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뽑는 자리

2008.11.07 10:57

현성 Views:8819

 시방에서 함께 모여
 
개개인이 무위의 법을 배운다.
이곳이 부처를 뽑는 장소이며
마음이 공해져서 급제하여 돌아간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동취회  개개학무위  차시선불장  심공급제귀

- 방거사


방거사는 성이 방龐씨이고 이름이 온蘊으로 8세기 중반부터 9세기 초, 당(唐)나라 시대에 마조선사와 석두선사가 선풍을 드날리고 있을 때 거사였다.

방거사는 마조선사나 석두선사가 주석하는 선방에 사방에서 모인 많은 수행자들이 각기 무위(無爲)를 배우기 위해 모였으니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라고 비유했다. 이 부처를 뽑는 과거장에서 무위(無爲)를 배워 익혀 마음이 공(空)해지면 급제(及第)하여 온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무위(無爲)를 배워 익힌 수행자는 공(空)을 얻어 부처가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중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이다. 마음을 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위(無爲)의 도리를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무위(無爲)라 함은 ‘함이 없다.’는 말이다. ‘함이 없다.’는 말은 나 개인의 이기심이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놓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재산(財産)이나 명예(名譽)를 위한 탐욕이나 성욕(性慾)이 지배하는 ‘나’에게서 해탈하여 이들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와 인연된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바라는 마음, 그들과 시비하는 마음, 그들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등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초월하게 됨으로서 이분법(二分法)적인 사고방식에서 불이적(不二的)인 사고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즉 이것과 저것은 다르다는 것이 이분법적인 사고이고, 이것과 저것은 다르지 않다는 사고는 불이적(不二的)이다. 이분법에서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있는 것을 추구하고 없는 것을 싫어하는 사유의 근원이 되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적(不二的) 사유에서는 탐욕을 부려가면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을 깨달은 것이니 무위(無爲)에 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이문(不二門)에 들게 되면 화낼 일이 없어져 평온해지고, 세상의 인연법을 깨치게 되어 일체 만상이 서로 얽혀있어 개별적으로 독립된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기적인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하는 대로 열매를 맺어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요,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란 이치를 깨닫게 되니 현재 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만 열심히 할 뿐으로, 그 결과의 열매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행하는 것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 없다고 하여 무위(無爲)라고 하고, 개인의 이익이나 성욕을 일으키는 마음이 공(空)하였다고 하여 심공(心空)이라 한다. 나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오직 상대방과 나는 인연 따라 이루어진 하나의 공동체이니 그들을 위해 하는 일이 바로 나를 위해 하는 일이 되고 나를 위해 하는 일이 그들을 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命題)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명제(命題)를 체험적으로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있는 인연을 깨달을 수 있을 때 능소(能所)가 없어졌다고 하여 주객(主客)이 없는 경지를 체험한 것이고, 주객이 없으니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이치를 체달하였으니 중생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보살행을 혼신을 다해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이 공해져서 급제하여 돌아간다.’라고 한 의미이다. 


불도(佛道)를 위해 자기 모두를 바치는 것이 스님들의 본분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이 너무나 자유분망(自由奔忙)하여 개개인이 가는 길과 원하는 것이 너무나 다르고 복잡한데다 집착을 선(善)이라는 보자기로 포장하고 있으니 고통의 원인을 찾는 것도,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편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보살도를 행한다는 것이 구호에 그치기 쉬운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위없이 높은 무위(無爲)와 심공(心空)이 결코 무력(無力)한 것은 아니라는 마음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방거사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시방에서 함께 모여

개개인이 무위의 법을 배운다.

이곳이 부처를 뽑는 장소이며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여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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