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행입문 - 강의 6

2007.02.27 18:27

현성스님 Views:11046

강의 6 염불선(念佛禪)

염불(念佛)
염불선을 말씀드리기 전에 염불과 기도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의 명호,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등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을 염불이라고 합니다.
불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우리들의 생활은 항상 어려운 일에 직면하게 됩니다. 많은 일들이 뜻대로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자님들은 이러한 일들을 해결하고 성취하기 위하여 부처님께 기도도 하고 염불도 하고 불공도 드리고 조상천도재도 지내고 하는 등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하게 됩니다.
염불하고 기도하는 불자들의 의례를 간혹 기복신앙이라고 폄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염불과 기도가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하여 옳지 않은 것은 조금도 없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신앙생활입니다. 부처님께 복을 비는 것이 잘 못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을 열심히 빌다보면 복을 찾아가는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빌어야 할 근기에 있는 사람에게 복을 빌지 못하게 하면 그가 편안한 마음으로 의지할 의지처를 잃게 됩니다.
복을 비는 기도와 염불을 통해서 각자에게 놓인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강도에 따라 기도와 염불의 강도도 달라져야 함을 알게 됩니다. 염불을 통해서 자기의 잘못을 인식하고 참회하고 업장을 소멸하려고 노력하고 산만한 마음을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신앙에 대한 믿음이 증장됩니다.
이와 같이 지극한 믿음으로 염불을 하다보면 때로는 부처님을 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번 친견하고 두 번 친견하고 세 번 친견하는 사이에 어느 듯,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이 내 마음자리에 앉아 계심을 볼 수도 있게 됩니다. 이 부처님을 자성불(自性佛)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부터 나의 자성(自性) 속에 계신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기도와 염불 강도가 높아지면서 내 자성불(自性佛)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성불(自性佛)이 나에게 존재하기에 내가 「관세음보살」을 지극히 염하다보면 내가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고 「나무 아미타불」을 지극히 염하면 내가 아미타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법망경 보살계본』에,
수행의 기틀은 기도를 통하여 닦고 지극한 정성으로 마음을 밝히며 지혜의 달빛을 가득히 하는 것을 삼학의 계정혜(戒定慧)라 하면 그 근본은 기도에 있다.
고 하였으며,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모든 것을 기도로써 시작하고, 기도로써 수행하며, 기도로써 성불(成佛)하라. 한 순간도 기도 일념을 쉬지마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근대(近代)에 수월선사(水月禪師)와 용성선사(龍城禪師)께서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니를 주력(呪力)하여 득도(得道)하셨다고 스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염불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공덕과 지혜 그리고 중생구제를 위한 부처님의 자비원력을 믿고 이와 같이 위대하신 부처님을 생각하며 그에 의지하여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나도 나의 내면세계에 계시는 자성여래를 밝혀서 성불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타력신앙(他力信仰)이라고 하는데 비하여, 참선을 바로 하는 방법을 자력신앙(自力信仰)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자력신앙을 타력신앙보다 우월한 것으로 설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중국에 대선사(大禪師)들 중에서도 주력(呪力)을 하여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많고 또 한국에 대선사(大禪師)이신 수월(水月)스님이나 용성(龍城)스님 같은 분도 다라니를 주력으로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스스로 술하고 있습니다. 현재 살아 계시는 청화(淸華)스님도 염불선을 하시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자기에게 잘 맞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염불선(念佛禪)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부처님을 생각하든, 다라니를 외우며 부처님을 생각하던 시작할 때는 비교적 큰소리로 고성염불(高聲念佛)하면서 몸과 마음을 염불하는 자세로 안정하도록 한다. 염불이 안정이 됨에 따라 소리를 낮추기 시작하여 작은 소리 미성염불(微聲念佛)을 하면서 자기의 마음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계속하여 살핀다. 맑은 마음으로 미성염불(微聲念佛)이 지속되면 소리를 내지 않고, 즉 혀를 움직이지 않고 하는 비동설염불(非動舌念佛)을 한다. 비동설염불을 하면 자연히 힘이 생기게 되며 마음 속에서 염불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염불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힘을 얻게 되면 자연히 일념(一念)을 이루어 염불이나 주력(呪力)을 한다는 생각이 없어도 자동적으로 이어지는데(무념(無念) 상태) 이것을 금강염불(金剛念佛) 혹은 염불선(念佛禪)이라고 한다.
염불(念佛)을 하면서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참구하기도 하고, 염불하면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관하기도 하는 방법이 한국과 중국에서 행하고 있는 염불선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 염불을 하면서 부처를 관하고 부처를 관하는 그 마음이 무엇인가를 관하라고 했다.
티뱉에서는 주로 염불선을 하는데 그 방법이 한국과 조금 다릅니다. 이 방법을 오늘 소개하고자 한다.

