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행입문 - 강의 7

2007.02.27 18:27

현성스님 Views:9352

강의 7 참선하는 이유와 위빠사나 선

참선하는 이유
부처님께서 왜 참선을 지도하셨을까요. 참선의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불교 참선의 목적은 열반을 증득 하는데 있습니다. 열반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인 일들이 모두 끊어진 자리입니다. 즉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에 뿌리를 둔 선한 정신 상태나 탐진치(貪瞋癡)에 뿌리를 둔 악한 정신 상태를 완전히 소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 윤회(輪廻)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vipassana nana(觀智)와 magga nana(道智)의 수행으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때 열반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참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행복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거장이 곧 열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자기가 왜 못사는지, 자기가 하는 일이 왜 항상 잘못되는지, 자기의 마음이 왜 항상 불안하고 답답한지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고 행복한 길로 가고자 합니다.
그 원인은 바로 내가 오랫동안 지속하여 온 습관에 있습니다. 이 습관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어떠한 형체(形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형체를 우리는 심상(心相)이라고 부릅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든 활동들이 모두 이 심상(心相) 안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심상(心相)은 처음부터 나의 습관에 의하여 만들어 졌지만 이 심상(心相)은 나의 발전의 한계를 가져오고 나는 이 심상(心相) 밖의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때문에 결국 나는 이 심상(心相)에 구속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치 골퍼를 치는 사람의 스윙 form이나 퍼팅 form이 그 사람의 골프 성적을 좌우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 됩니다. 그 골퍼는 자기 스윙 form에 구속받고 있기 때문에 스윙 form을 고치기 전에는 더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다는 결론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스윙 form은 자기의 습관에 의하여 만들어 진 심상(心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장래와 무한히 행복해 질 수 있는 미래를 가지고 있는 불자들입니다. 무한한 행복이 우리들의 행복이 되게 하기 위 하여는 우리 각자는 각자가 가정을 생각하는 습관, 생활 습관, 직장에서 일하는 습관 등을 확인하고 또 그 습관이 얼마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야 합니다. 이 생각하는 습관, 생활하는 습관이 자기의 현 주소이고 그 주소지 안에 자기가 구속되어 있습니다.
참선하는 목적은 이러한 스스로 만든 구속에서 해탈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의 습관의 구속에서 해탈하기 위하여 는 나를 구속하는 습관의 힘보다 몇 배 강한 해탈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강한 나의 습관의 힘을 파(破)할 수 없습니다. 나의 습관의 힘보다 더욱 강력한 해탈의 힘을 기르기 위하여 우리는 새로운 수행 습관에 익숙하도록 전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수행습관에 의하여 자기의 심상(心相)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동안에 있었던 모든 외로움과 괴로움 슬픔과 공포를 치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수행과정을 즐겁고 유익하게 하는 데에 수행 목적이 있습니다.

위빠사나 선
위빠사나 선은 모든 몸과 마음의 작용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mindfulness 관하는 선(禪)입니다. 걸어다닐 때, 밥 먹을 때, 말할 때, 변소에 갔을 때 등 우리들의 동작 하나 하나를 모두 관하면서 마음과의 상호 작용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관하는 수행입니다. 그 중 보행이 가장 popular합니다.
위빠사나 참선을 통해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모든 개념은 실(實)이 아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그로 인한 습관이 나의 심상(心相)에 새겨졌고 이제는 그 심상(心相)에 그려진 습관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개념이 실이 아니고 방편이므로 필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임을 확인합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는 개념이 실(實)이라고 생각하고 지켜온 것이 오히려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대 착오적인 개념이나 현실에 맞지 않는 개념이나 남에게 득보다 해가 되는 개념들을 이 참선을 통하여 정리하고, 이러한 개념들에 의하여 지배받아 온 나에게 자유를 찾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고자 합니다.
위빠사나 혹은 관선(觀禪)이란 무엇보다 경험에 의거한 수행입니다. 이 경험은 정확하게 초점을 맞춘 알아차림을 조직적이고 균형 있게 배육하는 것을 근거로 합니다. 말하자면 검사를 하고자 마음먹은 곳으로부터 찰나찰나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진행과정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조직적이고 균형 있게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에 의하여 통찰력이 배육되고, 배육된 통찰력에 의하여 참된 생명의 본질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관선(觀禪)을 사용하여 얻은 지혜로서 우리는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고, 훨씬 적은 애착, 훨씬 적은 공포 그리고 훨씬 적은 혼란으로 주변 세계와 관련을 맺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생활을 직관하고 심사숙고하는 가운데, 자비와 투명에 의하여 점점 더 지배받는 심상(心相)을 길러가게 됩니다.
지혜와 자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우리는 모든 근심 걱정 괴로움과 슬픔에서 자유로울 때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는 지혜의 힘에 의하여 얻어지고, 이 지혜는 위빠사나 관선(觀禪)에 의하여 무엇이나 도려내기도 하고 붙일 수도 있게 날카로워집니다.
위빠사나 관선(觀禪)을 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에 유의하면 도움이 됩니다.

