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가 되고 말이 되리라

2007.09.27 19:01

현성 Views:8633

중국 송나라 때 남전(南泉)큰스님이 열반하셨다. 한 수자가 묻기를, “도를 크게 깨달은 남전(南泉)스님이 죽은 뒤에 어디로 갑니까?”고 물었다. 중국 송(宋)나라 대혜(大慧) 종고(宗杲) 선사(1089~1163)께서 그의 저서 서장(書狀)에서 답하기를 :
      
      동촌작려(東村作驢)하고 서촌작마(西村作馬)하리라. 고 했다. 즉,
      동쪽 마을에 갔으면 나귀가 될 것이고, 서쪽 마을에 갔으면 말이 될 것이니라. 라고 했다.
      
도(道)를 크게 깨달았다고 하면 생사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 분이라고 봐야 하겠다.
생사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업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니, 대혜선사께서 남전선사가 도를 크게 깨달아 해탈하셨다고 보고, 남전스님이 열반하실 때 나귀를 제도하고 싶었으면 나귀 마을인 동촌에서 나귀를 제도할 수 있는 신분으로 태어날 것이요, 말을 제도하고 싶었으면 말 마을인 서촌에 말을 제도할 수 있는 신분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이 말씀은 남전스님이 열반하실 때, 가난한 사람들을 제도하고 싶었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제도할 것이요, 병고자를 제도하고 싶었으면 병고자가 많은 마을에 태어나 병고자를 제도할 것이고, 불교를 포교하기 어려운 지역에 가 불교를 포교하고 싶었으면 그러한 지역에 가서 포교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합한 신분으로 태어나 그들에게 포교할 것이다. 나귀이든 말이든, 병고자든 무지한 사람이든 어떠한 상대도 능히 제도할 수 있는 분으로 태어난다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만일 대혜선사가 남전스님이 도가 높다고 하여도 아직 업장을 다 소멸하지 못하였다고 보았다면, 열반하신 남전스님은 업장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녀 동쪽마을에 가서 나귀가 될 수도 있고, 서쪽마을에 가서 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꼭 나귀나 말과 같은 동물이 아니라 업장이 끄는 데로 인연 따라 어떤 장소에서 연을 만나 태어나게 된다는 의미가 되니, 인과응보의 법칙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모든 업장을 모두 소멸하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인과응보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되니 응보에 따라 연을 만나 태어나게 되니 나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씀이 된다. 이 응보에는 수행상의 근기에 정신적, 영적, 육체적 근기가 모두 포함된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복과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명(短命)하면 중생제도를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할 수 없고, 병고(病苦)로 고통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행을 함에 있어 육체적 정신적 건강 유지도 수행의 일환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참선 수행자가 건강관리 - 음식 섭취, 운동 휴식 등을 소홀히 하는 것은 바른 수행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건강관리 그 자체가 수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몸을 떠나 마음이 작용할 수 없으므로 마음은 항상 몸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몸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들을 수 있을 때 수행을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말하자면 몸이 쉬고 싶다고 하면 쉬어주고, 배고프다면 먹여주고, 비빔밥 먹고 싶다면 비빔밥을, 국밥을 달라면 국밥을 주는 것이다. 몸은 무엇이 부족한지 혹은 많은지를 잘 알고 우리들에게 말을 하는데 우리의 마음이 복잡할 때는 이 몸의 말을 들을 수 없다. 항상 마음을 편안히 가져, 많다고 할 때 줄이고, 적다고 할 때 채워 줄 줄 알아야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 이다. 우리 본래의 마음은 옳고 그른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옳은 일을 하면 잘 한다고 칭찬하여 주고, 그른 짓을 하면 잘못했다고 가르쳐 준다. 우리들의 마음의 습관이 이를 무시할 수도 있고 이를 따를 수도 있는데, 한두 번 무시하다보면 본래의 마음이 무관심해져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반작용은 담배 술 마약 등에서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잘 나타난다. 습관, 업장, 성격이 몸에게만 미치거나 마음에만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공(共)히 미치는 것이니, 마음 수련에 국한하는 수행법보다 마음 수련이 몸의 수련이 되고, 몸의 수련이 마음수련이 되는 수행법이 꾸준하게 지속될 수 있는 수행법이고 수행효율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하면 어느 때인가 반드시 모든 업장에서 해탈하여 내생에 내가 태어나고 싶은 곳에 태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