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幻像) 속의 실상(實像)

2007.07.21 23:14

bultasa Views:6736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스스로 평화로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걱정이 있어도, 노래 한 곡조 부르고 나면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이 있다. 스트레스 해소에 부작용이 전혀 없고, 가장 싼 값으로 제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이 바로 노래를 즐기는 일이다.
남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고, 자기가 자기에게 들려주는 노래이니 전문적인 성악가가 될 필요도 없고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가진 그대로, 나오는 그대로 부르다보면 자기감정에 싸여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 쏟아질 때도 있고, 잔잔한 물결처럼 너울 치는 아늑한 가슴을 느낄 때도 있다.
기쁜 노래든 슬픈 노래든 부르고 나면 언제나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공통된 점이다.

기회 있는 대로 부르고 또 부르다 보면, 이민생활 30년간에 쌓인 체증, 미움, 불만, 불안 등이 하나하나 해소되어 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환상(幻像), 잡을 레야 잡히지 않는 것을 갈망했던 모습, 이로 인해 얼마나 속을 태워왔던가? 이제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노래하는 마음에는 더 이상 속상할 일이 없게 된다.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는 노래야말로 환상을 실상(實像)으로 바꾸어주는 영원한 나의 벗이요, 사랑이요, 동반자다. 실상(實像),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이제 환상은 오히려 삶에 꿈이 되고 희망이 되는 즐거움 속에 나를 머물게 한다.
모든 불만과 서운함이 사라진,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출시켜 주는 노래, 노래는 바로 나의 현주소요 또한 미래의 주소이다.

우리는 항상 노래를 즐기던 민족이었다. 어려울 때마다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목포의 눈물,” “빨간 마후라,” 등 모두 어려웠던 시대를 대변해 준 노래이자, 모든 민족이 하나가 되어 모든 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인내심을 불어넣어 준 노래들이다.
내 마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모습을 실상(實像)이라 부른다. 이 실상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 Power가 있다. 무엇이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힘이 있기에 노래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환상이 실상이 될 수 있는 비결이 있는 것이다.
이민생활 30년에 돈, 돈에 쫓기다 보니 귀중한 노래들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그렇다고 쌓아 둔 돈도 없으면서 노래 부르며 즐겁게 살 수 있는 좋은 시절만 잃은 것은 아닐까?
돈은 벌어서 쌓아두어야 내 돈이지만, 쓰는 재미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노래는 내 안에 이미 있는 것이다. 주인이 잡아주고 이용해 주며,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내 마음의 노래이다. 모든 일을 순리대로 가능하게 해 주는 이 Powerful한 노래, 부르고, 또 부르고 또 불러도 넘칠 줄 모르는 것이 내가 부르는 노래이다.

저는 출가 후 오랫동안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蒼空)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를 즐겨 불렀다. 매일같이 몇 번씩 부르고 나면 잠이 잘 왔다.
이 곳 시카고 불타사에 와서 요즘은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릴까 /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리고 /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이트나 / 얼마나 속아야 행복하다하고 / 얼마나 버려야 자유스러울까 / 얼마나 태워야 오만이 없어지고 / 얼마나 썩어야 종자로 열릴까 /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 /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를 즐겨 부르고 있다.

우리 인생 살다가 갈 때는 정한 주소도 없고 선택된 시간도 없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아들 딸 다 키워 놓고 나니 남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노래 문화, 노래하는 문화를 다시 일으켜, 남은 인생 노래로서 모든 근심 걱정 털어 버리고 새로운 삶의 향기 피워 보세.
노래와의 사랑, 나와의 사랑, ‘참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나의 노래, 내가 내 스스로의 주인이 되게 하여 주는 나의 노래, 나를 향해 부르는 이 고요한 독창회는 나의 거룩한 실상을 드러내는 기도요, 참선이요, 수행이기에 이것이 바로 환상에서 나를 깨우는 노래요, 환상에서 깨어 난 내가 곧 실상(實像)이다. 

2007. 7. 22.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