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의 믿음

2008.08.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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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백정의 믿음


열반회상에서 이마가 넓은 백정이 소를 잡던 칼을 내려놓고

“나도 일천 부처님 중의 하나다.”라고 소리 높여 말한 것도

또한 하나의 믿을 ‘신(信)’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涅槃會上  廣額屠兒  放下屠刀

열반회상  광액도아  방하도도

唱言我是千佛一數  亦不出者一箇信字

창언아시천불일수  역불출자일개신자


- 선요, 고봉(高峰) 원묘화상 (1238~1295)


열반회상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열반경을 듣기 위해 사부대중이 모인 장소를 의미하는데, 이곳에 어느 날 이마가 넓은 한 백정이 참여해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후 소의 목숨을 수없이 많이 죽인 그 백정은 부처님께서 그도 부처라는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밤낮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소를 수없이 많이 죽인 자기가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드디어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불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가 바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사리불께서 그 백정에게 모든 사람의 본심은 모두 청정하고 죄가 없는 것이니 지은 죄를 참회하고 복을 지으면 곧바로 청정한 본심으로 돌아가고, 본심으로 돌아가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의 자리이니, 부처님이 그의 밖에 계시다가 그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그에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본심에 이미 상주하고 계시니 그가 현재 이 몸으로 부처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백정은 자기의 어리석은 잘못을 깊이 참회하고 사리불로부터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도둑질 하지 않겠습니다, 등 5가지 계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리불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그가 이 소를 잡아야하는 인연과, 그 소가 자기에 의해 죽어야하는 인연을 깊이 생각하고, 이 악연같이 보이는 이 인연이 서로가 극락으로 가는 좋은 인연이 되게 하여주십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내에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보살펴주는 보시행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소를 잡고 있던 중 문득 큰 깨달음을 얻고, 소를 잡던 칼을 도마 위에 탁 집어던지고, “나도 현겁(現劫)의 일천 부처님 중의 하나다.”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그가 소를 잡는 직업을 갖게 된 원인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왜 자기가 소를 잡아야 하고, 소는 왜 자기에 의해 죽어야하는지 그 원인을 찾고자 일념으로 기도하면서 잡고 잡히는 이 악연이 천상에 태어나게 되는 좋은 인연이 되게 하여 주십사고 자기의 청정한 마음 안에 계신다는 부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매일 같이 마을에 다니며 봉사할 일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 쌓였던 수많은 악업이 하나하나 녹아내리기 시작하여 이제야 비로소 악업이 소멸되고 그의 선한 업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그는 소 잡던 칼을 내려놓고 직업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업력(業力)이라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어도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냄새도 맛도 없는 것이라 인식하기 어려워 무시하기 쉽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자기의 업력에 의해 현재 살고 있는 만큼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에 마음대로 직업이나 생활양상을 바꿀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업력을 바꾸기 위해서는 굳게 믿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선업을 쌓는 좋은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닦아가야 한다. 마치 이 백정이 부처님과 사리불의 말씀을 굳게 믿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그 어려운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고 또 큰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나쁜 짓을 했으면 그 나쁜 짓을 하는 습관을 고쳐 바로잡고 그 대가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많이 함으로서 과거에 지은 잘못의 대가를 치루고, 그 대가를 다 치루고 난 다음부터는 선행(善行)의 공덕을 쌓아 큰 깨달음을 얻어 이 우주가 움직이는 진리를 깨닫고 지혜를 얻어 많은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보살행을 할 수 있다는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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