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第二十八  (받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다)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 世界 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何以故 須菩提 以諸菩薩 不受福德故 須菩提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提 菩薩 所作福德 不應貪着 是故 說不受福德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항하강 모래수 만큼의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하고,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일체 법이 무아임을 알아 인욕을 증득하여 이루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는 공덕보다 수승하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모든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습니까?” “수보리야, 보살이 짓는 복덕은 조금도 탐착함이 없이 짓기 때문에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복을 짓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짓는 복은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 복이다. 예를 들면 정주영씨 아들 중에는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있다. 젊은 나이에 죽는다고 하는 것은 불행 중에 불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많고 돈으로 지을 수 있는 복이 많은데 왜 이른 일이 생기는 것인가? 돈으로 짓는 복은 상황에 따라 불행이 행복이 되고 행복이 불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가용 비행기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부자이고 자기 소유의 자가용 비행기를 가졌을 때, 남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자기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또 하늘을 나를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 사고로 추락하여 죽게 되면 그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고 또 무모한 일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부부사이의 문제이고 자녀문제이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영국 왕실의 전통을 깨고 다이애나와 이혼했고 이혼한 다이애나는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왕세자가 무엇이 부족하여 세자 비와 이혼까지 했어야 했을까?  우리는 돈이 없을 때 돈을 벌기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여가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돈을 벌었다고 그 집이 반드시 더 행복한 것도 아니요 돈을 못 벌었다고 그 집이 반드시 더 불행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사례를 참고로 하고 우리들 스스로를 들여다보아도 재물이나 명예나 애욕이 행복의 측도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물이나 명예나 애욕 등을 우리는 내 밖에 있는 경계라고 한다. 이러한 경계를 접촉할 때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우리들 중생의 마음이다. 돈이 남보다 더 있으면 좋겠고, 명예가 남보다 더 높았으면 좋겠고, 애인이 더 예쁘고 훌륭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움직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중생의 마음의 착각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가진 돈이 많아도 남이 나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나는 불만인 것이다. 가령 나는 100만 불짜리 집에서 사는데 나의 친구들은 모두 200만 불짜리 집에서 산다면 내가 사는데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같은 100만 불짜리 집에서 사는데 나의 친구들은 모두 50만 불짜리 집에서 산다면 나는 자만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밖았 경계에 끄달리며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어떤 보살이 항하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일체법이 무아이고 인욕바라밀을 성취한 보살보다 그 복덕이 수승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체법이 무아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가? 일체법이 무아라고 하는 말은 나의 밖았 경계에 있는 모든 존재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무아의 반대인 유아(有我)는 변하지 않고 실재(實在)하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이고, 무아(無我)는 변하지 않고 실재하는 존재는 없다는 의미이다. 일체법무아(一切法無我)는 모든 법이 변하지 않고 실재(實在)하는 존재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돈도 명예도 애욕도 부부사이도 자녀도 시간이 변함에 따라 모두 변하기 때문에 그에 의지해서 행복을 구하는 사람은 유아(有我)라고 착각하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녀들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노인이 된 사람들은 자식에게 의지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흔히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말을 한다. 이것이 바로 “일체법 무아”의 원리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원리를 아는 사람은 곧 지일체법무아(知一切法無我)를 깨달은 사람이다.

돈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돈이 없을 때 일어나는 수치심이나 돈이 있을 때 일어나는 자만심이 일어나는 것을 자재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수치심이라든가 자만심은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참고 지내지만 참는 것은 언젠가는 폭발할 시한폭탄인 것이다. 참지 않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수치심이나 자만심이 일어나지 않게 하도록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으니 있을 때 낭비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없다가도 있는 법이니 없다고 비열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이 일에 나쁜 면도 있을 거야하고 나쁜 면을 찾아보는 마음, 아무리 나쁜 일이 있어도 이 일에 좋은 면도 있을 거야하고 좋은 면을 찾아보는 마음이 있는 한 가난하다고 수치스러운 마음이 일어나거나 부자라고 자만심이 일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있다면 그것은 수행이 잘 되지 않은 탓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여, 있고 없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있고 없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있고 없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은 돈을 벌어도 순리대로 벌지 무리하게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무리하게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여 게을러 거나 부지런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정성을 다하여 돈을 벌려고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자기도 위하고 남을 위하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만사에 참으려야 참을 것이 없는 사람이 득성어인(得成於忍)한 사람이다.

