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慢) - 오만과 겸손

2008.03.18 20:02

bultasa Views:7642

만(慢)자는 오만(傲慢), 자만(自慢), 교만(憍慢), 거만(倨慢) 등과 같이 앞 글자를 바꿈에 따라 다양한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모두 만(慢)자를 근본으로 해서 상황에 따라 표현하는 의미가 다르게 쓰여지고 있다.

오만의 상대되는 말은 겸손이다. 오만과 겸손은 어떻게 다를까?
사람이 오만하고 싶어서 오만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어서 좋고 나쁜 것이 분명하고, 옳고 그른 것도 분명한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 번 옳다고 생각한 것은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옆에 사람이 보기에는 만자(慢字)가 아주 단단히 붙은 사람으로 비춰진다.
앞 글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예를 들어보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 ‘한국아이가 한국말을 해야지 못하면 되느냐?’ ‘한국사람이 한국사람과 결혼해야 되는 것 아니냐?’ 등등 다양하다.
이러한 경우, 말하는 사람은 옳은 말을 하는 것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심기를 갖게 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하게 어려운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두 사람이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다투기 시작하여 법정까지 가야 하는 경우들이다. 당사자들은 당사자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이 미치는 영향은 결코 당사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겸손이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인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저 분은 나를 위해 있는 것이니 나는 저 분을 잘 위해드려야 한다.’는 이타심(利他心)이 있는 마음이다. 이타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좋다면 나도 좋고, 네가 싫다면 나도 싫다.’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개 내 생각만이 옳다고 하지 않기에 대화가 가능하고 합의점을 찾기가 보다 수월하기에 해결방법이 이분법에서 오는 투쟁적일 수는 없다. 투쟁적이 아닌 것이 평화이고, 평화 속에서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두 사람의 자유와 평화는 그 두 사람의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원천이 된다.

종교의 가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타심을 가지게 하여 자유와 평화를 얻게 하는데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심할 때 교만이 일어나고, 교만은 가정, 사회, 종교의 가치를 상실케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겸손이야 말로 교만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약이다.

불교에서는 반야심경에서 ‘물질은 공(空)과 다르지 않으며, 공은 물질과 다르지 않다.’고 하여 이분법적인 사고를 부정하고 있다. 이분법에서는 물질은 물질이고 공은 공일 수밖에 없지만 불교에서는 물질이 공할 수도 있고, 공이 물질이 될 수도 있다고 하여 현상계를 초월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현대과학에서 물질은 빛으로 화하고, 빛이 엉겨 물질이 된다고 했으니 과학적으로도 이치에 맞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종교적인 의미로 100% 옳은 것도 없고 100% 그른 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옳은 것을 주장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른 것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될 수 있으니 한편에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오늘 옳은 것이 내일 틀릴 수도 있고, 어제 틀린 것이 오늘 맞을 수도 있다. 또 오늘 부자가 내일 가난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제 가난한 사람이 오늘 부자가 될 수도 있으니 매사를 순간순간 주의 깊게 봐야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이미 맹인(盲人)아닌 맹인이 된 사람이라 사정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져 버렸기에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기는 무척 어려운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위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유보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종교단체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우리 한인사회에도 자유와 권리, 즉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누리게 되었다. 이 민주주의에서는 자기중심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의 자유와 인권도 보장되어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평등은 전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후자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불행히도 전자에 치우치는 경향이 심한 것 같다.
겸손한 마음,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지속가능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평등사회를 가꾸어 갈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시카고 한인회와 문화회관 건립추진위원회 간에 의견을 달리하는 불협화음을 들으면서 노파심에서 한 말씀드린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2008.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