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21.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법계통화분 제19

2016.08.25 07:55

현성스님 Views:2495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第十九

(법계를 다 교화하다)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 多不 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 甚多 須菩提 若福德 有實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 無故 如來 說得福德多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써 복을 얻음이 많다 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써 복을 얻음이 매우 많습니다." "수보리야, 만일 복덕이 실로 있다면 여래가 복덕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않지만 복덕(에 실다움)이 없으므로 여래가 복덕 얻음이 많다고 말하였느니라."

한문으로 된 경(經)을 한글로 번역하였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한문의 비(非)와 무(無)는 긍정과 부정 양면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한글은 긍정과 부정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문으로 비(非)가 있을 때 ‘아니다.’ 라고 번역될 수도 있고, ‘아닐 수 있으리오.’라고 번역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금강경을 공부하는 독자는 아상(我相)을 가진 중생이나 금강경 내용은 아상을 여읜 보살이 주로 묘사됨으로 아상이 있는 중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제19품 법계통화분에서는 부처님께서 보시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보시 공덕으로 받는 복덕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마음가짐에 따라 유루(有漏)복일 수도 있고, 무루(無漏)복일 수도 있다. 유루복은 물이 세는 독에 담긴 복과 같다. 이를 테면 마음에 10악(惡)의 때가 있으면 나와 남을 분별하는 상(相)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지을 때 마다 복(福)이 세나가기 때문에 유루복을 짓는 다고 한다.

그 예로서,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즉 이 하늘에 가득한 일곱 가지 보배를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다면, 이 인연으로 많은 복을 받는다고 수보리가 부처님께 대답하고, 부처님께서는 만약 보시하는 시주 자가 자기가 보시하는 공덕으로 받을 복덕이 실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시주 자가 받는 복덕은 유루(有漏)복이 된다. 그러므로 여래(如來)는 그가 받는 복덕이 많다고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보시하는 시주 자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한 공덕으로 받을 복덕이 실로 있다고[복덕(福德) 유실(有實)]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어,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하시지 않았을까?

이 시주 자에게는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라는 보시물(物)이 있고, 그 보시물을 받는 사람이 있다. 즉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는 물건이 있다. 일반적인 중생의 마음이다. 중생의 마음에는 베푸는 ‘나’라는 상(相)이 있고, 받는 ‘너’라는 상(相)이 있으며, 주는 물건이 칠보(七寶)라는 상(相)이 인연된 복덕이다.

상(相)이 인연된 복덕은 그 연(緣)이 있는 동안 지속되다가, 그 연(緣)이 멸하면(다하면) 복덕도 함께 멸(滅)하는 자연법칙의 속성이 있다. 따라서 여래께서 시주 자가 자기가 보시한 공덕으로 받을 복덕이 유실(有實), ‘실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받을 복덕은 많다고 하지 않느니라. 고 하셨다.

여래께서 다음 문장, 以福德 無故 如來 說得福德多, 시주보살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받는 복덕은 없다[以福德 無故] 고 한다면 여래는 그가 받는 복덕이 많다고 한다고 했다.

어떠한 이유로 여래께서 ‘받을 복덕이 없다.’ 고 한 보살은 많은 복덕을 받는다고 하셨을까?

‘받을 복덕이 없다’고 하는 보살의 마음가짐은 시주하는 ‘나’도 없고, 나의 시주를 받는 ‘너’도 없고, 칠보라는 시주 물도 없다고 하는 마음이다. 어떻게 이렇게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보살은 이미 ‘나’아님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부처님의 인연법을 통달하신 보살이다. 즉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가 없으면 ‘나’도 있을 수 없으니, 나는 칠보와 다를 수 없고, ‘너’가 없으면 ‘나’도 없으니, ‘너’와 ‘나’는 다를 수 없다. 다를 수 없으니, 모두가 하나이다. 모두가 하나인데, 주는 자가 어디 있으며, 주는 물건도 받는 사람도 어디 따로 차별해서 존재할 수 있느냐. 내가 내 것을 나에게 준 것인데, 받을 복이 어디 있겠는가? 즉 대아(大我)는 ‘참 나’이고, 소아(小我)는 ‘참 나’가 아니다. 마치, 오른 손이 왼 손에게 준 것을 가지고, 그 공덕을 따지는 것은 우습다.

