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2010.04.05 18:48

현성 Views:7842

우리는 흔히 내 몸이 ‘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나의 이 순간의 생각을 ‘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와의 관계가 지극히 모호할 때도 많다.

나는 내 몸을 나라고 생각하지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심장의 박동도 내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젊어지고 늙어가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나와는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물론 내가 하는 것이지만 내가 하지 않는 생각도 얼마나 많이 오고 가는가? 이렇게 오고 가는 생각이 심한 것을 번뇌라 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는가. 번뇌나 스트레스는 나의 생각이지만 나의 생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물을 내 것이라고 할 때는 소유권이라는 의미에서 분명한데, 내 몸을 내 것이라고 할 때는 소유권적인 의미로 볼 수 없으니, “나는 누구인가”는 더욱 깊은 안개 속에 잠기게 된다.

 

내 몸을 불교식으로 분석해 보면 몸의 단단한 성질은 흙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성질은 물의 요소요, 따뜻하거나 찬 성질은 열 기운이며, 몸 안에서 일어나는 순환 작용은 바람기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끝임 없이 내 몸 밖의 요소들과 교류하며 인연을 맺으면서 그 존재를 유지해 가는 것이 이치이다. 그럼으로 우리들은 모름지기 안과 밖을 하나로 볼 줄 아는 혜안(慧眼)을 가져 안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밖의 모든 인연들을 소중하게 보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로 보면, 이 몸의 한계는 이 몸의 부피가 아니라 이 우주 천체(天體)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 몸은 이 우주 천체를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 우주 천체가 내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 상관없이 운행되듯이 내가 숨을 쉬고 나의 맥박이 뛰고, 먹은 것을 소화시키고, 젊어지고 늙어가는 것도 나의 지시나 간섭을 받을 필요 없이 몸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다만 내 생각으로 내 몸이라고 주장할 뿐, 실재로 내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결국 모든 사람들이 내 몸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일 뿐, 실재로는 내 몸이 아니라, 나는 내 몸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다.

마치 전세 집을 내 집처럼 이용하고 관리하는 것과 같이, 전세 집에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가면 전세 집을 미련 없이 바꾸지만 내 몸은 관리비가 아무리 많이 나가도 끝까지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내 몸을 내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내 생각의 착각이고, 내 몸의 유지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끝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애착도 하나의 생각의 환상이다. 내 몸을 내 몸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고통이 따르고, 남을 원망하거나 한탄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일어 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몸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관리자라고 생각할 수만 있으면 혹 죽을병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아프기는 하겠지만 남을 원망하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감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몸이 죽음으로서 다음 생에 내가 이용하고 관리할 수 있는 더 좋은 몸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 집이라고 이용만하고 관리를 소홀히 하다보면 문제가 쌓여서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일어나게 되지만 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이용함에 늘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몸도 이용만하고 관리를 소홀히 하느냐 잘하느냐에 따라 그 과보를 자기 스스로 받게 되는 것이 이치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과연 나의 생각일까?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어떤 생각은 나를 괴롭히고, 어떤 생각은 나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한다. 과연 어떤 생각이 나의 생각일까? 불교에서는 참된 나의 생각은 없다고 한다(空).

무슨 말일까? 우리들의 마음에는 진심(眞心)과 업식(業識)이 있는데, 업식(業識)이란 과거 수많은 생을 통해 쌓여진 업(業)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을 일으키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이 업식의 소행이다. 예를 들면 똑 같은 어떤 물건이나 사건을 보고 좋아하는 업식을 가진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업식을 가진 사람은 싫어하는 것이며,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업식을 가진 사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건이나 사건 자체에 좋고 나쁜 것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보고 듣는 사람의 업식에 의해 좋고 나쁘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실재적(實在的)인 입장에서 보면 업식에 의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은 그 생각의 근본이 업식인 까닭에 그 판단의 기준으로써 보편타당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불교적인 관점이다.

 

그러하니, 일체 업식을 수행을 통해 비워 버려야만 그 물건이나 사건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리게 된다. 이와 같이 나의 내면을 볼 수 있을 때, 내 생각도 내 생각이 아니요, 내 몸도 내 몸이 아니니 과연 ‘나는 무엇일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내 몸은 깊고 깊은 수행을 통해 이 우주 천체로 확대되고, 나의 참 마음은 나의 업식(業識)에서 자유로워 질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이고 자비로운 마음이며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원력(願力)을 가진 마음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10.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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