이제보살(以諸菩薩) 불수복덕고(不受福德故)라고 하는 것은 지일체법무아(知一切法無我)하고 득성어인(得成於忍)한 보살은 남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지만 그 과보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보살은 자기 마음 밖에 일체 사물에 대하여 탐착하는 마음이 초월하고 자기 마음의 내에서 너와 나를 구별하는 분별심을 초월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과보도 구하는 마음이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보살의 마음은 자기 내에 존재하는 불성과 계합하여 불성이 갖는 불가사량한 복덕을 이용하는 보살이 된 것이다.


득성어인(得成於忍)은 인욕바라밀을 증득하여 이룬다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참는다는 말을 자주하지만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내가 헬스 스파(Health Spa) 입구에 왔을 때 어떤 노인 부부가 문 밖으로 나오면서 남자가 부인보고, 너 열쇄를 가졌느냐? 부인이, 아니.

남자가, 너에게 주었는데. 부인이, 아니야, 나에게 주지 않았어.  

‘너에게 주었다.’ ‘나에게 주지 않았다’를 되풀이 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어 갔다. 부인의 목소리는 크고 날카롭고 반항적이었고, 남자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고집스러웠다.

어느 쪽도 자기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였지만 양보하거나 참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 때, 내가 참아야지 하고 참는 것이 참는 것이다. 이것은 불법에서 말하는 참는 것은 아니다. 불법에서 말하는 인욕은 인욕바라밀을 의미한다. 참는 것은 자꾸 되풀이 하여 참다보면 참음이 쌓여서 골치가 아프게 되든지 소화불량증에 걸리든지 하는 신경성 질환에 원인이 된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위에서 예를 든 노부부가 서로 자기 주장이 옳다고 말다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짓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어리석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주장을 하다보면 서로가 화가 나게 되어 있다. 화가 나면 감정에 북받치게 되어 여러 가지 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한다. 자기주장을 포기하고 참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 하면 이렇게 참음으로서 여러 가지 심적 육체적 병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참으라고 하는 것은 인욕바라밀을 하라는 뜻이다. 인욕바라밀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다. 인욕바라밀을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려야 참을 것이 없도록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위의 예에서 남편이 부인에게 열쇄를 너에게 주었다고 하면 부인이 나에게 주지 않았다고 하면 남편이 반복하여 너에게 주었다 안주었다고 하며 목소리를 올릴 것이 아니라 그러면 열쇄가 어디 갔을까하고 남자도 부인도 열쇄를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참을 것이 처음부터 생기지 않는 것이다. 참을 일이 처음부터 생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낼 일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사람마다 다른 습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앉은 자리를 잘 치워 놓지도 않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 일에 전혀 관계가 없는 일에 간섭하거나 훈수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남의 허물도 아닌 허물을 꼬집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남 잘되는 것을 보고 비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남의 말을 듣고 근거 없이 사람을 헐뜯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담배나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우리는 아무 실속 없이 자주 남과 부딪치게 되고 화나는 일이 생기게 된다. 화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다투거나 아니면 참아야 한다. 다투는 것도 어리석은 사람의 짓이요 참는 것도 어리석은 사람의 짓이다. 이러한 경우에도 부딪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부딪치지 않는 마음은 내 마음에서 그러한 사람을 평을 하지 않는 마음이다. 내 마음에서 그러한 사람을 평을 하기 때문에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하는 분별심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으면 평을 할 것이 없어져 버린다.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거나 평을 하지 않을 레면 각 사람마다 가진 버릇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하는데서 끝이는 수련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수련을 하게 되면 각 사람이 가지는 흠이 오히려 좋아 보일 수도 있고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참을 것이 없는 인욕바라밀을 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목이 마른데 마실 물이 없다든지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는 때도 있다. 이를 때 목마른데 목마른데 하며 없는 물 타령을 하거나 배고픈 타령을 하면 목이 더 마르고 배가 더 고프고, 참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목마른데 물이 없을 때 레몬이나 오렌지를 먹는 생각을 하면 목마른 것이 없어진다. 배고플 때도 진수성찬을 채려 놓고 자기가 밥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던지 자기가 좋아하는 바나나나 과일이나 떡을 먹고 있는 생각을 하면 배가 고프지 않다. 이렇게 하면 참을 것이 없게 되니 이렇게 하는 것이 인욕바라밀이다.

