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성지 순례기(6)

2007.02.2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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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성지 순례기 (6) - (2005.4.4, 현성스님)


1월22일 토요일 새벽5시반에 파트나를 출발하여 8시간 걸려 바이살리에 도착했다. 바이살리는 인도의 유명한 상업도시였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100여년 사이에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하였는데 신도들이 탁발하던 스님들에게 동전을 시주물로 공양하기 시작하였다. 부처님 당시에는 화폐가 유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시주물로 받는 것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이에 대해 노스님들은 스님이 시주물로 돈을 받을 때는 반드시 일반 신도가 스님 대신 돈을 받아야 하고, 받은 돈은 스님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되고 신도가 돈을 가지고 있다가 스님이 필요시 그 분을 불러 무슨 물건을 사 달라고 부탁하고 그 신도로 하여금 필요한 물건을 사오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노스님들의 규정에 대해서 젊은 스님들은 스님이 돈을 받고 안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살행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여 세력을 얻게 되니 그로부터 대승불교 운동이 태동되어 중국, 한국, 일본에 이 대승불교가 전파되어 왔다.

스님이 돈을 시주물로 받을 때 스님을 위해 일반 신도가 대신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현재도 남방불교에서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이는 스님들로 하여금 돈으로 인한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계율로 태국이나 미얀마 등 지금까지 남방불교가 건재하게 유지되고 신도들로부터 지극한 신뢰와 존경을 받는 중요한 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바이살리는 유마경의 설법지로 유명하다. 바이살리가 상업도시로 발전함에 따라 서민들 가운데 돈 많은 장자(富戶) 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유마거사는 장자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서민 출신으로 사성계급이 엄격하였던 당시로서는 서민이 경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혁명적인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출가한 스님들도 도를 깨치지 못하면 도를 깨친 일반신도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승단 내외적으로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경전이고 이 경전을 설하신 곳이 바로 이 바이살리이다.

이 경전은 어떠한 성(姓)을 가진 사람이라도 불문(佛門)에 들어오면 모두 평등하고, 그리고 불문의 위계(位階)질서는 사회계급은 물론 출가와 재가에 상관없이 깨달음의 깊이가 누가 더 깊으냐에 따라 정하여짐을 설하는 경전이다.


그리고 이 바이살리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어 다비식을 하고 난 후 수습된 사리를 8몫으로 나누어 8나라 왕들이 나누어 가지고 자기 나라에다 사리탑을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바이살리에 세워진 탑이다.

이 진신사리탑을 기원전 300년경에 아쇼카왕이 대탑으로 증축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석주(石柱)를 세웠는데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 일행은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에 참배하고 난 후, 원숭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원숭이 연못을 본 후 케사리야 대불탑에 도착하였다.


케사리야 대불탑은 부처님의 생애에서 제일 마지막 설법하신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그 때 부처님께서 병을 얻으시어 그 근처에서 수행하고 있는 모든 제자들을 그 자리에 모이게 하여 최후의 설법을 하신 후 본인은 30일 후에 세상을 하직하기 위해 케사리야를 떠나 쿠시나가라에 가시겠다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물을 것이 있으면 지금 물으라고 하셨다.

질문이 없자 길을 떠나 쿠시나가라로 향하셨다 한다. 우리 일행은 부처님이 30일 후에 열반에 드실 것을 예언하신 최후의 설법지인 이 대불탑에 참배 후 쿠시나가라에 있는 열반사에 도착하였다.

열반사에서 금빛 부처님 열반상에 참배하고 난 후 라마브하르 스투파 부처님 다비장에 참배한 후 호텔에 투숙하였다.


1월 23일 일요일 쿠시나가라를 출발하여 7시간 걸려 코살라국의 수도였던 스라바스티(사위성) 기원정사에 도착하였다. 기원정사는 수닷타장자가 부처님께 기증한 정사(精舍)인데 금강경 설법지로 유명하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집터만 남아 있는 유적지이지만 정원은 대단히 넓고 아름다웠다. 수닷타장자의 집터와 앙굴리마라의 집터를 구경한 후 네팔 룸비니동산으로 이동하던 중 부처님의 고향인 피프라하와에 도착,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및 카필라성의 유적지를 참배한 후 네팔국경에 도착, 입국수속 후 룸비니에 도착, 석식 후 투숙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유명한 예언자들이 태자는 대성왕(大聖王)이 되시거나 대도(大道)를 깨치신 성자(聖者)가 되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다. 결국 부처님께서는 대도를 깨치신 성자가 되시었지만 부처님의 나라 카필라국은 부처님 살아생전에 코살라국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코살라국은 마갈타국에 의하여 멸망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운(悲運) 속에서도 카필라국, 코살라국, 마갈타국에서 부처님을 배척하기보다 카필라국에서는 부처님의 양모 마하프라자파티, 부인 야쇼다라, 아들 라훌라를 비롯하여 사촌 왕자들까지 부처님께 귀의하여 스님이 되고, 마갈타국에 패한 코살라국의 왕자들 가운데도 부처님께 귀의하여 스님이 되신 분들이 많아 부처님을 공경하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마갈타국왕은 부처님이 왕이 되었더라면 자기와 적대관계가 이루어졌을 텐데 부처님이 되셨으니 다행한 일이라 여겨 부처님 성도 후 죽림정사를 지어 보시하고 부처님을 항상 공경하여 왔다.


