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2012.11.27 22:37

현성 Views:9172

 ‘변계소집성’이란 “오직 마음뿐이다”라는 뜻을 가진 불교 유식학(唯識學)에서 쓰는 용어이다. 마음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떤 대상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자기에게 주는 이해(利害)관계를 깊이 따져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때, 그것에 대한 집착심을 일으키는 성품이다. 집착심이란 상대에 대한 베려는 전혀 없이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마음이기에 요즈음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마음이다.

 

정부 관료들의 부정(不淨)부패(腐敗), 부도덕한 성관계로 인한 자살, 살인 소동,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되는 경제사회, 남의 생명이나 종교를 무시하는 풍조, 마약거래, 중동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쟁, 심각한 노사(勞使)갈등 등은 모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루 계산해서 일으킨 자기의 욕심에 집착하는 성품’에서 나온다.

어떤 대상을 만날 때, 그에 대해 ‘두루 계산해서 일으킨 자기의 욕심에 집착하는 성품’은 허상(虛相), 환영(幻影)에 대한 집착이지 사실에 대한 집착은 아니라고 불교에서는 단정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명예나 돈 또는 이성(異姓)에 집착할 때, 본인은 실재하는 명예, 실재하는 돈, 실재하는 이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모습들은 모두 자기 마음이 만든 허상(虛相), 환각이 그린 그림자일 뿐이지, 실재하는 명예, 실재하는 돈, 실재하는 연인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즉 자기가 집착하는 그 대상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그린 그림자에 자기가 속고 있다는 말씀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집착하는 대상은 실재 인물이나 명예나 돈이 아니라 자기가 환상적으로 상상하는 환영(幻影)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변계소집성을 가진 사람과 인연된 사람들은 모두 환상적인 삶에 집착하여 고통을 받을 뿐이니 하루 속히 꿈에서 깨어나야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두루 계산하는 성품은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 번뇌 등을 유발시키는 근원이기에 자신의 편안과 행복을 해치는 성격이다. 자살, 살인, 도둑 등이 그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부부 생활에서도 두루 계산해서 집착하는 마음은 의심증, 시기 질투심 등으로 인한 불만을 유발시킴으로 가정의 불화, 별거, 이혼 등의 원인이 되는 성품이다. 직장에서나 관직 그리고 사회생활에서도 두루 계산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그 단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고, 그 분위기가 매우 혼란스러워 일할 의욕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성품이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미국 군(軍)과 백악관 고위공직자의 불륜행위나 한국에 여러 은행이 도산(倒産)되어 예금자들에게 손실을 가져오게 하는 원인들은 모두 책임자들의 변계소집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변계소집성은 이와 같이 자기의 이익에 집착하는 성품이지만, 실재로는 본인은 물론, 그의 가정, 그가 속한 직장과 사회에도 해(害)를 가져와 서로 망하게 하는 길로 가는 성품이다.

그러므로 불교신자는 변계소집성은 모든 병과 고통의 원인임을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멀리 여의는 수행을 끊임없이 해야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이 수행을 우리 절에서 매일 저녁기도에서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녁기도의 중요성이다.

변계소집성을 멀리 여의임에 따라 원성실성(圓成實性)이 들어난다고 유식 제21송에서 말씀하고 있다. 원성실성은 모든 존재의 참된 성품인데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원만하게 성취하는 실다운 성품이다. 실다운 성품이란 자기가 만든 환상적인 그림을 추구하는 성품이 아니라 실재(實在)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보고, 하고자 하는 일을 이치에 맞게 원만히 성취하는 성품이다. 이것이 바로 나옹선사의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의 참 뜻이다.

욕심내지 말고 물의 흐름의 이치, 바람이 부는 이치를 알아 그와 같이 행하면 물과 바람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이 우리도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성품이 원성실성이다.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열반세계의 모습니다.

 

원성실성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타기성(依他起性) 수행을 해야 한다. 의타기성이란 나의 성품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나 아닌 것에 의지해 일어난다는 말씀이다. 내 성품을 내가 알고자 하면 다이어 반지를 파는 보물 상이나 일류상품을 파는 상가나, 재미있는 영화, 게임 등과 접촉하는 순간 나타나는 나의 성품을 인식하는 수행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보편적인 자기 성품을 인식했으면 자기 생명도 남을 의지해 나고, 유지되는 존재의 실상을 관찰하는 수행을 한다. 이 수행에서 일체는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내 안에서 나가는 이치에서 일체가 나와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일체가 하나임을 깨달았을 때 자기의 마음에 본래부터 원성실성(圓成實性)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나에게 이 성품이 없었다면 일체가 하나임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1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