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무엇을 믿는 종교인가?

2009.10.1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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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수행 공동체를 믿는다.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을 우주 창조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진리를 깨달으시어 이를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신 도사(導師)로 믿고 존경하고 공경한다.

 

부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나?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보니, 일체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중생(衆生)은 모두 한결같이 타(他)와 긴밀한 인연을 맺으면서 스스로 자기를 창조해가는 창조주(創造主)라고 하셨다.

자기가 자기의 창조주이기에 이미 구원되어 있다. 그러하니 남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필요가 없고, 스스로 이미 영생(永生)하는 존재이니 남으로부터 영생(永生)을 구하지 않아도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 이미 살고 있다. 먹고 살 재원(財源)도 이미 구족(具足)해 있으니 남에게 의지하거나 빌며 욕심낼 것도 없다.

일체 중생은 이미 무한한 능력을 구비(具備)하고 있어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자기의 노력과 지혜로서 충분히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중생의 본성(本性)을 부처님께서 깨달으셨다고 하여 불성(佛性)이라고 부른다.

중생들이 무한한 창조력을 가지고 있고 창조해 가고 있다는 말씀은 지나간 50년 동안에 인류가 창조해가는 새로운 세계를 보면 부처님의 이 깨달음을 충분히 입증하고도 남는다. 전쟁도 평화도 불화(不和)도 행복도 전적으로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씀이다. 어제 나의 활동은 어제 나를 창조하여 오늘에 이르게 했고, 오늘 나의 활동은 오늘의 나를 창조 하였으며 내일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이 찰나찰나 내가 나의 행복을 창조해 온 것이 시작이 없는 예부터였다.

 

스스로 이미 영생(永生)하는 존재인데 어떻게 하여 죽음이 있는가?

현세의 모든 존재는 전생에서 이 생으로 왔고, 이 생의 존재가 죽는 찰나에 다음 생에 태어나는 것이니 전생의 죽음은 금생의 탄생이요, 금생의 탄생은 전생의 죽음인 것과 같이, 금생의 죽음은 내생의 탄생이요, 내생의 탄생은 금생의 죽음이기 때문에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고 중생의 영생을 흔히 물의 영생에 비유한다. 물이 얼음이 되었을 때 물은 죽었고 얼음은 탄생했다. 그러나 얼음은 물의 성질을 여읜 얼음은 아니니 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얼음이 녹아 다시 물이 되었을 때, 얼음이 죽어 물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는데, 얼음은 없어졌지만 물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얼음이 되기 전의 물과, 얼음이 녹은 후의 물은 다르지 않다. 물은 전생 금생 내생을 통해 사라진 바가 없으니 영생(永生)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본성도 이와 같아서 전생의 몸이 죽음에 금생의 몸을 받았으니 그 본성에는 변함이 없으니 몸은 늙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본성은 항상 젊고 활기가 넘쳐 다음 생의 몸을 받게 되니 우리는 이미 영생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먹고 살 수 있는 재원(財源)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는 말씀은 사람이 부지런하고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항상 풍부한 재원이 있어, 게으르거나 남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하는데 나의 환상적인 마음이 원인이 되어 일을 하면 환상적인 결과가 오고, 진실한 마음이 원인이 되어 일을 하면 진실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물건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좋다고 취하려하거나 싫다고 버리려하지 말고, 그들이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가 허상(虛相)에서 나온 것인가를 심심(甚深)히 살펴 허상이면 그 마음을 참회하여 소멸하고 오직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만을 실행하는 수련(修鍊)을 끝없이 해야 한다.

 

마음에 허상(虛相)이 없고 진실상(眞實相)만이 있을 때,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창조주임을 인식할 수 있고, 이미 구원되어 있으며 영생(永生)하는 자신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이것을 심정토(心淨土) 수련이라 한다.

그리고 말은 친절하고 공손하게 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고, 몸으로는 상대방을 돕는 일을 한 없이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기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타적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타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우주가 운행되는 이치가 연기적(緣起的)으로 생성(生成)되어 가기 때문에 인과가 분명한 이유이다.

이러한 수련을 신정토(身淨土)라고 하는데, 수련한 만큼 내 마음이 청정해지고 청정해 진만큼 근심걱정이 없어 행복한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가정과 사회를 정화(淨化)하여 모든 중생이 서로 의지하여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문을 열게 한다.

심정토(心淨土)와 신정토(身淨土)의 수행과정에서 무엇에 연(緣)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과 지혜의 문이 열리고, 모든 창조와 창조물의 원활한 보급으로 이 세상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다 같이 형제애(兄弟愛)를 돋우는 세상을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수행 공동체가 하고자 하고 또 하고 있는 사업이다.

 

불교는 이와 같이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수행 공동체를 믿는 종교이다. 이것이 사찰(寺刹)을 수행도량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합장

200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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