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18.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23 정심행선분

2016.09.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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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第二十三

(청정한 마음으로 선법(善法)을 행하다)

復次 須菩提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修一切善法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그리고 또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이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한다.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수자(壽者)도 없는 마음으로 써, 일체 선(善)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證得)하리라.

수보리야, 선법(善法)이라고 말하는 바는 여래가 곧 선법이 아니라고 하시고 그 이름이 선법(善法)이다."라고 하셨다.

구경무아분 제17에서 "실무유법 불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實無有法 佛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라고 할 만한 법이 실로 아무것도 없다. 고 했다. 그리고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第二十一에서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 수보리야, 법을 설한다고 하지만 설할만한 법은 없다. 다만 법을 설한다고 할 뿐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수보리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第二十二에서는,

須菩提 白佛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無所得耶 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乃至無有小法可得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가 부처님께 묻기를, "그러면 부처님께서 위없이 높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이 됩니까" 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옳다 옳다. 나는 위없이 높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등한, 바른 깨달음 뿐만 아니라 끝내 조그마한 법도 얻은 것이 없었느니라. 이것을 위없이 높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등한, 바른 깨달음이라고 하느니라." 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는 중생은 정각(正覺)을 얻었어도 "얻은 것이 조금도 없다"면 정각(正覺)을 위해 수행한다는 것이 허무하지 않느냐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으니, 어떠한 이유로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하는지 제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에서 설명한다.

본문을 다시 보면,

復次 須菩提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修一切善法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그리고 또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이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한다.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수자(壽者)도 없는 마음으로 써, 일체 선(善)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證得)하리라.

수보리야, 선법(善法)이라고 말하는 바는 여래가 곧 선법이 아니라고 하시고 그 이름이 선법(善法)이다."라고 하셨다.

시법(是法): 이법. 부처님께서 위없이 높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는 법.

시법 평등 무유고하 是法 平等 無有高下, 부처님께서 정각(正覺)하여 얻은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는 말씀은 일체 법에는 위 아래, 넓고 좁음, 길고 짧음, 예쁘고 추함, 좋아하고 싫어함, 친하거나 미워함, 불안과 편안, 등 일체 분별심을 일으키는 상(相)이 없으니 무상(無相)이니 평등하고, 얻고자 하거나 버리고자하는 욕심이 없으니 무주(無住)로써 평등하고, 보시를 많이 해 공덕을 지었다는 생각이나, 어떤 수행 계위를 통과했다는 생각이나, 어떤 중생을 고통에서 해탈케 했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무념(無念)이니 평등하다. 이것이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이다. 현성스님이 비유해 보건데, 깨닫고 보니 모든 법은 대기(大氣), 공기(空氣)와 같이 텅 비어 있어, 높고 낮음 없이 평등하니 얻은 것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설법할 것도 없느니라.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名 아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無相), 무주(無住), 무념(無念)이 되어 일체 법에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한 마음이 되었을 때, 곧 위없이 높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다.

제5품에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와 같은 뜻이다.

다음에 이어서, 무상(無相), 무주(無住), 무념(無念)에 들기 위해서는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로 써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무아(無我)는 무아상(無我相)의 준말이다. 사람에게는 눈 귀 코 혀 몸으로 밖았 세상을 보고 듣고 냄세 맛고 맛보고 몸으로 체감하는 기능이 항상 작용한다. 이 때, 그 대상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내가 그러한 모양을 가진 것을 좋아 한다 혹은 싫어한다고 하여 그러한 아상(我相)이 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순리(順理)로 가지려 하지 않고 무리(無理)하게 가지려 할 때, 아집(我執) 혹은 집착(執着)이라 하고, 집착은 모든 병(病)의 원인이 된다. 모든 병의 원인은 집착이고, 집착의 원인은 아상이니, 아상(我相)을 여의면 무병장수하는 여래가 되어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한다는 것이다.