이 보살에게는 ‘나’라는 상(相)도 없고, ‘너’라는 상(相)도 없으며, 칠보(七寶)라는 상(相)도 없는 보살이다. 이러한 상(相)이 없는 보살의 마음은 십악(十惡)의 업(業)의 때가 완전히 씻어지고, ‘너’와 ‘나’를 분별하는 의식이 끊어져 좋다, 싫다, 옳다, 그러다, 취하겠다, 버리겠다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 일체를 하나로 알고, 불편하고 어려운 곳이 있으면 사랑과 자비로 모두가 편안히 살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보살이므로, 이 보살은 복을 지어 쌓이기는 해도, 세지 않는 무루(無漏)복을 짓는 보살이다. 이러한 복을 짓는 보살의 마음이므로,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하신 것이다.

항간에는 기복(祈福)신앙이라는 말이 있다. 복을 빌다, 복을 구하는 종교라는 말이다. 복을 빌고 구하는 행위를 미신(迷信), 미혹한 믿음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성스님은 복을 빌고 구하는 신앙 활동은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알고 있다. 믿고 빌고 구하면, 반드시 믿고 빌고 구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법이다. 믿는 마음이 깨끗한 마음인가, 복잡한 마음인가, 남을 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인가, 지극 정성으로 믿는 마음인가, 등 빌고 구하는 사람의 마음의 문제는 있다. 그렇다고 불교가 기복신앙이라고 일률적으로 폄하하는 언행은 악업을 짓는 행위이다.

지극 정성으로 믿고 빌고 구하는 것은 반드시 모두 이루어지는 자연 법칙이 있다. 자연 법칙이란

무엇인가?

자연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과(因果)법이다. 현재까지 발전한 모든 과학 문명과 인류 문화는 모두 지극 정성으로 믿고 빌고 구하는 마음, 생각, 언행으로 발전된 모습들이다.

기복(祈福)은 작복(作福)으로 이어지게 된다. 부처님께 복을 빌고 구할 때는 부처님께 향 꽃 초 공양미 등을 올린다. 이러한 신앙생활이 성숙하게 되면 이웃과 잘 지내고 베푸는 봉사를 하게 된다. 이 봉사가 작복이다.

기복과 작복은 같이 간다.

무조건 복을 빌고 지으려 하기보다, 복을 빌고 짓는 이치를 알라고 조석예불, 법회 등에 참여하고, 경전 공부를 권한다. 이치를 알고 짓는 복덕이 이치를 모르고 짓는 복덕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고 설한 것이 금강경 제8장 의법출생분이다.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금강경 사구 게만이라도 수지 독송하는 복덕에는 미칠 수 없다고 하시고,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은 부처가 된다고 설한다. 경전 속에 부처가 되는 이치가 있음을 설하신다.

제19품 법계통화분에서는 적극적인 작복(作福)을 설하신다. 복을 짓는 행위 중에 ‘나’라는 상(相)을 가지고 짓는 복과 ‘나’라는 상(相)이 없이 짓는 복덕의 차이를 설하신다.

‘나’라는 상을 가지고 짓는 복은 연(緣)을 따라 짓는 복이므로 유루(有漏)성 복이라 연(緣)이 다하면 복도 다하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에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복과 지혜가 필요하다. ‘나’라는 상을 가지고 짓는 복은 유루성 복이라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혜를 조금도 계발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그러나 ‘나’라는 상(相) 없이 하는 보시는 무주상보시라고도 하는데, 무루(無漏)성 복, 큰 복을 지을 뿐만 아니라, 사상(四相)을 여의는 수행으로 무분별지(無分別智) 지혜를 증장시키는 복을 겸하므로 성불(成佛)도 가능해 진다.

이러한 이유로 본 품의 제목을 법계통화분이라 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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