는 것이다.
수행하는 관법(觀法)은 사심(捨心)이 가장 평안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기초로 자기가 선택한 사람의 영상을 코끝에 안치하고 그 영상이 있는 코끝을 관하면서 ‘이 중생은 자기 업의 소산이다’라고 주문을 외우면서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사심(捨心) 업을 짓도록 그 사람에 대한 사심(捨心)을 배육하여야 한다.
그 다음에,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 그리고 원적(怨敵)에 대한 사심관(捨心觀)을 배육하여 이들 개인 사이에 차별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사심(捨心)을 배육 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취상(取相)과 사상(似相)을 성취하고 그 정력(定力)으로 무한한 우주 안에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취하여 위에서 설한 바와 같은 방법으로 사심관(捨心觀)을 배육한다.
이것이 사범주(四梵住) 개발을 완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