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진언(眞言)

 

우리나라 불교의 모든 의식에는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반드시 독경하는데 『천수경』과 『반야심경』은 관세음보살님이 주인공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불교는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찬탄하는 관음신앙을 위주로 그 맥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 제4권 자장율사조에 보면 자장율사의 아버지가 후사(後嗣)가 없어서 지극한 기도를 했다. 기도 중에 천분의 관음상(觀音像)이 필요하다는 계시를 받고 천분의 관음상을 조성한 뒤 자장율사를 잉태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자장율사는 불연(佛緣)이 깊어 초기 신라불교의 초석을 세우신 명승이다. 신라 의상대사는 낙산사 홍련암에서 목숨을 내건 기도를 한 끝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그의 백화도량발원문(百花道場發願文)에는 「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서 관음대성을 지극히 받들어 섬깁니다.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관세음보살 대비신주를 외우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생각하며 다 함께 관세음보살님의 원통삼매에 들게 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한 것으로도 그의 지극한 관음신앙심을 알 수 있다.

원통(圓通)이란 말은 관세음보살님께서 모든 중생들의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게 하여 주신다는 뜻으로 ‘두루 통한다’는 뜻이다. 관음기도를 올릴 때에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이라 하고 정근을 시작한다. 보문시현(普門示現)의 뜻은 언제 어느 곳에나 나투시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는 말씀이고, 원력홍심(願力弘深)은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원력이 대단히 넓고 깊다는 뜻이며, 대자대비(大慈大悲) 구고구난(救苦救難)은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서 중생을 모든 고통에서 구제하시고 모든 액난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최근세사에 와서 수월(水月)스님과 용성(龍城)스님 같은 대선사께서도 천수다라니 염불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시고 후학들에게 천수다라니 염불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고 난 다음 참선수행을 하면 순조롭게 정진할 수 있다고 이를 권장하셨다. 숭산(崇山)스님도 출가 후 젊은 나이에 천수다라니 37기도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계종 산하 사찰에서는 동안거 입재 시에 100일 관음기도 입재하여 해제 시에 회향하는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발원을 관세음보살님 전에 지성으로 끊임없이 기도 올리면 두루 성취되지 아니함이 없다고 설하는 것이 『천수경』이다.

재가 신도님들이 무엇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가족이 건강하고 정신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즐기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기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소원이 원만히 성취되게 하고자 불교를 신앙하고 경율론 삼장을 공부하고 독경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불교를 신앙하여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바램의 원동력은 부부의 애정과 사랑 화목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부부의 화목은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생명력을 소생하게 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가정은 우주의 축소판이요, 국가의 최소 단위체요, 사회생활의 첫 관문이며, 사회와 국가 및 세계 평화의 일익을 담당하는 저력(底力)의 소생 처이기 때문에 가정이 안정되고 행복해야 그 사회와 국가와 세계도 안정되고 행복하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 풍조는 부부의 애정(愛情) 사랑 화목을 심각하게 저해(沮害)하고 자녀들의 윤리 도덕관을 혼탁하게 하여 많은 가정의 식구들이 도산(逃散)하는 경향이 증가함에 따라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길’인가 하는 혼란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에, 청소년 문제 사회 국가 인류 평화의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게 귀착한다. 그러나 나 자신의 생명의 활력은 가정에서 일어나므로 모든 문제는 부부 사이의 애정 사랑 화목의 문제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천수경』이 자신은 물론 부부의 애정 사랑 화목, 그리고 사회를 위하여 어떻게 해독되어야 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해설하고자 한다.

 

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천수경』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서 시작한다.

이는 우리 인간생활에서 깨끗한 말을 하는 업(業)이 가정의 화목을 이루고 사회와 국가 및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지켜야할 계(戒) 중에 가장 우선(優先)하는 업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우선하는 업이라고 볼 수 있음으로 항상 깨끗한 말을 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깨끗한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내 자신이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함은 물론, 말의 상대되는 사람을 한 단계 높이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말의 상대가 한 단계 높이 보여 질 때, 보다 깨끗한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부부사이에 배우자를 한 단계 한 단계 높여 관세음보살을 대하듯 하라는 것이 『천수경』의 뜻이라고 해석된다. 자신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화합하고 보다 생산적인 연을 맺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이들을 모두 한 단계 한 단계 높여 관세음보살님을 대하듯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입은 재앙의 문인 동시에 진실과 광명의 문이기도 하다. 마치 칼날에 양면성이 있는 것과 같다. 배우자에게 관세음보살님을 대하듯이 깨끗한 말을 하는 것은 애정을 나누고 화합을 도모하게 되어 필경 너와 내가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 소생하게 한다. 그러나 거친 말은 애정(愛情)보다 증오(憎惡)를 키우고 화목(和睦)보다 불화(不和)를 도모하게 하여 너와 나를 상반(相反)되고 대립(對立)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대립은 경쟁과 투쟁을 불러오고 어느 한쪽의 몰락을 가져오기 때문에 필사적인 분쟁(分爭)의 비극을 초래하게 되어 있다. 말은 듣는 사람의 생각을 혼란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하고, 환장(換腸)하게 하고, 억울하게 하며, 오열(嗚咽)을 일으키게 하고, 불치병을 낫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은 듣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모욕(侮辱)을 당하였다, 멸시 당하였다, 심지어는 인격을 살해(殺害) 당하였다는 원한을 사게 하는 악독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말은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하고, 살기 편안하고, 안온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주고, 하는 일들을 원만히 성취시켜주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쁜 말이든 좋은 말이든 말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말을 통하여 알 수 있음으로 마음은 말과 행동을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마음에서 흘러나온 말과 행동은 다시 그 마음으로 돌아가 다음 말과 행동의 마음이 된다. 이와 같이 말과 행동에서 알게 된 자기 마음을 가지고, 나쁜 말에 대하여 참회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좋은 말에 대하여도 더욱 마음을 정화하여 더욱 좋은 말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말이란 묘하여 말하는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마음 상하여 화를 낼 수도 있고, 의도는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한다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해가 되어 관계가 험악하여 지는 경우도 흔히 있기 때문이다. 발심하여 마음을 항상 청정히 하려고 노력하여 자신과 가정 사회에 좋은 기운의 향기를 퍼지게 함으로서 사회정화에 기여하자.