광명진언 - 염불선(念佛禪)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지바라 프라바르타야 훔』
om amogha vairocana mahamudra mani padma jvala pravarttaya hum

om: 귀명(歸命)
amogha: 불공(不空)
vairocana: 변조(遍照), 태양광명, 비로자나불
mahamudra: 대인(大印)
mani: 여의주(如意珠)
padma: 연화(蓮花)
jvala: 광명(光明)
pravarttaya: 발생(發生)
hum: 공포(恐怖)

불공관정광진언(不空灌頂光眞言)의 준말이고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진언이며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총주(總呪)라고도 한다.
『불공견색 비로자나불 대관정광 진언경』에 있는 진언이다.

이 진언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은 광명을 얻어 여러 가지의 중죄를 멸하고 숙업(宿業), 병장(病障)을 제거하고 지혜와 변재 장수복락을 얻어 이 진언으로 가지(加持)한 토사(土砂)를 죽은 사람에게 흩뜨리면, 이고득탈(離苦得脫)한다고 한다.
천태 진언  그 외의 모든 종(宗)에서 일상의 필요 혹은 시아귀(施餓鬼) 등의 의식에 사용한다.
우리가 많이 독경하는 천수경에 많은 진언과 다라니가 있고 반야심경에도 진언이 있다. 이 진언이나 다라니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왜 인도말 원음을 그대로 사용하는가 하면 진언이나 다라니를 독경할 때 몸과 마음에 주는 진동이 우주 법계의 기(氣)와 상통하는 영향이 있다고 한다. 우주 법계의 기와 상통하기 전에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세포(60억)가 잠에서 깨어 제 본질로 또렷이 활동하고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이 강화됨에 따라 법계의 기와 상통하기 시작하여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광명진언을 외워 효험을 본 사람이 많고 또 추천하는 스님들이 있어 이를 택하였다.

Tibet 염불선(念佛禪)에서는 자기가 입으로 외우고 자기가 귀로 듣는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할 때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서 외우고 다른 그룹에서 듣는 것을 서로 반복하여도 좋다.
집중 점(focusing point)을 듣는 귀에 둔다.
집중 점을 듣는 귀에 두게 되면 외우는 진언 이외의 생각과 업이 점차 소멸되게 된다.
생각과 업이 소멸됨에 따라 처음에 의식적으로 진언을 외우던 것이 차츰 무의식적으로 외우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외울 때도 귀로 듣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침에 빠져 혼침에 빠진 줄도 모르고 헤매게 된다.
처음에 일념(一念)으로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 귀로 듣게 되면 차츰 번뇌가 소멸되고 자기가 진언을 외우고 있다는 생각마저 사라진 무념(無念)으로 외우게 되는 것이다.
무념(無念)으로 외우게 되면 진언의 소리가 귀에서도 들리고 허리 등 가슴 겨드랑 등 사방에서 진언의 소리가 들일 수 있다. 이것은 진언을 외우고자 하는 마음과 입과 귀 그리고 진언의 소리에 의하여 진동하는 온 몸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의미이다.
계속해서 나아가면 보는 것마다 밝아지는 천안의 광명이 열린다.
호흡은 되도록 깊이 하는 것이 좋다. 숨이 가슴 위에 막혀 있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졸리거나 혼침에 빠진다고 생각 될 때는 손 벽을 치면서  진언을 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Focusing point는 귀에 두어야 한다.
보행을 하면서 진언을 외우는 것도 좋다. 이것은 행선(行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