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수 행 법 - 8. 알아차림과 평정(平靜)

2007.02.24 03:54

bultasa Views:9398

8. 알아차림과 평정(平靜)

알아차림과 평정이 vipassana meditation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수행하시면 모든 고통에서부터 해탈하도록 인도합니다. 어느 것이나 하나가 약하거나 부족하면 그 목적을 향하는 길에서 발전할 수 없습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마치 새가 날으기 위하여 두 날개가 필요하고 구루마에 두 바퀴가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개는 동등하게 강하여야 합니다. 만약 새의 한 쪽 날개가 약하고 다른 쪽의 날개가 강하면 잘 나르지 못합니다. 구루마의 한 쪽 바퀴가 작고 다른 쪽이 크다면 구루마는 둥근 원을 계속하여 돌 것입니다. 참선자는 알아차림과 평정을 함께 발전시켜야 바른 길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의 가장 묘한 본질에서 몸과 마음의 전체를 알게 되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육체적 움직임이나 생각들과 같은 몸과 마음의 표면적인 면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 전체의 sensation을 알아차리도록 개발하고 그들에 대하여 평정을 유지하도록 개발하여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sensation을 알아차리지만 평정이 부족하면 우리는 우리 내에서 일어나는 sensation에 대하여 더 많이 의식하게 되고 그들에 대하여 더 날카롭게 되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반응하기 더 쉬워지고 결과적으로 고통을 증장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평정하지만 몸 안에서 일어나는 sensation은 아무 것도 모른다면, 이 평정은 다만 표면적이고 마음의 깊은 곳에서 알지 못하게 항상  반응이 진행되고 있지만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알아차림과 평정을 함께 개발할 것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우리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의식할 것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반응하지 않을 것을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곧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자기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자기 자신 내에 깊은 곳에 있는 진리를 직접 경험함에 의하여 성취된 지혜입니다. 이것을 부처님은 yatha-bhuta-nana-dassana라고 하였습니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관함에서 일어나는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에 의하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sensation은 단순히 무상함을 깨닫게 하여 줍니다. 모든 반응은 끝나고 모든 탐요과 진에의 sankhara도 끝납니다. 실재를 객관적으로 관하는 법을 배움에 의하여 행자는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고통을 멈출 수 있습니다.
  
1) 과거 반응의 쌓임

알아차리고 균형 있게 남아 있는 것이 새로운 반응을 만드는 것을 멈추는 길입니다. 새로운 괴로움의 원천을 분해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취급하지 않을 수 없는 다른 각도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 순간 이 후에 모든 반응을 멈춤에 의하여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만 우리들 각자는 쌓여 온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쌓여 온 조건은 우리의 과거 반응의 총합입니다. 이 옛 조건에 새로운 것을 더 보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동안에 쌓여 온 옛 sankhara는 우리들에게 고통을 일으킵니다.

Sankhara라는 단어는 “formation”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형상을 이루는 행동과 형상이 이미 이루어 진 것입니다. 모든 반응은 가장 마지막 단계입니다. 정신 과정에서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첫 단계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정신 작용 순서의 원인입니다. 모든 sankhara는 그것에로 이르게 하는 과정에 의하여 조건되어진 것이고 또 다음에 일어날 과정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조건은 정신 기능의 두 번째를 자극하여 운영합니다. 의식은 기본적으로 차이(差異)나 차별(差別)을 하지 않습니다. 이 목적은 단순히 마음이나 몸에서 일어난 접촉을 등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perception은 구별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현상을 분별하고 category를 만들기 위하여 과거 경험의 창고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과거의 반응이 참고 점이 되어서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sankhara를 참고하여 판단하고 분류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들의 옛 탐욕과 진에의 반응은 지금 우리들의 지각에 영향을 줍니다. 실재를 보기보다 우리는 “안경을 통하여 검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밖앗 세계를 지각하는 것이나 우리들의 내부의 세계를 보는 것은 우리들의 호감이나 편견과 같은 과거 조건에 의하여 꾸겨졌거나 침침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비뚤어진 지각에 의하여 본질적으로 중립이었던 sensation은 순간적으로 유쾌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합니다. 이 sensation에 우리는 다시 반응합니다. 이 반응은 우리의 지각을 더 비뚤어지게 하는 새로운 조건을 만듭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각 반응은 미래 반응의 원인이 되고, 모든 것은 과거 조건에 의하여 조건지어지고 그리고 돌아서 미래를 조건 짓습니다.