어떻게 우리들의 말을 정화할 것인가?

그 방법을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가 설하고 있다. 이 뜻을 풀이하면, 「길상존(吉祥尊)이시여, 길상존이시여, 대길상존(大吉祥尊)이시여, 극길상존(極吉祥尊)이시여, 그 길상이 원만히 성취되게 하소서」이다. 축원과 찬탄하는 존자이시다. 예를 들면, ‘행복을 저에게 주시는 존자시여, 행복을 저에게 주시는 존자시여, 저에게 좋은 일이 있게 하시는 존자시여, 저에게 성공을 가져다 수시는 존자시여, 모든 길상(吉祥)이 원만히 성취되게 하소서’ 등의 칭찬과 찬탄과 상대방을 향한 차원 높은 긍정적인 표현이다.

이와 같은 차원 높은 긍정적인 주문은 우리 인간이 살아오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엄청난 구업을 지어가며 살아 왔는데 그 구업을 참회하고 깨끗이 하려면 남을 한층 높은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칭찬하고, 찬탄하고, 축복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찬탄과 축복은 업장을 소멸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덕(善德)을 쌓는 업이라는 점에 중요성이 있다.

그리고 이 주문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이유를 막론하고 찬탄과 축복을 아낌없이 하라는 뜻인데, 우리들의 배우자에게 만이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여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덕의 베풀음은 남편이 먼저 부인에게 항상 행함으로서 남편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부인의 애정과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애정과 사랑과 존경은 가정의 화목을 이루게 할 뿐만 아니라 부부가 하나 되어 좀 더 잘 살고자하는 의욕과 희망을 불어 주는 가정의 생명력이 생동하고 증장되어 반야지혜의 감응으로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소원 성취를 원만히 이루어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회향하게 된다.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서 염불을 하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이 관세음보살로 변해 관음의 화신이 된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내가 관음의 화현이 되어서 모든 액난과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이 양성되고 용솟음치는 활력을 얻어 모든 병고 액난을 멀리하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해탈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나.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오방내외(五方內外)에 계시는 모든 신장(神將)님들을 안위(安慰)하게 하여 드리는 진언(眞言)이다. 모든 구업(口業)을 정화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이 우주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 관세음보살, 화엄성중님들을 편안하게 하여드리는 진언이란 우리들의 생활환경에서 느끼는 모든 물질적, 애정적 한계에서 초월하여 무한한 우주를 상대로 하는 자신으로 승화하게 인도 하는 진언이다. 이 진언을 지극 정성으로 외움으로서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모든 구속에서 해탈하여 가없는 마음이 우주와 일치하고 그 마음속의 우주에 모든 부처님 보살님 그리고 모든 신장님들이 편안히 계신다는 진언이다.

마음의 구속에서 해탈하지 못한 우리 인간이 걷는 길엔 어둠보다 더 무서운 불우한 암흑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 특히 자기 인생에 가장 귀중하고 소중한 것을 가졌을 때 그것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마음은 그것을 놓치거나 잃거나 상처를 입게 될까 봐 가슴 조이는 공포감으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부인,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딸 등이 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무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편안하고 남의 침해로부터 보호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부처님께 귀의하고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을 독송한다.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나무: 몸과 마음 다 바쳐 의지합니다. 귀의합니다.

사만다: 두루, 보편(普遍). 모든 중생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상의성(相依性)이 보편성(普遍性)이다.

못다남: 못다는 붓다와 같은 말로 아주 완전함을 이룬 이, 가장 거룩한 이. 남은 그러한 분들, 따라서 ‘못다남’은 많은 부처님들이라는 뜻이 된다.

: 우주에 충만한 근본 힘이여. 본래의 나.

도로도로: 아주 성스럽고 신성하며, 연기법을 잘 지키는 것을 뜻한다.

지미: 밝고 아주 밝은 씨앗이여.

