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2008.05.08 00:54

Views:15855

음력 4월 8일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이다. 그러므로 이 날을 특별히 초파일이라 부르며, 또한 이날 밤, 등불을 켜므로 등석(燈夕)이라고도 부른다.  이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절을 찾아가 불공을 드리고,등을 바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날 밤에는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뜻에서 등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연등행렬이 벌어진다. 각 가정에서도 등을 달아 이 날을 기념한다. 초파일 밤은 온 시내가 연등놀이로 어두움을 모르고, 밤을 밝히는 것이다.

원래 연등놀이는 정월 보름에 하던 행사였는데 고려 고종(高宗) 때부터, 초파일에도 하게 되었다 한다. 또 이때까지는 연등놀이가 국가적인 행사였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유교가 강해지고 불교가 약해져 이 행사는 초파일에만 민간에서 행해지는 풍속이 되었다. 그러나 이날의 행사는 여전히 성대하여 조선 왕조 후기의 기록을 보아도 그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각 가정에서는 이날이 되기 며칠 전부터 등을 달아 맬 등대를 세우고, 그 등대 꼭대기에는 꿩의 꼬리털을 꽂거나, 색색으로 물들인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어 달았다. 그리고 이 등대에다 줄을 매어 식구 수대로 또는 아이들의 수대로 등을 달아 불을 밝히는 것이다, 이때 등불이 환하게 밝으면 복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추녀에는 초롱에 불을 붙여, 매달아 놓으면 온 집안이 밤새 환하게 밝다.

등대의 장식은 가난한 집에서는 늙은 소나무 가지를 붙들어 매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부잣집에서는 온갖 사치를 다 부려 멋을 낸다.  큰 대나무 수십 개를 이어 매고 배의 돛대를 실어다가 등대를 받치는가 하면 일월권(日月圈-풍향계 모양의 바람개비)을 장대 끝에 꽂아 바람에 따라 눈부시게 돌도록 만들기도 한다.

또한 회전등(廻轉燈-빙빙 돌도록 장치된 등)을 매달아, 총알이 연달아 나가는 모양을 꾸미기도 하고, 종이에 화약을 싸서 줄에다 매어 위로 솟구치면서 터지게 하여, 그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져 비가 오는 듯 꾸미기도 했으며 긴 종이발을 늘어뜨려 펄펄 날리는 모양이 용의 모습처럼 보이게 꾸미기도 했다. 장대 끝에는 그 밖에도 광주리를 매달기도 하고 허수아비에 옷을 입혀 줄에 매어 놀리기도 한다.

가게집에서는 등대를 남보다 높고 크게 만들려고 받침대를 높이 해서 수십 개의 줄을 펼쳐 애써서 세워 놓는다. 이때 등대가 남의 집 것보다 작은 집은 놀림을 받았다 한다.

초파일에 다는 등은 집에서 만들기도 하지만 가게에서 주로 많이 만들어 가지각색의 등이 가게 앞에 죽 걸려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등의 모양 또한 여러 가지이다. 열매의 모양을 본뜬 수박등, 참외등, 머루등, 마늘등 따위가 있고, 동물 모양을 본따서 만든 거북등, 잉어등, 자라등, 용등, 봉황등, 오리등도 있다. 그리고 물건의 모양을 본뜬 북등, 종등, 방울등, 누각등, 화분등, 가마등, 병등, 항아리등, 공등, 배등, 알등이 있었다.

이처럼 사물의 모양을 본뜬 것 외에도 만수무강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만든 수복등, 태평등, 만세등, 남산등이 있었고 우주의 별들을 상징한 칠성등, 일월등, 오행등 따위도 있었다.

등을 만들 때는 종이를 바르기도 하고 붉고 푸른 비단을 바르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유리 대신 운모를 끼워 신선과 꽃과 새를 그려 넣기도 했다. 등의 모가 진 곳에는 삼색의 종이쪽을 붙여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이 멋있었다.