Sankhara의 이 두 가지 기능은 조건 지어진 일어남의 연쇄반응에서 보였습니다. 그 연쇄반응의 두 번째 고리가 sankhara입니다. 이것은 의식이 일어남에 대한 직접적인 사선조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네 가지 정신과정 중에서 첫째입니다. 그러나 sankhara는 연속되는 이 과정에서 또한 제일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Consciousness, perception, and sensation을 따라 옵니다. 이 형태에서 sensation 다음에 연쇄의 마지막에 탐욕과 진에의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탐욕과 진에는 집착으로 개발합니다. 이것은 심적 육체적 활동의 새로운 면의 추진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저절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모든 sankhara는 사건의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새로운 sankhara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다시 새로운 사건의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끝 없는 악의 순환을 반복합니다. 우리들이 반응을 일으킬 때마다 우리들은 반응의 정신적인 습관을 강화합니다. 우리가 탐욕과 진에를 개발 할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은 그들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경향을 강화합니다. 일단 심리적인 양식(樣式)이 성립되면 우리는 그 양식에 구속됩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원하는 물건을 가질려는 것을 막았습니다. 방해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이 대단히 나쁜 사람이라고 싫어합니다. 이 믿음은 그 사람의 성품에 대한 고려를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둘 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좌절시켰다는 사실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방해를 받은 사람의 무의식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후 그 사람과 만나는 모든 경우에도 그 사실에 의하여 물들어 있어 불쾌한 sensation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새로운 증오를 일으키고 그 감정은 더 강화됩니다.

비록 두 사람이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 만난다고 하더라도 오래 전에 방해를 받은 그 사람은 순식간에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그를 싫어합니다. 처음 사람의 성품이 지난 20년 사이에 완전히 변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 째 사람은 그의 과거 경험의 기준을 사용하여 그를 판단합니다. 그의 반응은 그의 상대되는 사람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상대되는 사람에 대하여 가졌던 처음의 맹목적인 반응을 근거로 하여 그 상대되는 사람을 믿었던 것에 대한 지금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편견입니다.

다른 경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원하는 물건을 갖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믿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 주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에만 근거하고 있을 뿐 그의 성품에 대한 주의 깊은 고려에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은 무의식의 마음에 기록되어 그 후 그와 만날 때마다 그 색깔로 그를 비춰봄으로 유쾌한 sensation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 더 강하게 그를 좋아 하고 그리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은 더욱 강화됩니다. 그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 전 아무리 오랜 세월이 헐었어도 두 사람이 그 후 새로 만날 때마다 같은 pattern이 저절로 반복됩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 상대되는 사람 자신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그 상대되는 사람을 맹목적으로 반응한 것을 근거로 그를 믿었던 것에 의하여 지금도 반응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sankhara는 아주 가까운 때와 아주 먼 장래에도 새로운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나는 각각의 반응은 미래에 더 큰 반응의 원인이 되고 더 큰 고통만 불어오게 됩니다. 우리는 사실상 우리가 우리의 sensation에 반응하면서 외부의 실재를 취급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각에 의하여 조건지어지고 우리의 반응에 의하여 조건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순간부터 새로운 sankhara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을 멈추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과거에 쌓인 sankhara를 인식하여야 합니다. 이 옛 날에 쌓인 sankhara 때문에 반응하고자 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 어느 때라도 저절로 일어나 우리들에게 새로운 고통이 일어나게 합니다. 이 옛 조건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옛 조건들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을 찾기 위하여 Vipassana meditation의 과정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과거 조건의 제거(除去)

Vipassana를 수행함에서 우리들의 목적은 단순히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sensation을 관하는데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sensation의 원인은 우리들의 관심의 밖에 있습니다. 모든 sensation은 내적 변화의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으로서 충분합니다. 그 변화는 처음에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일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의지하여 작용하므로 흔히 차별할 수 없습니다. 한 수준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다른 쪽에 반응을 줄 것입니다.

육체적인 수준에서 몸은 subatomic particles - kalapas -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 순간마다 일어나고 사라짐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에 따라 미진은 무한한 종류의 종합으로 만연합니다. 그들의 기본적 성질은 질양, 응집, 온도, 움직임 등입니다. 이들은 우리들의 내에서 모든 종류의 sensation을 일으킵니다.

Kalapas가 일으나는 네 가지 원인을 들 수 있습니다.

첫 째는 우리들이 먹는 음식입니다. 둘 째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환경입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간에 그것은 몸에 영향을 주고 kalapas가 일어나는 책임이 됩니다. 그러므로 미진은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정신적인 반작용 때문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혹은 과거의 반작용이 지금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기능이 활성력을 갖기 위하여는 몸은 음식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몸에 음식을 공급하는 것을 정지하면 당장에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세포에 저장된 energy를 소모함으로서 몇 주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저장된 energy가 소모되면 결국 몸은 무너져 죽게 됩니다. 즉 육체적 흐름이 끝납니다.

이와 똑 같이 마음은 의식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하여 활동이 필요합니다. 이 정신적인 활동이 sankhara입니다. 조건지어진 일어남의 연쇄반응으로 인하여 의식은 반응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정신적인 반작용의 각각은 의식의 흐름에 활성력을 주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하루 동안에 어떠한 간격으로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하는 동안 마음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의식의 흐름은 잠시도 계속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주어진 순간에 한 사람의 마음에 증오가 일으납니다. 다음 순간에 일어나는 의식은 그 증오의 산물입니다. 이것이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연쇄적으로 반응합니다. 이 사람은 증오의 반응을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반복하여 진행해서 마음에 계속 새로운 자극을 주입합니다.

