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第三十  (하나로 합하는 이치의 모양)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天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 卽不說 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天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 一合相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수보리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미진으로 만든다면 네 생각에 어떠하냐? 이 미진들이 얼마나 많다 하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일 이 미진들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곧 이 미진들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미진들은 곧 미진들이 아니라 그 이름이 미진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도 곧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세계가 실로 있는 것이라면 곧 하나로 합쳐진 모양이니 여래께서 말씀하신 하나로 합쳐진 모양은 곧 하나로 합쳐진 모양이 아니라 그 이름이 하나로 합쳐진 모양이기 때문입니다.”“수보리야, 하나로 합쳐진 모양이라는 것은 가히 말로서 할 수 없는 것이나 범부들이 탐착하는 일일 뿐이니라.”


앞의 제 29장을 설명할 때 “여래如來 약래약거약좌약와若來若去若坐若臥”를 육체가 오고가고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또 하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가 오고가는 것으로 해석하고 또 하나는 보신불과 화신불 혹은 관세음보살로 해석하여 생멸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래자(如來者) 무소종래역무소거(無所從來亦無所去)”를 법신불로 해석하여 불생불멸법이라고 하였다.

이 제 30장도 이와 같은 안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가루로 만든다면 그 가루의 수가 많겠느냐고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물어보고, 수보리가 대답하기를 많습니다. 그러나 만일 가루가 실제로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가루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루는 가루가 아니라 그 이름이 가루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물질적인 면에서 해석할 때 자동차를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완전히 분해하여 놓고 그 각종 부품이 많다고 하겠느냐고 물으면 누구나 많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부품 중에 실제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부품이 있느냐고 물으면 어느 부품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부품은 없다고 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부품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떠한 부품도 곧 부품이 아닐 수 있으니 그 이름이 부품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 장에서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극히 미세한 티끌로 만들어 그 수가 한량없이 많은 티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티끌은 없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미세한 티끌이란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티끌은 없는 법이다. 미세한 티끌이 변하여 티끌이 아닐 수 있으니 그 이름이 미세한 티끌이라고 하신 것이다.

번뇌에 비유하여 설명하면 선남자 선여인의 마음속에서 한량없이 많은 번뇌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번뇌도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번뇌는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번뇌는 변하지 않는 번뇌가 아니니 곧 번뇌가 번뇌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번뇌라고 하신 것이다.

화신불에 비유하여 설명하면 선남자 선여인의 간절한 소망에 의하여 그를 수호하여 주는 화신불도 그 소망에 응하여 많아진다. 그러나 때로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해이하여 지고 나태하여지면, 그 많은 화신불 중 어떠한 화신불도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를 수호하여 주는 화신불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화신불은 곧 화신불이 아니라 그 이름이 화신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보리가 미진에서 삼천대천세계로 말씀을 바꾸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면 곧 하나로 합쳐진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에서 삼천대천세계를 자동차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듯이 자동차에 비유하면 자동차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면 자동차가 고장 나는 법이 없으니 하나로 유지되지만 실제로는 고장이 나므로 하나로 유지되지 못하고 분해하는 경우가 생기니 자동차가 자동차가 아니라 그 이름이 자동차라고 하는 것이다.

내 몸이라고 하는 것도 내 몸이 아니요 그 이름이 내 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내 몸을 해부하여 보면 오장 육부를 비롯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부분도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시간을 다투며 변화하는 부분들을 다시 합쳐 봉합하여 내 몸이라고 하는 형상을 보아도 내 몸이 하나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전과 같은 내 몸은 아닌 것이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약 먹여 주어 야지요, 허리 아프다면 주물러 주어 야지요, 심한 경우에는 수술해서 도려내야지요, 어느 것 하나 내 몸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없는 법이니 내 몸이라고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부부사이의 관계로 설명하여 보면, 부부는 부부가 아니라 그 이름이 부부이다. 왜냐하면 부부 사이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 존재한다면 부부 사이가 완전히 하나로 합쳐졌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그 이름이 부부라고 하는 것이다.  

범부들이 구하는 최상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최상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최상의 깨달음이다. 왜냐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하였다면 법신불과 하나로 합쳐져야 하지만 하나로 합쳐진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므로 그 이름이 깨달음인 것이다.  


