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성으로 사는 인생

2011.06.1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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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인생을 나름대로 알차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돈 잘 벌 수 있는 사업을 하기 위해, 명예로운 직위를 위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자녀들을 잘 길어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인생을 마감할 때가 오게 마련인데, 그때, 자기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드릴 수 있느냐에 따라 진정으로 알차게 살았느냐 아니면 건성으로 살았느냐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게 된다. 허무하게 살았다고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건성으로 살아온 인생이기 때문이다. 건성으로 산다는 것은 예를 들어 말하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야구나 각종 운동경기의 팬들을 많이 본다. 유명 가수나 드라마 연출가들의 팬도 많이 있다. 이 팬들은 그들이 잘 할 때 좋아하고 잘못할 때 실망한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연기할 때 마치 자기가 그렇게 부르고 연기하는 양 즐거워한다.

그러나 막상 야구경기이든, 노래든, 연기든 그것이 무엇이라 해도 이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일 수도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 체험해 보지도 못한 팬들은 건성으로 그 경기를, 노래를, 연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등산에 비유될 수 있다. 등산하는 사람이 산의 정상에 올라갔으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법. 등산객이 내려올 때 괴로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웬일일까? 등산객들이 산을 오를 때도 즐길 수 있고, 정상에서도 환희심이 일어나고, 내려올 때도 즐길 수 있는 것은 등산과 나와의 관계에서 등산을 시작해 끝나면 집에 돌아와 목욕하고 피로를 풀고 편안히 쉴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등산객에게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갈 곳이 없다고 하면, 산을 즐길 수 있을까? 혹 산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길을 잃었다면 그의 심정은 어떠할까? 하산(下山)해 갈 곳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있다가 문덕 갈 곳이 없음을 알았다면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 등산하고 내려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등산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건성으로 등산한 사람이다.

 

험악한 산과 나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산의 험준(險峻)함을 보며 걷는다. 그 험준함을 보고 걷는 내 마음의 상태를 내가 아는(알고 있다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건성으로 걷지 않는 것이다.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산에 오르는 것은 건성으로 산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산의 전경(全景)을 아름답게 느끼고 있는 그 마음을 아는 마음은 참이다.

같은 산을 보고 걸으면서도 위험하고 높아 등산할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너무 위험해 더 이상 못가겠다고 느낄 수도 있다. 등산할만하다고 느끼는 것도 내 마음이 짓는 것이요, 위험해 더 이상 못가겠다고 느끼는 것도 내 마음임을 인식하는 것이 등산과 나와의 깊은 관계이다.

다음은 왜 내 마음이 위험하다고 느낄까를 찾아봐, 그 위험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법임을 깨닫는 것이다. 결코 산이 얼마나 험준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그 산을 얼마나 험준하다고 느끼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내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내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 보는 것을 반조(返照)라고 하는데,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보는 사이에 위험이 위험 아닌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게 반복하는 사이, 어느 순간 그 산이 내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다. 갑자기 그 산과 내가 둘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도 나름대로 알차게 살아가기 위해 슬픈 일도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마치 팬들이 건성으로 경기나 노래나 연기를 보고 듣고 즐기는 것과 같이 건성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

삶에서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 남편이 하는 사업이 잘되어 돈을 잘 벌면 행복하게 느끼고, 또 실패하면 불행을 느낀다. 아들딸이 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배우자가 잘해주면 행복을 느끼고 못해주면 불행을 느낀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일반적인 삶인데, 이것은 건성으로 느끼는 행불행이다.

행복함을 느낄 때 내 마음이 짓는 행복이며, 불행을 느낄 때도 내 마음이 짓는 불행임을 인식할 때, 건성으로 행불행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할 수 있을 때, 사업에 실패했거나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불행하게 받아들이거나 속상해하는 것은 내 마음이 짓는 것임을 알았으니 속상해 하지 않는 마음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속상한 마음을 짓는 대신, 오히려 적극적으로 마음속에 겹겹이 쌓여 있는 업장을 녹여 버리는 수행을 해, 업장을 녹여버리면, 여러 가지 악연들이 멀어지고 좋은 인연들이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인연들이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때, 자신의 몸의 태어남도 마음이 엄마와 인연되어 태어나게 된 것이며, 자신의 몸의 사라짐이란 몸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마음은 몸이 태어날 때 새롭게 태어난 것도 아니요, 몸이 사라질 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마음은 불생(不生) 불멸(不滅)이다.

이와 같이 깨달을 수 있을 때, 인생의 하향 길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다음 생을 준비하며 보람 있게 살 수 있고, 두려움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건성으로 사는 인생이 아닌 것이다. 마음을 찬탄하는 한 게송을 소개한다.

 

이 마음에 행복이 있고/

이 마음에 불행이 있다./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 만드는 것./

이 마음에 진리 있어/

이 마음이 소중하나니라./

그 마음 문 열면 참 마음 있나니/

밖으로(에서) 찾지 말라./

오직 스스로의 마음에/

태양보다 밝은 광명이 있나니/

마음이 부처니라./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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