무인(無人)은 무인상(無人相)의 준말이다. 내가 남편에게, 부인에게,자녀에게,부모에게,학교에서,사회에서,국가에서 무엇인가 나를 위해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있을 때,다른 사람으로 부터 바라는 것이 있는 모습이라 하여 인상(人相)이라 한다.바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실망을 하거나 화를 내는 수준이 되면 불안,공포,좌절,우울증이 되고, 그 수준이 넘어서면 신경질환, 폭력, 살인, 자살, 전쟁 등으로 발전하는 원인이 되며, 본인에게는 감정적인 불안 요소가 되며,마침내 육체적 심적 병의 원인으로 발전 될 수 있다.모든 화(火)의 원인은 인상(人相)에 있다.화를 멀리하기 위해서는 인상(人相)을 여의어야 한다.인상을 여의기 위해서는 남에게 바라는 마음,기대하는 마음을 여의는 것이다.남에게서 나를 위해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기대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무인상(無人相)이라 한다.

무중생 無衆生은 무중생상의 준말이다. 사람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이 중생심(衆生心)이다. 이 마음 중 가장 지독한 것은 개인 이기심(利己心)이다, 잘 된 일은 내가 한 것이라고 공덕을 세우고자하고, 잘 못된 일은 남을 탓하는 마음이다. 좋은 것은 자기가 가지려하고 바쁜 것은 남에게 선심을 쓰는 마음도 있다. 남을 정복하여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자기 뜻대로 부려 먹으려는 마음, 양반과 쌍놈이란 사회 계급을 만들어 쌍놈을 부려 먹는 제도, 남존(男尊) 여비(女婢) 사상을 만들어 낸 마음, 흑인 노예제도, 전쟁과 식민지 정책, 원한(怨恨)을 품고 복수하려는 마음,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 정책 등 많은 사회적 불안 요소를 담고 있는 마음들이 중생상(衆生相)이다. 중생상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려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다.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둔다는 인과법(因果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작용하는 것이니 일체 이기심에서 일어나는 중생상을 여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바라는 것이 없고 기대하는 법이 없는 무주(無住)로 들어가야 한다. 무주하면 무중생상이 된다.

무수자 無壽者는 무수자상의 준말이다. 이것도 중생의 공통된 마음이다. 중생심에는 어떠한 지위에 있든 잘 나갈 때 잘 나가는 일이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 하는 사업이 항상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바라는 마음의 상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한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세상사는 모두 수많은 무엇과 연(緣)하여 일어나는 연생(緣生)이고, 연생한 것은 그 연의 변화에 따라 그 형상은 필멸(必滅)한다. 그렇지만 ‘참 나’와 그간에 지은 ‘업(業)’이 인(因)이 되어 연(緣)을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참 나’와 그간에 지은 ‘업(業)’이 인(因)이 되어 무수한 연(緣)을 만나 연생(緣生), 연멸(緣滅), 연생(緣生)을 반복하는 것이 우주의 법이고, 부처님께서 이 법칙을 연기법(緣起法)이라 하셨다. 즉 연기법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에 집착하지 않는 무상(無相), 바램에 머물미 없는 무주(無住), ‘내가 했다’, ‘나는 한다’ 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무념(無念) 수행을 하는 것이 마음의 때를 지우는 청정(淸淨) 수행이고, 일체선법(一切善法)을 닦으라는 것은 금생에 복과 지혜 한 없이 닦아 좋은 연(緣)을 많이 그리고 잘 짓는 길이, 오래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없는 무수자상(無壽者相)을 이루는 길이다.