일합상(一合相)이라고 하는 것은 가령 예를 들어 설명하면 자동차에 있는 모든 부품을 모두 분해하여 놓으면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또 각기 다른 기능을 하도록 되어있다. 이 각기 다른 모든 부품을 다시 결합하면 하나의 자동차가 된다. 이 각기 다른 부품을 다시 조립하여 하나의 자동차가 되었을 때 일합상(一合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뜻하는 일합상(一合相)은 분해하기 이전의 차와 똑같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이나 빌딩도 빌딩이라는 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부수어서 분해하면 각기 다른 건축자재로 구성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 각기 다른 건축자재를 다시 결합하면 또 하나의 모습을 한 빌딩이 되지만 전과 똑같은 하나의 집이 되지는 않는다. 삼천대천세계를 부셔서 된 미세한 티끌도 티끌 각자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그들을 다시 모아 결합하면 다시 삼천대천세계라는 한 모양을 하게 되지만 전과 똑같은 삼천대천세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이름 아래 볼 때는 모든 국민이 하나로 보이지만 그 내부를 드려다 보면 세계 각국의 인종들이 다 모여서 사는 곳이 미국이다. 인종마다 다른 특성이 있고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면 한국으로 가는 사람 미국으로 들어오는 사람 병원에 가는 사람 죽는 사람 태어나는 사람 등 수 없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 개개인의 변화는 전체 미국이라는 나라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영원한 것이 없으니 미국이라고 특별히 좋아 할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약세계(若世界) 실유자(實有者) 즉시일합상(卽是一合相)”중 실유자(實有者)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있다’라는 뜻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합하여 설명하면 ‘만약 세계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한다면 즉시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가질 것이다’이다. 즉 분해하면 그 구성요소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이들이 모두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하면 전과 똑 같은 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래설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차를 분해하였다가 다시 합쳐 하나로 만들어 한 자동차의 모습을 갖게 하고, 집을 분해하였다가 다시 결합하여 한 집을 만들어 한 집의 모습을 갖게 하고,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서 티끌로 만들었다가 티끌을 다시 합쳐서 하나의 삼천대천세계를 만들어 하나의 삼천대천세계의 모습을 갖게 하였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자동차, 원래의 집, 원래의 삼천대천세계와 똑같이 하나가 된 모습은 아니므로 그 이름이 일합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범부가 수행을 해서 모든 번뇌를 여의고 마음 가운데 있는 법신불과 일치하였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하나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기 어려움으로 그 이름이 일합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합상(一合相)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가설(不可說)한 것이고 다만 범부들이 탐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 일합상(一合相)은 항상 여여하여 변함이 없는 법신불과 완전히 계합하는 것을 말한다. 즉 법신불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법신불과 분리(分離)하였다가 다시 합쳐도 법신불과 한 모습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법신불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은 불가설(不可說)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화신불이나 보신불이 법신불과 일합상이 되었다고 하면 화신불과 법신불은 법신불과 일치하여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니 일합상이 되었다고 하여도 옳지 않고 일합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화신불과 보신불은 법신불에서 나왔으니 일합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합상자(一合相者) 즉시불가설(卽是不可說)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범부가 수행하여 모든 번뇌를 여의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법신과 계합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다고 한다면 그는 아직 일합상(一合相)을 이룬 수행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증득할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다고 하여도 옳은 것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 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합상자 즉시불가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참선 중에 선정에 드는 때가 있다. 선정에 든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자기가 선정에 들 수 있었는지 어떻게 선정에서 나왔는지를 사실대로 표현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숙면에 드는 때가 있는데 어떻게 숙면에 들었는지 숙면에서 나왔는지를 사실대로 아는 사람도 없고 표현하기도 어렵고 재현하기도 어렵다.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선정에 들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선정에 들지 못하고, 그 마음마저 사라졌을 때 선정에 들게 되는 것이고, 잠을 자는 것도 잠을 자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남아 있는 한 잠에 들지 못하고 잠을 자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사라졌을 때 잠에 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합상자(一合相者) 즉시불가설(卽是不可說) 단범부지인(但凡夫之人) 탐착기사(貪着其事)”라고 한 것이다.    

‘일합상이라는 것은 즉시불가설한 것인데 다만 범부들이 탐착하는 일일 뿐이라’고 한 것은 이 제 30장의 결론 부분이다. 삼천대천세계를 다 부셔서 가루를 만들어 그 하나하나를 다 검토하여 봐도 ‘실유자(實有者)’즉 영원히 실제로 존재하는 자는 없는 것이니 착각하여 적은 일이나 부분에 탐착하게 되면 큰일을 저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한 부속품에 탐착하여 그 부속품을 차에서 빼버리면 자동차를 못 쓰게 되고, 집에 한 기둥을 탐하여 빼버리면 집을 못 쓰고, 삿된 사랑에 탐하면 가정에 풍파가 오고, 해야 할 공부 중 한 부분에 탐을 내면 공부 전체가 멀어지고, 수행에 탐을 내도 깨달음이 멀어지는 법이며, 자연자원에 탐을 내니 자연을 오염하여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일단 망가진 것을 후회하고 참회하여 다시 봉합한다고 하여 하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전과 같지는 않는 법이니 처음부터 탐착하지 말고 순리대로 하라는 것이다.

탐착하지 않고 순리대로 한다고 하여도 세계는 변하는 것이고 변하는 세계 속에서 그 변화를 순조롭게 따라가면 자연히 그 변하는 세계 속에 하나로 영입되지만 탐을 내서 구하는 마음이 있게 되면 구하고자 하는 그 대상은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잠을 ‘자야지’ ‘자야지’ ‘자야지’하고 잠에 탐착하면 잠은 점점 멀리 다라 날 뿐이니 잠을 잔다는 생각을 놓아 버릴 때 잠이 오는 것이 이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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