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지 말라

2008.08.26 23:00

현성 Views:8770

<44> 머물지 말라


마음은 어리석게 과거의 일을 취하지도 말고

또한 미래의 일도 탐착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현재 있는 일에도 머물지 아니하면,

삼세(三世)가 실로 공적(空寂)함을 요달(了達)하리라.


心不妄取過去法  亦不貪着未來事  不於現在有所住

심불망취과거법  역부탐착미래사  불어현재유소주

了達三世悉空寂 

요달삼세실공적


- 화엄경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잘못된 일들을 인연따라 생각하게 되는 습이 있고, 또 그 때 있었던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인연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이 현재 나의 생각과 감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화엄경의 게송에 의하면 그러한 과거사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은 망령된 것이니 취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왜 그럴까?

어떤 사람과 과거에 나쁜 인연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될 수도 있고, 좋은 인연이었다고 하여 지금도 좋은 인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일 수 있다. 그 사람도 시간에 따라 변하고 나도 또한 그러하기에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서로 변했는지는 지금 보고 판단할 일이지, 과거에 비추어서 지금 판단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관례이지만 그것은 오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단을 하는 주체인 나도 항상 불완전한 존재라 어느 정도로 내 판단이 현실에 맞는지는 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과거사에 의지하면 더욱 심한 오판을 내리게 될 것이므로 ‘마음은 망령되이 과거 법을 취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과거 법(法)을 취하지 않을 것이면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도 마음에 안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 그들을 소멸하는 수행을 해 그들을 소멸할 수 있으면 과거로 인해 마음 쓸 일이 없게 되니 과거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오직 고요함만 남게 되니, 과거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에 살아갈 일이나 죽을 때의 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도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고 감정이지만 화엄경에서는 ‘어리석게 미래사에 대해서도 탐착하지 말라.’고 했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과 감정은 현재 나의 생각이고 감정일 뿐 우리는 하루 앞이나 한 시간 앞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미래에 일어날 일이 오늘 우리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헛수고라는 말씀이다. 결코 우리들의 지금 생각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러하니 미래에 살아갈 일을 생각하는 것도, 죽을 때 일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부질없는 일이니 생각할 것이 못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될 때 미래는 공적해지고 아무 것도 없게 되어, 과거와 미래가 공적(空寂)해 지고, 과거와 미래가 공적해지면 자연히 현재도 공적해지게 마련이니 과거 현재 미래 삼세가 공적해지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공적해진다는 뜻은 일체 바라는 마음과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져 공해지고, 공적해진 자리에서는 만물이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무엇을 하더라도 모자람이 없이 그 때 그 자리에 필요한 것은 항상 있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이 된다. 


무위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는 말씀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 하나님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 근심걱정을 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상응하지 아니하고 속으로 숨어버리신다. 그러나 이러한 근심걱정이 제거되어 과거 현재 미래가 공적해지는 마음에서 나투어 일체 해야할 일들을 모두 알아서 처리하신다.

그러하니 우리는 내 앞에 쌓인 일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염려하지 말고 내 안에 쌓여 있는 근심걱정을 어떻게 제거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공적하게 하여 무위자연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문제의 근본이 있다.     


이 게송을 다시 한번 읊어보면,

마음은 어리석게 과거의 일을 취하지도 말고

또한 미래의 일에도 탐착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현재 있는 일에도 머물지 아니하면,

삼세(三世)가 실로 공적(空寂)함을 요달(了達)하리라.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Notice 현성스님의 5분 명구(유익한 경전구절) 해설 bultasa 2007.09.19 23184
56 어디에서 왔습니까 현성 2008.11.07 8755
55 전법(傳法) 현성 2008.11.07 8760
54 언행(言行) 현성 2008.11.07 8771
53 부처를 뽑는 자리 현성 2008.11.07 8818
52 좋은 말(馬) 현성 2008.11.07 8756
51 나를 위해 차맛을 보게나 현성 2008.09.18 8777
50 비유(譬喩) 현성 2008.09.18 8797
49 하늘과 땅이 그 안에 있다 현성 2008.09.18 8771
48 절대의 한 순간 현성 2008.09.18 8783
47 끝없는 공양을 베풀다 현성 2008.09.18 8757
46 마른 똥 막대기 현성 2008.08.26 10394
» 머물지 말라 현성 2008.08.26 8770
44 믿음과 의심 현성 2008.08.26 8791
43 아나율타의 믿음 현성 2008.08.26 8772
42 백정의 믿음 현성 2008.08.26 8771
41 믿음과 불과(佛果) 현성 2008.08.26 8626
40 믿음은 도의 근원 현성 2008.08.26 8735
39 신통묘용(神通妙用) 현성 2008.08.26 9176
38 아난과 가섭 현성 2008.08.26 9353
37 삿된 가르침 현성 2008.08.26 8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