사바하: 그렇게 되어 지이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전체를 다시 정리하면, ‘모든 부처님들께 귀의하고 의지하고 삽시다. 우주에 충만한 근본 힘이여! 아주 성스럽고 신성한 그 밝은 마음자리를 의지하여 함께 도와주고 북돋아 주면서 서로 서로 살려가면서 삽시다. 그렇게 되어 지이다.’

지금 시방에 아니 계신 곳이 없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기(緣起)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모심으로써 오방내외에 계시는 팔부신장님들과 모든 신들을 편안히 위로하는 씨앗이 되고, 또 그런 상태가 성취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녀 그대로 행하겠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연기법을 따르면 오방내외 모든 신(神)이 편안하고 위안을 받지만, 연기법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모든 신(神)이 노하여 오방내외가 불안하여지고 공포에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연기법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자비와 지혜로써 영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들의 삶에서는 자비와 지혜로써 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첫째, 친척간의 문제이다. 혈육을 같이하는 일가와 외가와 처가와의 인간관계를 말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연기법을 이해하고 이익을 생각지 않으며 내 몸 생각하듯 자비심으로 서로를 돕고 이해하는 진실한 친척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랄 수 있지만 간혹 서로 잊고 살거나 멀어져서 친구나 이웃보다도 못한 때도 더러는 있다. 그래서 친척으로부터 원성을 사고 거리가 생기면 생활이 늘 불안하고 고독해지기 쉽다.

친척들이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삶은 진실한 삶이 아님을 깨닫게 하고, 재물보다는 자연스러운 사랑과 인간성을 소유했을 때 친척간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따뜻한 정과 지혜가 우러나게 되고 가정을 행복과 발전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때 연기법을 바로 이해하고 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를 보는 오방내외 모든 신들이 위안을 받고 그들에게 더 없는 행복이 깃들게 할 것이다.

둘째, 이웃과의 문제이다. 한 세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웃이다. 이웃은 나를 그리고 나의 가족을 해칠 수도 있고 도울 수도 있다. 내 집의 주변 내 생활의 연관자만이 아니라 한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과 중생 자연은 다 이웃이다. 이런 생각으로 사람과 중생 자연을 대하는 사람이라야 이웃의 고마움을 알고 그 이웃과의 원활과 화평을 위해 계율과 도덕과 사회규범을 지키게 된다. 계율과 사회적 도덕과 규범을 잘 지키려고 노력할 때, 내가 이웃에게 좋은 이웃이 된다. 내가 스스로 이웃에게 좋은 이웃이 될 때, 좋은 이웃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이웃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웃끼리의 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고, 이러한 이웃이 사는 사회와 자연은 믿고 살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믿을 수 있는 풍조라야 평화가 깃들인다. 평화로운 이웃을 가진 사람은 가정에서도 남편으로서의 도리와 부인으로서의 도리도 다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연기법을 바로 이해하고 행하는 도리이고 오방내외의 제신이 평안(平安)하고 위안을 받게 되어 이들의 가피를 받게 될 것이다.

셋째, 자신과의 문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의 무지(無智)이다. 생각이 지혜롭지 못하여 앞뒤를 생각지 않고 체면이나 수치감을 생각지 않으며 막되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덤벼들었을 때 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없다. 이것은 사회의 적이요 만인이 싫어하는 하등 인간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사람은 오방내외제신을 불안하게 하여 자신의 처지를 가장 불행하게 몰아간다.

오방내외제신을 평안하게 모시기 위해서는 연기법을 바로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혜로운 행위이다. 자기의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항상 선을 익히고 악을 멀리하며 어질고 고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되 적을 만들지 않고, 세상의 무상한 변모에 현혹되지 않고 조용히 관조해 가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을 도모하고, 또 그가 세운 대서원(大誓願)을 위하여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아내를 사랑할 줄 알고 가족을 위하고 사회를 염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지혜는 방심하지 않고 항상 현재의 자기보다 높은 자기를 바라보며 스스로 세운 서원을 믿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현재의 자기보다 높은 자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오늘보다는 내일에 있을 보다 나은 방법을 생각해 냄이 옳을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기가 위치한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서 내일을 위한 희망과 그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반성하는 태도라고 하겠다. 반성이란 하나의 행위에 대해서 냉정히 비판해보고 부끄러움이 있는가를 알아서 부끄럽지 않도록 고쳐 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부끄럼 없이 잘 되었다 하더라도 더 높은 인격자로서의 방법을 생각해 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데 있다. 이것이 부단한 발전을 가져오는 동기와 방법이 되는 것이요 인격도야의 방법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사회인의 자세이며 인류를 복되게 하는 지름길이며 오방내외안위제신하는 법이고 날로 자기를 향상해 가는 구도(求道)를 중시하는 마음가짐이고 자세이다.

넷째, 직접적인 이유도 없는 사람이 자기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방해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문제이다. 현세에 직접적인 이유 없이도 우리가 잘하는 것, 잘 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 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주위에는 많이 있다. 생각해 보면 한심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에 있는 경우라면, 지혜와 자비심으로 오방내외안위제신를 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하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같이 험담 하지 않고 그들의 시비를 들어주는 아량과 지혜를 길러야만 오방내외안위제신이 된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