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보는 자유와 평화

2012.03.28 02:34

현성 Views:5995

요즈음 미국, 한국, 일부 중동과 유럽 등에서 정치, 경제, 교육 등 많은 분야에서 극심한 분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제 분야의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이다.

경제는 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하는데, 자본주의의 장점에 의해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따르는 부작용, 즉 부(富)가 자본가를 중심으로 치우치게 되고, 또 극심한 경쟁으로 패자의 손실이 파산으로 이어지는 피해는 결국 사회 갈등이 증폭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이 이윤을 추구하도록 하는 자유와 권리를 국가법에서 보장되는 법치국가 제도에서 비롯된다. 이 제도에 의해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국가이기주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니 필연적으로 갈등과 투쟁 및 긴장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만연되고 있는 이기주의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서구철학에서는 내가 존재하고 나 이외의 모든 것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보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는 나 이외의 모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보는 철학적 당위성에 의해 16세기 이후 서구에서 개인은 이윤추구의 자유와 권리가 있고, 국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한 식민지 정책, 인간 노예화, 자연 훼손, 1, 2차 세계대전, 한반도의 3․8선 설정과 6․25한국 전쟁, 최근의 지역분쟁, 지금의 세계 각국의 금융대란과 불안정한 경제 위기, 핵을 도구로 한 전쟁위협 등이 일반 사람들의 불안을 조성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되돌아 볼 때, 이기주의를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사상이나 법치주의는 자연과 사람들에게 대재앙을 몰고 온 원인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불교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이기적인 나’, 이기적인 집단, 이기적인 국가는 필연적으로 멸망하게 되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모두가 서로 연기하여 존재하는 것이 진리인데 이기주의는 이 진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기주의를 허용하는 사상이나 국가법은 진리에 모순되고 위배되는 법이고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가 현실 정치의 근본이 되어 있는 한, 일반 사람들과 자연에게는 자유와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존재는 우주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가 가능하다. 항상 우주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바라보아야 한다. 즉 우주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 그것들과의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이기주의 사상은 진리에 위배된다. 다른 사람, 문화, 동물, 식물, 지구, 물, 공기, 햇빛 등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나’, '사회‘, ’집단‘, ’국가‘는 있을 수 없다.

 

전체에서 한 개체로서 존재한다는 뜻을 불교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전체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전체의 하나하나에 존재한다. 전체는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은 전체가 내 안에 있으므로 내가 하는 생각, 말, 행동은 곧바로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이고, 나는 전체의 하나하나에 존재한다는 말씀은 전체의 하나하나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는 그 영향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전체와 개체는 떼어 놓을 레야 떼어 놓을 수 없는 상관관계라는 뜻이다. 일제(日帝)시대 때 만공스님은 이 뜻을 쉽게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송이 꽃)라고 표현하셨다.

 

전체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전체의 하나하나에 존재한다. 라는 이 말씀, 이 철학이야말로 이 시대를 개혁해 새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전체는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은 나의 한 마음은 가없이 넓어 이 우주가 내 마음 안에 있다는 말씀이며, 어떠한 존재도 나를 떠나 홀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서로서로 연기하여 전체를 구성한다는 유명한 연기설(緣起說)이 여기에서 나온다. 즉 일체 모든 존재가 연기하는 거대한 망(網, 네트워크)의 한 부분 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고 의지하며 연기하는 존재들이다. 남을 해치면 반드시 나에게 그 이상의 해가 돌아오고, 남을 도우는 것은 바로 나를 돕는 것이라는 원리가 여기에 있다.

 

한 마음은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볼 수도 없어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나를 움직이는 놈이 분명히 있으니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있다고 하자니 볼 수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으니 수행자들이 각자가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한 마음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원융성(圓融性)이다. 한 마음은 어디에나 어느 존재에나 있으며 전체를 조화롭게 만드는 원융성이 있다고 하셨다. 한 마음에서 한 생각이 찰나사이에 어디에나 나타날 수 있으며,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고, 현실이 지나치게 양극화 되어 있을 때 전체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지혜와 역동성이 있다. 인류 역사상 왕권에 의해 왕실과 백성 사이에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을 때, 왕권제도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일어나게 된 것과 전제군주, 공산정권 등의 제도가 새로운 제도로 바뀌는 것과 같이 어떠한 어려움도 원만하게 융합해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품이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아무리 지독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이 한 마음의 원융성에서 나온다.