수일체선법 修一切善法,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육바라밀을 다함없이, 조건 없이 닦으라는 뜻이다. 보시바라밀은 남을 위해 한 없이 베풀되 상을 내는 마음 없이 하라는 말씀이다. 상(相)을 내지 않고 조건 없는 보시는 첫째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빚을 갚는 행위이고 빚을 다 갚은 후에는 복(福)을 짓는 선행(善行)이 된다. 둘째 보시바라밀은 육바라밀 전체를 아우르는 바라밀이다. 지계 바라밀은 나에게 이롭다고 남의 생명, 재물, 정(情)을 해(害)롭게 하지 말라. 오히려 내 생명, 재물, 정(情)과 같이 그들의 것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바라밀 수행이다. 인욕바라밀은 남이 나를 해(害)칠 때, 미움 증오(憎惡) 복수(復讐)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나를 탓하는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고, 그를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 하는 자비심을 일으키는 마음이 인욕바라밀이다. 정진바라밀은 모든 중생이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일과 안할 일을 바르게 알아 모든 중생을 보호하고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하되 노력한다는 상이 전혀 없이 하는 것이 바라밀이다. 선정바라밀은 정념(正念)수행으로 마음에 쌓여 있는 업(業)의 종자를 청정(淸淨)히 하여 잡념이 없는 고요한 선정에 들어 진여불성과 접하되 진여불성과 접하였다는 생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바라밀이라 한다.

지혜바라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바라밀까지의 수행은 모두 복(福)을 짓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선정이 이루어 지면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접하게 된다. 진여불성은 무량(無量)한 자비심으로 이미 원만구족하여 있어 자재(自在)하게 반야바라밀의 묘행(妙行)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도움에 부족함이 없는 반야바라밀이다.

즉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수자도 없는 나로써 일체 선법을 닦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곧 위없이 높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평등한, 바른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證得)하리라.

이 말씀은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의 마음으로 써 일체선법,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바라밀을 다함 없이 닦으면, 반야 바라밀, 지혜 바라밀이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면 지혜바라밀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바라밀을 닦는 일, 작복(作福)하는 일, 불사(佛事)를 돕고, 작복하는 불사는 반야바라밀 지혜를 증장하는 불사를 돕는 상자(相資)하는 관계가 이루어 진다. 구경에는 즉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하게 될 것이다.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 즉비선법 시명선법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소위 선한 법이라는 것은 여래에게는 선한 법이 아니다. 선한 법이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

중생의 마음에는 착한 마음도 있고 착하지 않는 마음도 있다. 그것은 중생의 마음에는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는 분별심, 차별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래의 마음에는 분별하는 마음이나 차별하는 마음이 없는 무상(無相), 무주(無住), 무념(無念)의 고하(高下)가 없는 평등한 마음이다. 따라서 중생의 선법은 여래의 선법은 아니다. 다만 편의상 선법이라고 할 뿐이다.

이 시점에서 금강경 전체적으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중생의 마음에는 내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가 불안할 때, 내가 불행할 때, 남을 탓하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다. 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남을 탓하는 한, 불안이 소멸될 수 없고, 원한을 풀 수 없고, 불행을 면할 수 없으며,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금강경의 사상(四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논리라는 점이다.

즉 나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을 탓하기 전에, 내 마음을 살펴보라는 것이다. 모든 행불행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다. 나의 마음 안에 있는 진상(塵相)을 찾아 소멸하여, 청정(淸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청정한 마음을 갖기 위해 나의 잘못을 참회하고, 업장소멸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바라밀을 한 없이 닦아 수일체선법 (修一切善法)을 하여도 선을 행한다는 마음, 바라는 마음 없이 하게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전5바라밀을 닦는 것이 지혜바라밀이 일어나게 하는 길이고, 또 지혜바라밀이 일어나게 되면, 전5바라밀을 도와 작복(作福)하는 바라밀을 돕고, 작복바라밀은 지혜바라밀을 도와 상조(相助)하는 인연이 작용하게 된다. 이 상조하는 인연으로 결국에는 복과 지혜를 겸비한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중생의 행복을 위해 베풀 수 있는 선법(善法) 묘행(妙行)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복(福)의 종자는 다음 생애도 연을 만나 발아(發芽)한다 는 말씀이 무수자상(無壽者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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