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밝은 것이 있을까?

2009.02.03 02:46

현성 Views:7359

 가을 하늘이 맑고 밝지. 맞아, 가을 하늘이 맑고 밝아. 가을 하늘보다 더 맑고 밝은 것은 없을까?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마음을 깨달았지. 마음이 어떤데?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마음 바탕은 누구나 똑 같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

나의 마음바탕과 너의 마음바탕이 똑 같고, 사람의 마음바탕과 사람 아닌 모든 생명들의 마음바탕도 다 똑 같이 저 가을 하늘보다 맑고 깨끗하게 밝아 신령스럽게 너와 내가 만나, 가까워지고, 하나 되어, 다정하게 웃으며 즐겁게 살아가게 해 주는 주인이라고 했어.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마음바탕이 저 가을하늘처럼 맑고 밝아 깨끗한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야.

그런데 왜 불행한 사람이 많을까? 자살, 살상(殺傷), 가정불화, 희망과 꿈을 잃은 체념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 맑고 깨끗한 마음바탕을 의지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다보면 재미를 느끼고 그 그림에 심취하면서 깊은 상상력이 동원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깊은 애정을 느끼는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리는 그림이 다르다보니 각양각색의 그림이 나오게 되고, 또 비슷비슷한 그림도 물론 많이 나오게 되겠지.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그림 그리는 취미는 없어도 그림을 보고 좋으니 나쁘니,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이렇고 저런 사람이라고 평하고 다니는데 재미를 느끼곤 한다. 이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반복되는 가운데 그림에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고, 일등이다 이등이다 하고 그림들을 분류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일어나는 일들은 처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만 자기의 그림과 자기 인격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관심을 가진 결과 자기 그림과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내 편’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나쁘게 평하는 사람을 ‘적(敵)’으로 보게 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내 편’과 ‘적’의 편으로 갈라놓고 볼 때 화합(和合)은 깨지고 불화(不和)의 골이 깊어져 집단적인 적대 행위로 발전하게 되어 걷잡을 수 없는 현상으로 전개되는 것이 현실세계의 불행한 문제들이다.

이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든 그림을 평가하는 사람이 되었든 ‘자기’라는 사람의 가치와 습관을 바로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지만 그 가치와 자기습관을 바로 보는 사람들은 행복의 길에서 승승장구하게 될 것이다.


‘나’라고 하는 사람의 가치와 습관을 어떻게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일까?

가을 하늘과 같이 맑고 밝은 마음바탕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근본은 전생 금생 미래로 나뉘기 전, 항상 이 자리에 있는 ‘나’이다. 살다가 없어지는 ‘나’도 아니요, 다시 태어나는 ‘나’도 아니다. 저 하늘처럼 항상 여여(如如)하게 바로 이 자리 이 순간에 존재하는 ‘나’이다.

그러면서도 만물을 소생시키는 대지(大地)와 같이 무엇이나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의지처가 되는 바탕이 되기도 하고, 또 남의 그림을 평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은 지울 수도 있고, 다시 그릴 수도 있으며, 고칠 수도 있고 또 완전히 지워버려도 그 바탕은 조금도 변함없이 다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평가하는 것은 평가하는 것일 뿐 그 평이 ‘내 그림’이 될 수도 없고,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도 하나의 평가일 뿐이지, 그 평이 ‘나’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의 평가는 평가로서의 가치는 있겠지만 그 평이 ‘내 그림’이 될 수는 없고 ‘내’가 될 수도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평에 시달리고, 괴로움을 못 이겨 남을 살해하거나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게 되는 착각이 일어나곤 한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가치’관의 오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내 마음이 바로 저 푸른 하늘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고 부르는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되면 어지러운 마음이 평온해지고, 부드러우면서도 넉넉해지게 되면서, 마음바탕의 무한한 가능성의 가치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랑과 미움은 지극히 상반되는 감정이라 미워하기 시작하면 한 없이 미워지지만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을 미워할 리 없지 않는가. 미움과 사랑은 상반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함께 있는 법이니 길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나’의 미워하는 습관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미워하던 마음이 사랑으로 변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습관을 보지 못하면 사랑이 어느새 미움으로 변해 있고, 미움은 원망으로 변해 있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많은 경우, 좋고 나쁜 것은 사람 각자가 이런 것은 좋고 저런 것은 나쁘다고 설정한 하나의 개념이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설정한 개념에 수순하는 것은 좋다고 하고, 그에 맞지 않은 것은 나쁘다고 하는 것은 그 개념 속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이미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스스로 설정한 개념이 좁은 사람의 견해는 항상 편협해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 자주 일어나는 법이고, 넓은 사람은 넓은 만큼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 남이 내 그림이나 인격에 대해 나쁘게 평하면 나쁘게 평할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좋게 볼 때도 있지 않을까 라고 하게 되고, 좋게 평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나쁘게 보일 때도 있을 거야라고 하며, ‘세상일은 다 변하고 변하는 것’, ‘좋은 것이 나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좋을 수도 있는 거야’라고 하며 편안한 사람은 맑고 밝은 자기 마음바탕이 주인이 된 사람이고, 사람들의 평에 웃었다가 울었다가 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린 그림이 주인이 된 사람이다.

스스로 그린 그림이 주인이 된 사람들은 항상 ‘내 편’과 ‘네 편’이 서로 다퉈 불행하게 되지만, 마음바탕이 주인이 된 사람들은 항상 나와 남이 하나 되어 나비와 벌들까지도 함께하는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향기 짙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0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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