북 모양으로 만든 등에는 장군이 말을 탄 모양이나,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의 장면을 그렸다. 또 영등(影燈-틀을 두 겹으로 만든 등불로써 안쪽 틀의 그림이 밖으로 그림자가 지게 만든 등)을 만들어 안쪽 틀에는 매, 호랑이, 개, 이리, 사슴, 노루, 꿩, 토끼 등 동물의 모양을 붙이고 또한 바람에 따라 돌 수 있도록 풍차를 장치하니, 바람이 불 때마다 바깥에 비쳐지는 그림자가 바뀌는 것이 흥미가 있다. 이 등이 이른바 오늘날의 주마등(走馬燈)이다.

초파일 밤은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다. 그리하여 온 장안의 남녀들은 초저녁에 서울 주위의 산에 올라 밤새도록 서울 시내를 밝히는 등불을 구경한다. 어떤 사람은 악기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면서 놀기도 한다. 불바다를 이룬 서울 장안은 9일 새벽이 될 때까지 축제 분위기가 그칠 줄 모른다.

또 어떤 기록에 의하면 이 날 탑돌이를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탑돌이는 초파일뿐만 아니라 8월 한가윗날에도 하는데, 이 또한 오늘날에는 사라져가는 풍습이다. 옛날 불교가 성하던 신라 때는 전국민이 불교를 믿어 이 탑돌이 풍습은 절정에 이르렀었다. 모든 절에는 돌로 만든 석탑이 세워져 있었고, 초파일이 되면 수많은 신도들이 탑이 서 있는 절간의 마당을 가득 채웠다.

절의 스님은 탑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둥글게 돌아가면서 불경을 외웠고, 신도들은 스님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탑을 돌아가며 저마다 마음 속으로 한 해 동안 무사태평하기를 기원한다. 또 자기가 품고 있던 소원을 빌고, 처녀, 총각들은 시집, 장가가기를 빌며, 부모님이 아픈 집 자녀들은 부모님의 병이 완쾌되기를 빌면서 여럿이 탑을 도는 모습은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을 이루었다 한다.

또 고려 시대 풍습에 대한 기록을 보면, 초파일 연등 행사를 하기 수십 일 전부터 어린이들은 호기(呼旗)를 하러 다닌다고 한다. 호기란 어린이들이 용돈을 버는 놀이의 한 가지인데, 그 방법은 등을 매달 등대에 종이를 잘라 깃발을 만들고는 동네의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쌀이나 돈을 얻어내는 것이다. 이런 호기의 풍습으로 말미암아 등대에 깃발을 다는 풍습이 생겼다 한다.

초파일의 등대 밑에서는 또한 여러가지 행사가 벌어진다.  각 가정에서는 등대 밑에다 느티나무 잎으로 만든 느티떡과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으로 상을 차려 놓고 손님을 데려다 음식을 대접했다. 이때의 음식은 전혀 고기를 넣지 않은 것으로 이를 일컬어 '석가탄신일의 소반(素飯)'이라 하니, 그것은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여 고기없이 소박하게 지은 밥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동물을 죽이거나 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한 것이 있으므로 그 뜻을 기리기 위해서 베풀었던 행사인 것이다.

또 한 가지 등대를 중심으로 한 풍습에 물장구라는 것이 있다. 등대 밑에 물 한동이를 길어 놓고 그 물동이에 담긴 물 위에 바가지를 엎어 띄운다, 그리고는 빗자루를 들고, 그 바가지의 등을 두드려 소박한 소리를 내는데 이것은 태평을 기원하는 뜻에서 행하는 놀이라 한다. 이 놀이는 물동이를 써서 하기 때문에 '수부(水缶)'라고도 하고 물장구를 친다 하여 '수고(水鼓)'라고도 부른다. 또한 이 놀이가 태평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태평고(太平鼓)'라는 이름도 있는데 이는 정월 보름날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행해졌던 것이 초파일로 옮겨진 것이라 추측된다.