 

둘째는 한 마음의 공성(空性)이다. 태허와 같이 텅 빈 공(空, empty)이지만 이 우주가 이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음으로 일체 존재에 없는 곳이 없다는 이 원리가 불교의 중생 평등사상이다. 그리고 삼라만상이 다 소멸된다고 해도 이 한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한 마음은 시작이 없는 데서 출발하여 끝이 없는 마지막에까지 다 있다는 이 원리가 불교의 중생 불생불멸(不生不滅)사상이다. 그리고 또 이 공(空)에서 일체 삼라만상의 현상이 일어나기도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생멸법연기법(緣起法)이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한다. 또 이와 같이 생멸이 반복하는 현상이 불교 윤회설(輪回)의 원리이다.

 

셋째는 한 마음의 반야지혜성이다. 사람들이 식견을 넓히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식에서 만들어진 생각으로 문제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너의 생각은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나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니 현재를 보는 눈을 멀게 한다. 결코 사실대로 볼 수 없다.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다. 세상은 수시로 변하고 있는데 변하는 줄 모르고 보는 눈, 그리고 너라는 독립적인 존재는 본래 없는 것인데 독립적인 나라고 알고 보는 눈은 모두 허망한 것을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니 모두 착각이다. 착각은 병고의 원인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는 반야지혜를 증득하라. 반야지혜는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법이니, 이 반야지혜를 증득할 때, 비로소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를 얻게 되고 이 자유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다. 고 하셨다.

 

넷째한 마음의 자업자득성이다. 어떠한 행위에도 자업자득의 인과법이 따르는 것이니 한 쪽으로는 일체 모든 존재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보시(넓게 베푸는)바라밀(원만하게 완벽한 지혜)에 정진할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철저하게 순결한 도덕성을 유지하고, 밖으로 나가는 마음, 밖에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 마음, 남을 탓하는 마음, 오만한 마음 등을 자신의 한 마음으로 돌려 비춰보고 내 마음의 잘못을 깨우치고 참회함으로서 마음의 고요함과 편안을 얻고, 더 깊이 들어가 모든 병과 고뇌를 치유할 수 있는 창조적 지혜, 반야바라밀이 들어나게 해야 한다. 이 반야바라밀은 생각에서 일어나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지혜를 의미한다. 반야바라밀과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원을 세우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설하신 말씀의 요약인데, 말로서 표현하면 오해될 여지가 많은 말씀이라 깨달아서 증득해야 할 내용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믿고 스스로 보시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을 매일 새롭게 실천해 가는 수행적 측면에서 불교가 종교로서 존재하고 번성하는 이유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불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각 국가에서 법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 법제도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자유 모드(mode)로 개혁해야 한다. 그 개혁에반드시 보시바라밀과 반야바라밀에 대한 이해와 수행이 수반되어야 하고,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산업, 국경의 개념, 입법 정책 등의 개혁이 따라야 하며, 자본을 비롯한 모든 재원을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세계 인구의 개인 평균 소득을 증대할 수 있게 활용해야 한다. 이 개혁이 국가 상호간에 받아 질 수 있도록 할 수만 있다면 그 즉시 국방예산의 삭감과 전쟁으로부터의 자유, 핵무기로부터 자유,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물량 이동의 통제로부터의 자유, 인간의 거주 이전, 취업 등 인간의 고유한 권리를 가로막는 이민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국방예산의 삭감은 지구상의 일체중생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유와 평화야 말로 불교적 자유요 평화이다.

 

현재 각국에서 만연되고 있는 이기주의는 이 지구상에 모든 존재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를 불교에서는 나와 남과 세계를 해롭게 하는 사상으로 간주하고, 비(非)이기주의, 이기적인 나는 없다는 무아(無我)사상을 발원하고 실행하고자 한다.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시카고 신학대학에서

201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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