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와 부드러움

2008.09.09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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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와 부드러움

얼마 전에 불타사로 어떤 여자 분께서 전화를 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스님이십니까?”->“네.”/“저는 기독교신자인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전화했습니다.”->“네, 말씀하시지요.”/“불교에 ‘보시’라는게 있지요?”->“네,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이에요?”->“보시란 널리 베푼다는 뜻인데, 기독교에서는 헌금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널리 베푼다는 뜻이면 헌금과 다른데요.”->“어떻게 다른지 좀 설명해 주시지요. 저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감사합니다.”하고 그 분은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왠지 아쉬움이 남아 있어 지상으로라도 불교에서 의미하는 ‘보시’를 설명해 드리고자 본 제목을 ‘보시와 부드러움’이라고 정해봤다.


보시(普施)의 보(普) 자는 널리, 두루 하다는 의미이고, 시(施) 자는 베푼다는 뜻이니 보시(普施)는 널리 두루 베푼다는 뜻으로 우리 불자들은 그렇게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널리 베푼다.’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두루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인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나서 도와주었다고 생색을 내거나,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그 대가를 바라거나, 도와 줄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있다고 과시하거나, 권위의식을 갖는 사람들을 위해 공덕(功德)에 대해 말씀하셨다.

공덕이란 애써쌓은 덕(德)이라는 뜻으로 보시하는 덕은 무형(無形)의 재산으로 항상 내안에 저축되어 빛을 발하는 것인데, 그 빛에 의해 좋은 일은 가까이 하게 되고 재앙은 멀리하게 되는 복(福)을 짓게 된다. 그러나 보시했다고 생색을 내거나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과시하거나 권위의식을 갖는 즉시 보시한 공덕은 사라지고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시하는 사람은 보시바라밀을 겸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 보시바라밀을 불가(佛家)에서는 흔히 무주상보시(無住相普施)라고 하는데, 즉 부모님이 보시했다는 생각 없이 자녀들을 돌보듯이 하는 보시가 하나의 예로, 이와 같이 어떠한 상(相)도 일으키지 않고 하는 보시를 무주상보시라고 하는데 이러한 보시의 복덕은 하늘 끝이 없는 것과 같이 넓고 깊다고 했다.


보시(普施)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현물(現物)로 돕는 것을 재시(財施)라고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또는 현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현물을 보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병든 사람을 간호한다든지 육체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봉사하는 노동보시이다.

다음은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이나 미소 등의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편안한 마음을 전하여 근심 걱정을 잊게 해주는 보시이다. 이 보시는 상대방이 내 모습을 보고 혹은 말을 듣고 근심 걱정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는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보시이니 이를 무외시(無畏施)라고 한다.

절마다 모셔져 있는 부처님께서 은은하게 미소 짓고 계시는 상호(相好)가 대표적인 무외시(無畏施)의 모습이다. 대덕스님들을 친견하면 즉시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되는 경험들이 흔히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무외시의 공덕이다.

무외시를 베풀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많은 수행을 통해 자신의 인격적인 문제와 생사(生死) 문제가 완전히 해결됨으로서만이 항상 편안한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되고, 이 편안한 마음의 힘에서 온화한 표정이 나올 수 있으며, 그 표정은 상대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감싸 안는 향기와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부드러움의 보시’ 속에서 진정한 노동보시와 재시(財施)가 함께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돈이 있어 남을 도와주는 것도 훌륭한 ‘보시’이다. 하지만 보시는 반드시 무주상보시가 되어야 하기에 그에 상응하는 인격적인 수행이 따라야만 ‘부드러움의 보시’가 가능해 진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고 금전유통이 활발하다보니 일체거래가 돈이나 현물로만 이루어지니 돈의 위력은 더욱 강해지고 불교의 공덕론(功德論)은 무색해져서 알아주는 사람이 극히 드문 세상이 되었다. 어떠한 단체에서나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이 되다보니 민심(民心)은 각박해지고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 여러 가지 질병과 불화(不和) 및 싸움의 원인이 되어 재앙의 근원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도로 발달된 선진국의 국민일수록 행복 지수는 낮아지고 불만족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불교의 보시제도는 금전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철학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내세우기 위해 부력(富力)을 과시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한 인생을 놓고 보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65세에서 70세가 가까워지면 부력(富力)이 부력(浮力)으로 변하여 어디에 그것을 정착시켜야 할지 고민거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보시공덕은 다음 생에도 재력(財力)을 누릴 수 있는 과보를 받게 되지만 인색(吝嗇)한 사람은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다음 생에 가난을 과보로 받게 된다고 한다.

미국사회에서 큰 재벌들이 사회를 위해 보시하는 것을 보면 나라가 부강(富强)할 수 있는 공업(共業)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부(富)가 공동체의 부(富)로 이용될 때 공동체(共同體)의 과보가 되는 것이니 공업(共業)이라고 한다. 보시(普施)의 개념은 물질적이든 지적(知的)이든 공덕(功德)이든 일체의 부(富)는 공동체에 속하는 부(富)로 보기 때문에 ‘나’에게 있는 부(富)는 일시적으로 나를 경유할 뿐이지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내 것’은 본래부터 아무 것도 존재한 바가 없었다는 이치를 깨달으면 불교에서 무주상보시(無住相普施)와 보시바라밀(普施波羅蜜)을 권장하는 근거를 이해할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0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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