1월24일 월요일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 동국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금강스님이 우리 호텔로 마중 나왔다. 정말 반가웠다. 여기에서 스님을 만날 인연이 있었으니. 그는 우리 일행을 석가사로 안내하였다. 석가사는 금강스님의 은사이신 법신스님이 10여년 전에 불사를 시작하여 경주 황룡사를 모델로 하여 4층 규모의 건물 법당을 신축 중에 있다. 50동이나 되는 제일 요사체를 7년 전에 완성하고, 같은 크기의 제이 요사체를 3년 전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즉 100명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절이다. 법당 건물이 완성되면 50동짜리 요사체를 하나 더 지을 예정이라 한다. 그 곳에는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방문하고 수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1 acre 정도의 땅에 상당히 규모 있게 불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곳에는 이미 불란서 사람, 독일 사람, 일본 사람, 티벳 사람들이 지은 사원들이 나름대로 웅장한 모습을 갖추고 그 나라의 불교를 이 땅에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성석가사 창건주 법신스님은 바른 한국 불교의 모습을 이 땅에 전파하시고자 노력하심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법당에서 예불하고 스님의 간단한 법문도 듣고 스님을 격려해 드리고자 우리들의 정성을 모아 건축불사 보시도 하고 돌아왔다.


룸비니동산에는 마야부인당이 있고 그 안에 태자가 태어난 곳이 부인당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쇼카석주가 상단부분은 파손 된 채 서 있었고, 구룡못 등을 관람하였다.

돌아와 점심을 먹고 금강스님과 헤어져 우리 일행은 전세낸 비행기편으로 포카라에 도착 투숙하였다. 원래 일정은 룸비니에서 포카라까지 버스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이곳 반군들의 방해로 버스가 움직이지 않아 전세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었다.


1월25일 화요일 우리 일행은 새벽4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사랑콧트에 등정하여 해뜨는 광경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그날따라 안개가 너무 자욱하여 일출을 보지 못하고 우리 일행은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하산하는 길에 뜨는 해를 마중하였다. 너무나도 장엄한 히말라야 영봉이 있는 빛나는 산맥을 바라볼 수 있었다. 히말라야 영봉이 바로 유명한 에베르스트(Everest)산봉이고 설산(雪山) 수도지(修道地)로 알려진 곳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동경하는 산이다.


오늘로서 인도여행기를 마감하려 한다. 이 여행 동안 만났던 모든 이웃들에게 감사드리고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시고 내용을 잘 정리하여 주신 중앙일보와 이 글을 같이 읽어주신 모든 애독자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항상 행복하시기를 축원 드린다.


<첨부사진>

088: 바이살리 부처님 진신사리탑
091: 부처님이 열반하시어 나온 진신사리를 8몫으로 나누어 8개의 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이 곳 바이사리에 세워졌다. 기원전 300년에 아쇼카왕이 이 탑을 증축하고 기념 석주(돌 기둥)를 세웠는데 원형그대로 현존한다. 현성스님과 일행
093, 094, 095: 부처님 생애에 최후의 설법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바이사리 케사리아 대불탑
098: 쿠시나가라 열반사
102: 2,549년 전에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하신 부처님의 열반상을 열반사 내에 모시고 있다. 우리 일행은 부처님께 참배하고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돈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110: 스라바스티(사위성) 금강경 설법지 기원정사 유적지 참배
113: 카필라성 유적지
116: 룸비니 대성석가사 법신스님, 금강스님, 우리 일행
117, 125: 대한불교조계종 법신스님이 한국불교를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에서 세계에 펴시고자 하는 원력을 세워 경주 황룡사를 모델로 룸비니 대성석가사를 창건하고 있는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이다. 현재 100동 요사체 건물이 완성되어 이용 중이다.
118: 룸비니 대성석가사 임시 법당 내 우리 일행과 법신스님
132: 룸비니 대성석가사 좌측 요사체
133: 룸비니 대성석가사 우측 요사체
141: 룸비니 마야부인당
144: 룸비니 마야부인당 내 부처님 탄생하신 곳
145: 룸비니 마야부인당 내 참배
110: 스라바스티(사위성) 금강경 설법지 기원정사 유적지 참배
113: 카필라성 유적지
116: 룸비니 대성석가사 법신스님, 금강스님, 우리 일행
117, 125: 대한불교조계종 법신스님이 한국불교를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에서 세계에 펴시고자 하는 원력을 세워 경주 황룡사를 모델로 룸비니 대성석가사를 창건하고 있는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이다. 현재 100동 요사체 건물이 완성되어 이용 중이다.
118: 룸비니 대성석가사 임시 법당 내 우리 일행과 법신스님
132: 룸비니 대성석가사 좌측 요사체
133: 룸비니 대성석가사 우측 요사체
141: 룸비니 마야부인당
144: 룸비니 마야부인당 내 부처님 탄생하신 곳
145: 룸비니 마야부인당 내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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