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상

2015.09.21 22:36

현성스님 Views:2256

조용하게 눈을 감고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 알고 있는가?"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 알고 있는가?"

"나는 내가 언제 죽을지 알고 있는가?"

금강경 제32장에 의하면 이 몸은 새벽이슬처럼 쉽게 변하고, 한 평생은 번개 빛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알고 알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몸은 매 순간 변하고 있음을 알라는 말씀이고,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찰나밖에 살 수 없음을 알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찰나 전은 이미 과거가 되었으니 다시 도리킬 수 없는 이치가 있고, 찰나 앞은 미래이니, 어찌 할 수 없다. 이 찰나 순간이 번갯빛과 같이 빨리 지나감을 알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이 찰라를 바르게 활용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지 않게 되면, 한 평생도 번갯빛처럼 지나가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이 찰라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르게 활용하는 것인가?

금강경에 의하면 우리들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고 하는 분별 심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별하는 기준이 우리들이 과거에 이미 지은 업이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류를 범하면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게 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실을 기준으로 한, 분별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모든 업을 완전히 소멸해 "나라고 하는 상이 전혀 없는 나, 무아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상이 전혀 없어야 사실에 입각한 좋고 나쁜 것, 옳고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상이 없다는 무아상(無我相) 무슨 뜻일까?

나라는 상을 세우면 나와 남이 있다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차별하는 상이 일어나고, 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일어나고,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불만과 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이 있어야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알고,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알라는 말씀이 무아상입니다.

무인상(無人相) 무엇일까요? 인상(人相)이라함은 사람이라는 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상을 세우면 사람이 아닌 것과 분별하고, 차별화하여 사람 아닌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존재하려면, 사람 아닌 동물과 식물. 공기, , 지구 등 자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모든 존재를 다 귀중하게 보고 그들을 존중할 때 무인상(無人相)이 됩니다.

무중생상(無衆生相)이란 무엇일까요? 중생(衆生)이라는 상을 세우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유정 물을 모두 통칭해서 중생이라 합니다. 나는 중생이다라는 상을 세우면 중생이 아닌 것과 분별하고 차별화하는 것입니다. 햇빛, , , , 식물과 같은 무정물이 없으면 유정물이 존재할 수 없음으로 중생과 중생 아닌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중생아닌 것이 없으면 중생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중생은 중생 아닌 것에 감사하고 존중하며 잘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무중생상(無衆生相)이 됩니다.

무수자상(無壽者相)이란 무엇일까요? 수자(壽者)란 목숨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수자상(壽者相)은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다고 알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상이 있는 것입니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의 이 몸을 받기 전의 모습을 영각(靈覺)이라 합니다. 영각이 금생에 이 몸을 받아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생의 연이 다하면 마음은 몸을 잃고 다시 영각이라는 이름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영각이고, 영각의 입장에서는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이치를 깨달아 죽음이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오로지 남을 위해 복덕을 짓고, 항상 깨어 있어, 선정과 지혜를 닦아 금강반야 바라밀에 머물 때 무수자상(無壽者相)이라 합니다.

 

금강경의 입장에서는 나와 네가 하나이고,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모두 하나이며, 중생과 중생 아닌 것이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 아귀, 축생, 사람, 아수라, 천상을 끝없이 윤회합니다. 윤회의 주체인 영각은 몸을 바꾸어 가면서 돌고 돌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만나는 연이 성숙될 수 있습니다. 이치가 이러하니 이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는 법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 전체가 서로 연관되어 있어 하나임을 깨닫고 우주 전체를 위하는 것이 바로 를 위하는 것임을 알고 행하는 보시를 무주상보시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위해 하는 보시는 바로 큰 나를 위해 하는 보시이니 상을 낼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나와 남이 있다고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착각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진실 된 삶이 아닌 꿈과 같은 삶, 환경의 흐름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의 삶, 재물이나 명예를 귀하게 생각하지만 그들은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 하고, 화장 잘 하고 좋은 옷 입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닌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금강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본래의 모습이 영각(靈覺)이고 영각의 성품이 불성(佛性)입니다. 불성은 누구나 다 평등하게 그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불성이 나타나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깨어있어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상세히 알아차리고, 그들의 고통을 사랑과 자비로 해소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몸과 마음 감정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해소해 줄 수 있는 사랑과 자비심이 충만해 있을 때만이 이웃의 고통도 이해하고 사랑과 자비로 해소해 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는 방편을 이웃에게 전달해 주고, 그 이웃이 또 다음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온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항상 인식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넓게 무주상 보시를 행할 때 모두 함께 평안과 행복을 누일 수 있는 좋은 세상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보시는 재물(財物)보시 뿐만 아니라, 남의 생명이나 재물 인격을 보호하는 보시, 남을 이해하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보시, 정념(正念), 정정(正定), 지혜를 개발하기 위한 금강반야 바라밀다를 행하고 가르치는 법보시 등 모든 중생이 모두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명이 있는 동안, 삶의 본질을 깊이 그리고 바르게 이해하고 복덕을 지어며,

선정을 닦아 지혜가 밝아 질 수 있도록 반야바라밀다를 깊이 행해야 하겠습니다.

2015830일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