그러나 Vipassana를 수행함에 의하여 참선자는 반응을 하지 않을 것을 배웁니다. 주어진 순간에 그는 sankhara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에 새로운 자극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심령의 흐름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마음의 흐름이 찰나 사이에 멈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하여 과거에 쌓여진 여러 가지 반응이 마음의 표면으로 떠오릅니다. 과거에 조건 지어진 반응은 일어나고 이것을 기초로 하여 의식은 다음 순간으로 계속합니다.

그 조건은 특정한 type의 kalapa를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됨으로서 육체적인 수준에 나타납니다. 그에 의하여 그 사람은 몸 안에서 그것을 sensation으로서 경험하게 됩니다. 혹 과거 증오의 sankhara가 일으나서 particle로서 그것을 만연시켜 그 사람이 몸 안에서 불쾌하게 타는 sensation을 경험합니다. 만약 그 사람이 그 sensation에 대하여 싫어하는 것으로 반응하면 새로운 증오가 발생합니다. 그 사람은 의식의 흐름에 새로운 입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과거에 쌓인 반응이 의식의 수준에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불쾌한 sensation이 일어나지만 그 사람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새로운 sankhara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 옛날 쌓임에서 일어난 sankhara는 사라집니다. 다음 순간에 다른 과거 sankhara가 sensation으로서 일어납니다. 또 그 사람이 반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라집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평정을 유지함에 의하여 우리는 쌓인 과거의 반응이 하나 하나 sensation으로서 그들이 만연하여 마음의 표면에 일어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점차 sensation에 대한 알아차림과 평정을 유지함에 의하여 우리는 과거의 조건들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증오의 조건이 남아 있는 한 인생에서 불쾌한 경험에 직면할 때 무의식의 마음의 경향은 증오로 반응합니다. 탐욕의 조건이 남아 있는 한 마음은 어떠한 유쾌한 환경에서 탐욕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Vipassana는 이러한 조건 지어진 반응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합니다.

우리가 수행함으로서 우리는 계속하여 유쾌하고 불쾌한 sensation을 만나게 됩니다. 평정한 마음으로 이 모든 sensation을 관함에 의하여 우리는 점차로 탐욕과 진에의 경향을 약하게 하고 결국 패멸하게 합니다. 특정한 형태의 조건된 반응이 제거되면 그 사람은 그 형태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모든 조건 지어진 반응이 하나하나 모두 제거되면 그 마음은 완전히 해탈합니다. 이 과정을 완전히 깨달은 사람이 말 하기를,

무상은 진실로 조건지어진 것이라,
생멸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일어나 소멸되는 것이라면,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참된 행복을 가져옵니다.      
모든 sankhara는 일어나서 사라지고 끝 없는 반복으로 다음 순간에 또 일어납니다. 만약 우리가 지혜를 개발하여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면 그 반복은 멈추고 제거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우리들이 반응하지 않는 한, 한 겹 다음에 또 한 겹 옛날 sankhara는 일어나고 제거 됩니다. Sankhara가 제거 된 만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고 그 만큼의 행복을 우리는 즐길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과거의 sankhara를 제거하면 우리는 완전한 해탈의 끝 없는 행복을 즐길 수 있습니다.

Vipassana 참선은 그러므로 과거의 조건을 제거하기 위하여 정신을 묶어주는 일종입니다. 우리들의 전 생애를 통하여 매 순간 우리는 반응을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 알아차리고 균형을 유지함에 의하여 우리는 잠깐이라도 반응하지 않는 순간을 얻고 아무런 sankhara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 잠깐 동안은 아무리 짧다고 하더라도 대단히 강력합니다. 그들은 반작용의 운동을 시작하게 하고 정화의 작용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시작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새로운 반응을 자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sensation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평정한 마음으로 우리는 그들을 관합니다. 알아차리고 평정하는 바로 그 행동이 자동적으로 옛 반응을 제거합니다 마치 등불을 켜면 방안의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부처님은 한 때 자선을 위하여 크게 선물을 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끝맺을 때 부처님은 평을 하였습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자선을 베풀었지만, 깨달은 사람에게나 담마에게나 모든 성인들에게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피난처로 삼았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였더라면, 그가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오계를 수지하였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였다면, 소 우유 짜는 시간만큼이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선의(善意)를 배양(培養)하였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 모든 것을 행하였다면, 그가 손가락을 퉁기는 시간만큼이라도 무상(無常)을 알아차리는 것을 개발하기 위한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어떤 참선자가 한 순간이라도 sensation의 실재를 알아차리고 그들의 순간적인 성질을 이해하기 때문에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 짧은 순간이라도 강력한 효과가 있습니다. 참고 반복하여 계속 수행하면 평정의 짧은 순간이 증가하고 반응하는 시간이 감소합니다. 점차 반응하는 정신적인 습관이 깨지고 옛날의 조건들이 제거되고 마음이 과거와 현재 모든 반응에서 자유로워지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