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수 행 법 - 2. 오온(五蘊)

2007.02.24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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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온(五蘊)

고통의 근원은 우리들 각자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들 자신의 현실을 이해 할 때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알라”라고 모든 현인들이 충고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본성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나 이 세계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들 자신에 관하여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자신이 남과 다른 특수성이 있음을 알지만, 우리들 자신에 대하여 아는 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깊은 내면세계에서는 우리들 자신을 전혀 알고 있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본성을 검사함에 의하여 인류의 현상을 검사하였습니다. 모든 선입견을 벗어 버리고 모든 존재의 내적 현실을 탐색한 결과 존재 각각은 다섯 가지 작용 체, 네 가지 정신, 한 가지 육체의 합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 물질

육체적인 면에서부터 시작하여 봅시다. 이것은 가장 분명하고 우리들 자신 중 가장 뚜렷이 들어나는 부분이고 모든 감관(感官)에 의하여 쉽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육체에 관하여 실제로 아는 것은 너무나 적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몸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 몸은 의식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다른 수준에서는 우리들의 모든 내장은 우리들이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기능하고 있습니다. 기묘한 수준에서는 몸의 각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끝임 없는 생화학 반응을 우리들이 경험적으로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직 물질 현상의 궁극적인 실재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외관상으로 볼 때 고체(固體)는 subatomic particles와 공간(空間)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묘한 것은 이 subatomic particles까지도 실재하는 고체를 가지고 있지 않는 점입니다. 이들 한 개가 존재하는 수명은 일조(一兆) (10의 12승) 분의 일초보다도 훨씬 적습니다. Particles는 마치 진동(vibrations)의 흐름과 같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사라지고, 존재로 들어 왔다가 나가 버립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2500년 전에 발견한 육체와 모든 물질의 궁극적인 실재입니다.

현대 과학자들은 과학자 자신들이 검사하여 물질계의 궁극적인 실재는 부처님께서 발견한 바와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받아 들였지만 과학자들 자신이 해탈하거나 깨닫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우주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 위하여 그들의 지식과 과학적인 실험 기구를 의지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대로 부처님께서는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부터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 그 동기였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마음 이외 아무런 실험 기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진리는 지식화한 결과가 아니라 그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그를 모든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모든 물질계는 빠리어에서 Kalapas라고 불리는 미진(微塵), 혹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단위체는 끊임 없이 변화하는 것을 물질의 기본 성질로 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질이란 질량(mass), 응집력(凝集), 온도(溫度), 그리고 운동량이 합하여 져서 어떤 형태를 구성하였기 때문에 영원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재로는 모든 물질은  극히 미세한 티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지위에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물질의 궁극적인 실재입니다. 계속하여 티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파동의 항구적인 흐름, 미진의 항구적인 흐름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우리들 각자가 “자신(自身)”이라고 부르는 몸입니다.

2) 마음

육체적인 움직임과 함께 심적인 움직임도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우리들 몸보다 더 친밀하게 우리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몸이 없이도 우리들의 미래의 존재를 그릴 수도 있지만 마음 없이는 그러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마음에 관하여 아는 바가 얼마나 적습니까? 그리고 그 마음을 통재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적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이 거절하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으며, 우리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우리들이 의식하는 마음을 통재할 수 있는 능력은 희박하지만 다소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의식계의 마음은 완전히 우리들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한 어떤 세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의 몸을 관하실 때 그의 마음도 관하였습니다. 그는 넓은 의미에서 마음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발견하였습니다. 그 네 가지는 의식(vinnana, consciousness, 識), 인식(sanna, perception 受), 감상(vedana, sensation 想), 그리고 반작용(sankhara, reaction, 行).

첫 째 요소인 의식은 받아들이는 마음의 부분에 해당합니다. 대상과 접촉한 것을 알고 인식하지만 아직 분간하지 못하는 단계의 작용입니다. 이것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현상이 단지 일어났음을 등록하고 입력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경험한 대로 자료를 기록합니다. 이름을 붙이거나 그 가치 판단을 하는 단계는 아닙니다.

둘 째 단계는 인식(perception 受)하는 행위입니다. 이 부분의 마음은 conscious -ness에 입력된 자료를 분간합니다. 이 단계에서 perception하는 마음은 들어 온 자료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고 category를 만들고 가치를 평가하여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를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셋 째 부분의 마음은 감상(sensation 感想)입니다. 실재로 어떤 현상이 입력되자 마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signal을 하는 sensation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료가 아직 평가되지 않았으면 sensation은 중립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단 들어 온 자료에 평가가 주어지면 그 평가에 따라 sensation은 기분이 좋다든가 기분이 나쁘다든가 하게 됩니다.        
만일 기분이 좋은 감상이면 그 경험을 더 오래 지속하고 그 경험을 더 강화하고자 하는 희망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분이 좋지 않는 감상이면 그 경험을 중단하고 없애 버리고자 하는 욕심이 일어납니다. 이 마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과 더불어 일으키는 반작용입니다. 예를 들면 귀의 기능이 정상이면 어떤 소리를 듣습니다. 소리를 들으면 소리라는 인식작용이 시작합니다. 인식된 소리는 분별되고 평가되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를 판별하는 perception 작용이 일어납니다. perception 작용이 일어나면  기분이 좋고 나쁜 뜻을 포함하는 sensation이 일어납니다. 소리가 칭찬하는 말이면 기분 좋은 감상이 일어나고, 나쁘게 이용하는 말이면 기분 나쁜 감상이 일어납니다. 즉시 반작용이 일어납니다. 만일 감상이 기분 좋은 것이면 좋아하기 시작하고 더 많은 칭찬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만일 감상이 기분 나쁜 것이면 싫어하기 시작하고 나쁘게 이용당하는 것을 즉시 정지시키고자 합니다.  