또한 도시 풍속에 콩볶기가 있는데, 이때 쓰는 콩은 틈틈이 석가모니의 이름으로 염불을 욀 때마다 콩알 하나씩을 모아 그 횟수를 표시해 두었던 콩이다. 이렇게 모아 둔 콩을 초파일에 이르러 소금을 약간 쳐서 볶는다. 그리고 길 가는 사람을 맞이해다가 이 볶은 콩을 먹게 하는데 이는 서로 인연을 중시하는 불교의 신앙에서 비롯된 풍습인 것이다.

그리고 초파일을 전후하여 종로 거리에는 1년에 한번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 시장이 섰다. 이것은 등을 팔고 사는 기회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릴 때, 함께 따라온 어린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도록 계획된 것이다. 어린이들은 이때를 기회로 시내의 화려한 상점들도 구경하고 여러가지 장난감을 사서 한때 즐거이 놀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옛날에는 초파일이 어린이날도 겸했던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석가모니의 탄생일인 초파일은 온 국민이 기쁨과 축하를 나누었던 날이었고, 나라에서도 궁궐에 수 많은 등을 장식하고, 불꽃놀이를 벌여 왕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구경하고 즐겼던 명절이었다. 이 화려한 경축 행사는 조선 시대까지도 계속되었고, 유교를 중시하게 되어 국가가 이를 막았어도 그 풍습이 끊일 줄 몰랐었다 한다. 특히 고려의 서울이었던 개성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성대한 연등 행사를 거행했다 하니, 우리나라에서의 불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고 깊은 영향을 끼쳤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은 불교 신자는 많지만 초파일의 행사는 거의 다 사라지고, 절에서만 등을 달고 거리를 행진하는 연등 행렬이 있을 뿐이다.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Notice 글 작성은 로그인을 하셔야 합니다. 웹지기 2012.08.24 98011
Notice [공지] * 불타 컬럼 * Bultasa 2010.03.09 149909
Notice 자유게시판 안내 Bultasa 2008.02.21 142722
304 *불타칼럼 * = 2012년 임진년 '흑룡띠 해' 행복하신 나날이 되시기 기원드립니다. 허영애 2012.01.03 15437
303 [펌]'내려놓음'으로 50만 크리스천 사로 잡은 이용규 선교사 [1] 민지/은석아빠 2008.01.21 15439
302 *** 축하드립니다 *** 대덕행 2007.11.14 15653
301 다 그럽디다 사람 사는일이 다그렇고 그럽디다 허영애 2012.01.27 15691
300 물 같이 바람 같이... file 정유진 수련화 2012.01.12 15692
299 신년 세배 불공 축원 - 시카고 불타사 무궁화 2008.01.08 15712
298 새해인사 [1] 관적 2013.01.12 15740
297 반야심경 마음을 찾아서~ [1] 허 영애 2008.03.09 15765
» 초파일 2008.05.08 15855
295 허물없는 삶 영위하길 -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스님 무궁화 2008.01.19 15877
294 포대화상(布袋和尙) [1] bultasa 2007.12.19 15928
293 불타사 상모돌리기 강습 - 우리소리연구회 '솟대' 2012년 10월14일 info 2012.12.15 16016
292 승무 [1] 愚存 2008.02.28 16050
291 Lotus Helpers 겨울 수련대회 안내 [1] 달마붐 2007.12.11 16143
290 네이버에서 우연히 읽게 된 숭산큰스님의 마지막인터뷰 [1] 심광 2008.03.31 16198
289 불타가족 여러분, 젠그룹에서 새해 인사드립니다! [1] file Bulta Zen Group 2012.01.11 16245
288 보덕거사, 보덕화보살, 지우 소식입니다. 심광@바라밀 2013.08.15 16266
287 제2회 포대보살 점안 기념 불타가요제 뉴스매거진 보도 심광@바라밀 2013.10.31 16275
286 쉼없는 정진으로 이웃과 세상을 맑게,,, 묘우 2008.01.19 16299
285 *불타칼럼*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궤도가 있습니다. 허영애 2011.11.01 16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