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안 맞아서 못 살겠다

2007.02.25 19:45

bultasa Views:6962 Recommend:1

성격이 안 맞아서 못 살겠다


두 사람의 성격이 자주 부딪칠 때 우리는 상대방의 성격이 고약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러할 때 ‘나’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격과 ‘나’는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사람마다 이름이 있고 모양이 있지만 내 이름이 ‘나’를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내 모양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아니니 내 이름과 내 모양이 ‘나’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부부간에 화를 참지 못하는 내 성격,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내 성품,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 이러한 성품이 ‘나’인가?


성품은 나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서 나온다. 색(色)은 몸과 몸밖에 있는 여러 가지 사물이고, 수(受)는 눈, 귀, 코, 혀, 몸이 사물과 닿았을 때 일어나는 느낌이고, 상(想)은 그 때 일어나는 생각, 행(行)은 그 생각에 의해 말과 행동을 하고 안하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이며, 식(識)은 의식(意識)인데 의식에 영혼이 포함되어 있으니 전생에 지은 업(業)에 따라 사물을 접할 때 느낌, 생각, 결정을 하여 말이나 행동이 일어나고 그 느낌, 생각, 결정, 말과 행동은 다시 식(識)에 저장되어 새로운 업이 되고, 이 새 업이 미래에 일어날 행동의 근본이 된다.


이와 같은 업의 작용은 과거의 업을 상속받아 일어나므로 과거의 업에 의해 현재의 말과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고, 현재의 말이나 행동에 의해 지은 업은 미래의 말이나 행동의 근원(根原)이 된다. 이와 같이 현재의 말과 행동은 과거에 말과 행동이 지은 업에 구속받고, 미래의 말과 행동은 현재 말과 행동이 지은 업에 구속 받게 됨으로 현재 내가 짓는 말과 행동의 업이 현재 나의 성품이고 이것이 곧 현재의 ‘나’이며, 부부간에 화목할 줄 모르는 성격이 부동(不動)할 수밖에 없는 소지(素地)이다.


‘나’라는 존재는 과거에 지은 업에 의해 생(生)을 받음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니 ‘나’의 말과 행동은 과거에 지은 업의 소산(所産)이다. 그러므로 현재 ‘나’의 성품은 과거에 지은 업보(業報)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내가 짓는 모든 악업은 내가 미래에 받을 고통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업보의 쇠사슬을 모두 끊어버리는 것이 바로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말과 행동의 자유를 향유하는 대자유인이 되는 길이다. 이러한 길이 있기에 사주팔자에 의한 운명 결정론을 부정(不定)한다. 각 개인이 자기의 업(業)을 개혁(改革)함으로서 스스로 운명을 바꿀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삶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신앙적인 사상이다.


우리의 마음의 작용을 면밀히 관찰하여 볼 때 말과 행동은 내 마음에서 ‘결정’한 결과이고, 결정은 생각의 결과이며, 생각은 느낌의 결과이다. 느낌은 눈, 귀, 코, 혀, 몸이 나의 상대방 혹은 사물과 접촉하는데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눈, 귀, 코, 혀, 몸이 나의 상대방 혹은 사물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느낌의 단계나 생각의 단계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화의 뿌리를 뽑으려고 정진하고,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려고 굳은 결심을 가지고 실천하면, 착하고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게 되고, 착하고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면, 착하고 이익이 되는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된다. 현재의 착하고 이익이 되는 느낌, 생각, 결정, 그리고 말과 행동은 식(識)에 저장되어 새로운 업이 되고, 미래의 말과 행동은 현재의 말과 행동의 업을 상속받아 미래에는 더욱 쉽게 착하고 이로운 말과 행동을 하! 게 되는 성품을 갖게 된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관심법(觀心法) 수행을 통해서 과거에 지은 그릇된 업보로 생긴 잘못된 성격을 현실에 이익이 되게 개혁(改革)함으로서 현재 자신의 느낌, 생각, 결정,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선(善)하고 상대방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성품과 지혜를 얻어 삶의 가치를 더욱 향상시키게 되고, 행복한 가정과 다복(多福)한 사회를 이룸에 크게 도움을 주게 되며, 내생에는 만 중생을 위해 더욱 착하고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원만한 성품을 타고 나게 될 것이니, ‘성격이 안 맞아서 못 살겠다’는 생각이 더 이상 일어날 리 없다.


2006.9.17.
대한 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