귀 이외 다른 모든 감각 기관이 어떤 현상의 입력을 받게 되면 귀와 똑 같은 단계를 밟게 됩니다. 그들은 識(consciousness), 受(perception), 想(sensation), 行(reaction)이다. 이 네 가지 정신 작용은 물질의 실재를 구성하는 단명한 티끌들 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감각 기관이 어떠한 대상과 접촉이 일어 날 때마다 이 네 가지 정신작용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접촉 순간이 질서 있게 반복됩니다. 이 작용이 너무나 빨리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특정한 반작용이 오랫동안 반복되어 명백하고 강화된 형태가 되어 의식의 수준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하였을 때 우리가 인식하게 됩니다.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충격적인 면은 인간이 무엇을 포함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제거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서방사람인지 동방사람인지, 기독교인인지 유대교인인지 무스림교인인지 힌두교인인지 불교인인지 무신교인인지 그 외 무엇인지 우리들 각자는 자기의 계속되는 주체성 안에 이들 중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 선천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10년 전에 있었던 사람은 본질적으로 지금 있는 사람과 똑 같다고 생각 없이 가정하여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10년 후에 있을 사람도 앞으로 죽어 다음 생에 태어나 존재할 사람도 지금 있는 사람과 본질적으로 똑 같다고 생각 없이 가정하여 살아갑니다. 어떠한 철학도 교리도 믿음도 우리가 진리라고 붙잡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각자가 뿌리 깊게 확신하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본능적인 주체성의 주장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에 의하여 부처님은 다른 사람들의 교리와 싸우기 위한 추상적인 견해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견해를 제시하지 않지만 자기가 경험한 진리를 단순하게 설명하고 보통 사람들도 이 진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반복하여 강조하였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모든 교리를 치워 버렸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물질의 실재를 보았고 인식하였고, 감상하였고, 반작용을 하였고, 의식하였으며 그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타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각자는 사실상 매 순간의 각자가 서로 다르면서도 관계를 가진 사건의 연속이라고 발견하였습니다. 매 사건은 앞선 사건의 결과이고 간격 없이 그를 따라 갑니다. 끝임 없이 진행되는 사건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계속되는 주체성의 나타남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나타나는 실재이지 궁극적인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강(江)에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물의 흐름이고 결코 물이 가는 길을 정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촛불을 어떤 불이 항상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면밀히 검사하여 보면 불은 잠시 동안 타는 심지로부터 일어나는 불이고, 이 불은 순간순간  즉시 새 불로  교체되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전등(電燈) 빛은 실재로 잠시도 멈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항상 흐르는 강과 같이 filament 안에서 일어나는 대단히 높은 주파의 동요로 말미암은 energy의 흐름이 이 경우입니다. 매 순간마다 과거의 어떤 사건의 결과로 어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다시 다음 순간에 어떤 새로운 것으로 교체됩니다. 사건의 상속은 대단히 빠르면서도 계속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분별하기는 어렵습니다. 진행 과정의 어떤 특정한 점에서 어떤 사람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앞서 일어났던 것과 똑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똑 같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는 가운데 물질의 진행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똑 같은 방법으로 부처님은 어떤 사람은 아직 완성하지 않았고, 변화하지 않는 주체라고 하더라도 순간순간 흐르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된 “존재”라는 것은 없고, 단순히 진행되는 흐름이고, 계속되어 일어나는 진행입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은 다소(多少) 정의되고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서로 믿고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외형적인 분명한 실재를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외부의 실재는 실재입니다만 단순히 표면적인 것입니다. 더욱 깊은 수준에서는 실재는 전 우주, 생명이 있는 것이나 생명이 없는 것이나, 전 우주는 항상 새롭게 되는 지위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멸(生滅) 혹은 일어나고 사라짐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각자는 사실상 항상 변하는 아원자의 흐름입니다. 이와 더불어 수상행식의 정신 작용은 육체적 작용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 각자의 궁극적인 실재이고 우리들 각자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관련되어 있는 사건의 과정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 의하여 정확하게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을 고통에서 빠져 나가게 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