1. 정신적 새김
∙이름이나 label을 반복하는 기술이다. 이름이나 label을 반복하는 기술이라는 것은 예를 들면 손을 위로 올릴 때 “올린다 올린다”고 외우는 것을 뜻합니다. 이름이나 label을 반복함으로서 우리들의 주의를 우리들이 관찰하고자 하는 심신(心身)의 현상으로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그리하여 그 심신 현상의 참된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데 있다.
∙위빠사나 수행의 지도 원칙은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 찰나에 그 일어나는 것, 무엇이나 관찰하고자 함에 있다.
∙주의 깊게 그리고 정확하게 새겨야 한다. 새김이 풍부하여 질 때까지 labelling을 지속적으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너무 부담이 될 때는 그만 하여도 된다. 왜냐하면 그 유용성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선수자(禪修者)는 검색하는 성질을 새김의 수행에 불러옴으로서 위빠사나 선의 목적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탐색하는 성질은 심신(心身) 과정의 참된 본질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2. 행선(行禪)
행선에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작변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동작과 호흡의 조율을 맞추는 것입니다.
동작변동에 관심을 갖는 행선
∙행선을 주의 깊게 하십시오. 행선만 함에 의하여서도 완전한 선정(아라한)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주의를 발바닥에 집중함으로서 이 수행을 시작하십시오. 깨어 있는 주의로 동작변동을 따라가며 한 걸음변동 부분 부분을 새기note십시오. 걸어가는 동안에 한 걸음 한 걸음을 취할 때 ‘오른 쪽 왼 쪽’이라고 labelling을 합니다. 이 labelling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이 대지에게 하는 말입니다.
∙눈을 반 감고 4-5 피드 앞의 땅을 미간으로 바라봅니다. 걷는 동안에 발을 바라보는 것을 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에 마음이 분산됩니다.
∙머리를 너무 아래로 숙이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자세에서 대단히 빠르게 긴장이 오게 합니다.
∙새겨야할 대상의 수는 점진적으로 증가합니다. 즉, 관찰해야 할 한 걸음의 부분의 수는 점차적으로 증가합니다. 행선 시간이 시작할 때에 한 부분을 십분 동안 새기note십시오: ‘왼발 오른 발’ 등. 그리고 나서 걸음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들고, 밀고, 놓고’ 등으로 나누어 새깁니다. 마지막에 새기note는 것은 ‘생각을 가지고, 들고, 밀고, 멈추고, 내리고, 닿고, 힘을 준다’ 등 여섯 동작입니다.
∙행선 하는 중 여러 번 마음이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labelling 새김note을 놓쳤다는 뜻입니다. 빨리 labelling을 불러와 집중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효과적인 수행을 하려면 하루에 적어도 30분 행선 할 것을 권합니다.
호흡과 조율을 맞추는 행선
∙걷는 찰나찰나가 자기와 함께 하는 행선(行禪)이 되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들이쉬는 숨에 의하여 대지(大地)의 힘과 대기(大氣)의 힘이 발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행선(行禪)은 바로 이 순간의 행복을 체험하게 하여 줍니다.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이 땅에 닿는 것을 즐깁니다. 내면이 고요해 지면서 어지러웠던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극락세계 천국은 관념도 아니고, 이 삶 너머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니요, 미래의 어느 곳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나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십시오. 많은 것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좀더 많은 힘과 자유와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발바닥에 모으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유인으로 걸어 보십시오. 아름다운 대지와 자유로운 허공과 내가 다를 바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며 두 걸음 걸어라. “들이쉬고 들이쉬고 in in”라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말하는 것이다. 발에 사랑의 힘을 가득 싣고 발을 내딛으며 나의 사랑을 대지에 전하는 것이다.
