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편(方便)

2008.02.18 23:34

현성 Views:7790

방편이란 단어는 불교 용어인데 비슷하게 쓰이는 ‘방법’과는 그 의미상 차이가 있다.
어린 아이를 돕고자 할 때는 어린이 수준에 맞게 도와주는 방법이 방편이요,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에게는 그들에게 맞게 대화하는 방법이고, 웃어른을 모시고자 할 때는 그 분에게 맞게, 손님을 대할 때는 그 손님에게 그리고 그 손님을 만나 하고자 하는 일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 방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이 각각 다르지만 그들의 입맛에 공통적으로 맞게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조리사가 그 입맛에 더해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도 좋아지게 하는 음식을 만든다면 이를 음식 방편법 혹은 방편술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수준에 맞는 말을 하면서 그 사람이 자기의 잘못이나 어리석음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여 바른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을 방편이라 한다.

방편은 글에서 배울 수도 있겠지만 마음에 새기고 실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미국 땅에 이민 온 부모들이 자녀들과 대화를 가능하게 하려면 방편이 필요하고, 고부(姑婦)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역시 방편이 필요하다. 그리고 훌륭한 어린이학교 교사들은 반드시 방편에 능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방법이면서도 그들의 수준을 한 층 더 높이 끌어 올릴 수 있는 방편력이 있어야 한다.
방편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진실한 마음이 아닌 방편은 허례허식이 될 수 있고 속임수가 될 수 있으며 위선이 될 수도 있다.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진실을 기대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방편도 상대에게 딱 맞는 방법이라야 하니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우리들에게는 진실에 못지않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 찾아온 한 젊은 여인이 비통한 목소리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사고로 찰나사이에 남편도 잃고 어린 아들도 죽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함께 잃었으니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이들을 좀 살려 주십시오!” 라고 부처님께 애원했다.
부처님께서는 잠시 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그들을 살려주마.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라. 내가 너에게 부탁이 한 가지 있으니 너는 그것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네, 남편과 아들의 목숨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착하다. 그러면 됐다. 저 마을에 가서 어느 집에서든 아무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찾아 그 집에서 겨자씨 7알을 얻어오면 그 겨자씨 덕으로 너의 남편과 아들을 내가 다시 살려 줄 수 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그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위로를 받고 마을로 내려와 첫 집에 들러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겨자씨 동냥을 청하였더니 그 집 주인이 겨자씨를 주면서 ‘자기 집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괜찮으냐.’ 고 물었다. 여인이 생각하기를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 겨자씨라야 한다고 하셨으니, 할머니가 죽었다고 하니 이 집 겨자씨는 부정하다고 생각되어 겨자씨를 돌려주고 그 옆집에 갔다. 그 집에서도 아들이 죽었다, 혹은 딸이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여 그 동내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은 집을 찾지 못해 그 옆 동네에 갔으나 그 곳에서도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다음 동네로 갔다. 아무리 찾 아도 한 집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찾지 못했다.
이렇게 찾아다니는 동안 에 이 여인은 죽음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하게 되었다. 어느 집에서나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는 것을 보니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법이로구나. 태어날 때는 저 세상에서 왔으니 저 세상에서 보면 죽은 것이고, 이 세상에서 보면 태어난 것이며, 이 세상에서 죽을 때는 저 세상에서 보면 태어나는 것이니 죽었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구나.
다만, 나와 인연이 다하였을 뿐이다. 전생에서의 죽음이 이 세상에 태어남이고,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 저 세상에 태어남이니, 생멸하는 그대로가 바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다. 이 여인은 부처님께 돌아가 겨자씨를 구하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왜 구하지 못하였느냐고 물으시었다. 여인이 대답하기를 겨자씨는 구하지 못하였지만 자기 ‘남편과 아들은 다시 살아났다’ 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부처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셨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로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부처님께서 겨자씨 방편으로 나고 죽는 심오한 일대사인연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어 그 여인으로 하여금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하셨다.

진실한 마음에서 남을 위해 이와 같은 방편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보게 하고,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느끼게 하며, 무엇을 보았다 혹은 들었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흔들리고 오염되어 바로 보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해서 그들의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되며, 어느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크게 성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대한 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2008.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