먼 길이나 산에 오르면서 다리가 아파 걸어가기 힘들다든지, 하기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한다든지, 어려운 직장 일을 해야 한다든지, 힘겨운 사업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경우, 처음에는 참고 하다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해야 하는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 두는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하는 일에 불평만 하고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인욕바라밀은 말할 것도 없고 참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인욕바라밀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시행을 해서 자기 마음에서 인색함을 소멸해야한다. 인색한 마음이나 탐내는 마음을 제거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복잡해지지 않기 때문에 하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이 적게 든다. 둘째로 계를 지켜야 한다. 계를 지킨다는 것은 바르게 산다는 뜻이다. 아침에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고 밥 먹을 때 밥 먹고, 모든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여 자기 마음속에 잔인한 생각들을 소멸하고, 봉사활동을 하여 남의 물건에 탐을 내는 마음이나, 하는 일을 쉽게 성취 하려는 마음이나, 돈을 쉽게 벌려는 엷은 마음들을 소멸하여야 한다. 사람이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고, 밥을 먹을 시간에 먹지 못하면 생활이 무질서 하여지고, 남을 존중하지 않거나 물건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경박하여 마음속이 항상 복잡하여 화가 자주 치밀어, 하는 일을 안정되게 할 수 없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소멸하는 수련을 하면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나는 일 조급한 일들이 소멸되게 되어 마음이 순일(純一)하여 진다. 셋째 자기가 할 일을 뒤로 미루거나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게으른 마음을 소멸하여 부지런한 마음을 기르도록 수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게을러서 일을 성취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고 남이 자기를 도와주지 안에서 자기가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하여 옆에 사람들에게 화를 자주 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 노력하여 게으름이 소멸되고 부지런하여지면 하는 일에 집중력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수행이 선행되면 자기가 하는 일을 다만 할 뿐인 사람으로 변신될 수 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다만 할 뿐인 사람은 먼 길이든 높은 산이든 한 걸음 한 걸음 갈 뿐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갈 뿐인 사람은 아무리 먼 거리도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모두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직 할 뿐인 사람에게는 참을 내야 참을 일이 없으므로 인욕바라밀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은 신앙의 힘을 빌려야 한다.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강한 사람은 부처님에게 맹세코 자기의 서원을 성취하겠다고 약속하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보고 공경하는 마음을 기르고 모든 사물을 부처님의 재물로 보고 귀중하게 대하는 마음을 기르게 되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나 학업 장에서나 하고자 하는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되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으니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지일체법무아(知一切法無我)이고 득성어인(得成於忍)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행하는 사람은 오직 할 뿐이므로 무엇에 탐착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불가사량한 복을 구족하고 있으므로 복을 짓고자 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이 28장에서 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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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금강경]2.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第三十二 (응화는 참이 아니다) 여해 2007.03.01 15606
34 [금강경]2.31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第三十一 (자기 소견을 내지 않음) 여해 2007.03.01 12395
33 [금강경]2.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第三十 (하나로 합하는 이치의 모양) 여해 2007.03.01 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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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금강경]2.27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第二十七 (끊을 것도 없고 멸할 것도 없다) 여해 2007.03.01 13185
29 [금강경]2.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第二十六 (법신은 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해 2007.03.01 11595
28 [금강경]2.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第二十五 (교화해도 교화를 받은 자가 없다) 여해 2007.03.01 11458
27 [금강경]2.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第二十四 (복덕과 지혜에 비교할 수 없다) 여해 2007.03.01 11742
26 [금강경]2.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第二十三 (청정한 마음으로 선(善)을 행하다) 여해 2007.03.01 12143
25 [금강경]2.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第二十二 (가이 얻을 법은 없다) 여해 2007.03.01 12255
24 [금강경]2.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第二十一 (설함 없이 설한다) 여해 2007.03.01 11394
23 [금강경]2.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第二十 (색과 상을 여의다) 여해 2007.03.01 12343
22 [금강경]2.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第十九 (법계를 다 교화하다) 여해 2007.03.01 12016
21 [금강경]2.18 일체통관분(一體同觀分) 第十八 (일체를 동일하게 보다) 여해 2007.03.01 12842
20 [금강경]2.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第十七 (구경에는 내가 없다) 여해 2007.03.01 12513
19 [금강경]2.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第十六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하다) 여해 2007.03.01 12754
18 [금강경]2.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第十五 (경을 수지한 공덕) 여해 2007.03.01 12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