다시 숨을 내쉬면서 두 걸음을 걷는다. 이때에는 “내쉬고 내쉬고 out out”라고 발로 말하며 깨어 있는 마음mindfulness으로 온 마음을 다해 흙을 밟으라. 마음이 머리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마음을 저 아래 발바닥까지 끌어내려라. 발걸음은 점차로 힘을 되찾을 것이다. 이 힘은 다시 몸과 의식에 고루 퍼져 새로운 활기로 태어난다.  
∙“들이쉬고 들이쉬고 in in”하면서 나는 걷고 싶어 걷는다. 나는 자유인으로 걷고 있으며 모든 발걸음을 즐긴다. 대기(大氣)를 타고 들어오는 숨을 즐기며 발바닥에 닿는 땅기운을 즐긴다. 나의 삶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나의 발바닥과 대지(大地)와 대기(大氣)가 접촉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내쉬고 내쉬고 out out”하면서 나는 걷고 있는 사람이다. 나의 이 현재를 지배하려는 과거와 미래는 힘을 잃었다. 더 이상 과거나 미래의 그 어느 걱정거리에도 끌려 다니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이면서 나의 주인이다.
∙“들이쉬고 in, 내쉬고 out” 한 걸음씩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아주 천천히 걷는 행선(行禪)도 하여 보고, 또 세 걸음에 한 번 들이쉬면서 “들이쉬고 들이쉬고 들이쉬고 in in in”라고 대지에게 말하고, 세 걸음에 한 번 내쉬면서 “내쉬고 내쉬고 내쉬고 out out out”라고 발로 말한다. 이렇게 하면 걸음과 호흡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다음은 숨을 한 번 들이쉬면서 두 발자국 걸으며 “깊이 깊이 deep deep”하고, 숨을 내쉬면서 두 발자국 걸으며 “천천히 천천히 slow slow”를 소리가 아니라 발로 땅에 말한다. 이 수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도 즐거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 순간이 지속되는 가운데 변화와 치유의 힘이 솟아나고 동시에 즐거움이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또 다음은 숨을 한 번 들이쉬면서 두 발자국 걸으며 “고요히 고요히 calm calm”하고, 숨을 내쉬면서 두 발자국 걸으며 “편안히 편안히 ease ease”를 소리가 아니라 발로 땅에 말한다. 이 말을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 “고요히 고요히 calm calm”라는 말을 할 때에 자신의 몸과 기분이 고요함을 느껴야 하고 “편안히 편안히 ease ease”할 때에 자신의 몸과 기분이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또 다음은 숨을 한 번 들이쉬면서 두 발자국 걸으며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하고, 숨을 내쉬면서 두 발자국 걸으며 “대지와 대기와 만나는 좋은 인연되게 하소서 좋은 인연되게 하소서”를 소리가 아니라 발로 땅에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행선과 대지(大地)의 아름다운 힘과 대기(大氣)의 자유로운 힘이 나와 함께 하는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발바닥이 대지와 대기에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이는 행선(行禪)이지만 행선은 내면을 성장시키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내면의 힘을 기르고 싶으면, 기회 있을 때마다 행선을 하기 바란다. 실내나 야외 어디든 상관없다. 회의실에 가고 오는 길에, 주차해놓은 차로 걸어가는 길에 행선 할 수 있다. 어디든 걸어갈 기회가 생길 때마다 행선(行禪)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출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