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법회 순서>:

<02월 21일 일요법회>: 회주 현성스님 집전

<건축불사>: 불문회와 광민베트남 절,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법등불사>: 김승한거사님, 김하나보살님, 이재광거사님, 함영조보살님, 홍정숙보살님, 최성만거사님, 송수진보살님, 영미 도날드보살님, 현성스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만등불사>: 안현하보살님, 이현준거사님, 이현수거사님, 이현정거사님, 최혜민보살님, 최동민거사님, 마익 뮤러, 시드니, 잭 뮤러,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떡공양>: 정법연행보살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과일공양>: 조성열거사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100일 관음기도>: 작년 11월 22일 입제한 100일 관음기도, 오늘 회향하였습니다. 기도에 동참해 주신 모든 신도님들 소원성취하시고 아름답고 희망찬 새해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7*7 신중기도>: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원만히 봉행하기 위해 신중님들의 가호를 청하는 신중기도를 모시겠습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수고하시는 모든 신도님들께 신중님의 가호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며, 천용들과 성현들이 이 도량에 강림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9회 불타예술제는 5월 7일 토요일, 부처님오신 날 봉축법회는 5월 8일입니다.

신도님들의 이해와 협조하에 부처님의 광명이 온 누리에 충만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문병>: 패어만트 양로원에 계시던 묘운심 박병란보살님이 완쾌하시어 2월 18일 양로원에서 퇴원하여 아파트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신도님들의 염려와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 * * * * * * * *

법문 마침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수행으로

존귀하신 부처님께 예경하나이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수행으로

고귀한 달마에 예경하나이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는 수행으로

수승한 승가에 예경하나이다.

저의 선업공덕으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나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오랫동안 머물기를 기원하나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第十

(정토를 장엄하다)

佛告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昔在然燈佛所 於法 有所得不 不也 世尊 如來在然燈佛所 於法 實無所得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 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須菩提 譬如有人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 爲大不 須菩提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묻기를,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옛적에 연등불(燃燈佛)이 계시는 곳에서 법을 얻은 적이 있느냐?』『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불(燃燈佛)이 계시는 곳에서 실로 아무런 법도 얻은 바가 없습니다.』『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보살들이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느냐?』『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장엄이 아니므로 장엄이라 이름하나이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꼭 이렇게 청정한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색(色)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고, 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아무데도 머무는 바 없으면 그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느니라.』『수보리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須彌山)왕 같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몸이 크지 않겠느냐?』『엄청나게 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런가 하오면, 부처님께서는 몸 아님(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비신)을 큰 몸이라 이름합니다.』

법문 - 현성스님 2016.02.21.

오늘 배울 금강경 제10품의 제목은 “장엄정토분”입니다.

금강경 “얻은 바도 없고 설한바도 없다는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第七]” 제7품과 유사한 점이 많아 지난 주에 제7품을 다시 설명해 드렸습니다.

제10품에서는 연등불이 계시는 곳에서 부처님께서 연등불의 설법도 듣고 수기도 받고 했는데 이 사실은 정한 법이 있는 것 아니냐, 부처님께서 법을 취한 것이 아니냐고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은다.

수보리가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연등 불소에 계실 때, 실로 어떠한 법도 얻은 바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셨다.

어떻게 해서 연등부처님이 계시는 곳에서 부처님이 어떠한 법도 얻은 바가 없었다고 했는가 하면 여래께서 연등불을 뵙기 이전에 이미 불생불멸의 반야정지(正智)에 계셨기 때문이다. 반야정지에 있지 않으셨다면 연등불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반야정지에 있었으므로 연등불의 말씀을 듣고 바로 이해하고 옳다고 공감하신 것이다. 연등불의 말씀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께서 이미 반야정지에 계셨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연등불의 설법에서 부처님이 새롭게 얻은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반야정지에 계셨다는 반야정지는 무엇인가?

여래께서 이미 청정하시어 어떠한 대상을 보드라도 그의 현상에서 상 아닌 상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이미 열려 있었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고, 집착심이 없음으로 바라는 마음,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탐진심(貪嗔心)이 일어나지 않고, 좋아하고 싫어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선정에 드신다. 이 때 보살은 일체 상에서 상 아닌 것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문이 열여 있다.

상에서 상 아닌 것을 본다함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꽃이나 나무, 어떤 사람이나 동물에서 “이것이 이 꽃이다.” 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그 무엇을 그 자체의 성품이라고 하여 이 꽃의 자성(自性)은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꽃도, 나무도, 사람도 동물도 자체가 아닌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 구성요소도 끝없이 변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어 어느 것이 ‘나’라고 할 수 있는 성품이 없다. 즉 ‘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람이라는 요소는 티끌만큼도 없고 모두 물, 바람, 땅, 열 등 사람 아닌 것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구성원조차도 찰나 찰나 변하여 어느 순간의 사람이 ‘나’라고 주장할 만한 것도 없다. ‘나’라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나’라는 상은 원래 자성이 없어 허망한 것이다. 내가 어리석게 세운 ‘나’라는 상이니 허망하다. 즉 ‘나’라는 상에서 상 아닌 것을 보면 무아상(無我相)이다. 이와 같이 ‘나’라는 상을 세우지 않으면 ‘너’와 나는 별개의 둘이 되지 않음으로 불이(不二), 무인상(無人相)이 되며, 중생과 나와의 관계도 별개로 존재하는 둘이 되지 않음으로 무중생상(無衆生相)이 되며, 삶과 죽음에 있어서도 별개의 둘로 나누어진 삶과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으로 무수자상(無壽者相)이 된다. 이와 같이 상이 없는 ‘나’가 되려면 ‘나’가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나의 업(業)이 완전히 소멸되어야 아상(我相)이 전환하여 무아상(無我相)이 된다. 아상(我相)의 업을 소멸하여 무아상이 되는 것이므로 무아상은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불가취(不可取)라고 했다. 그리고 아상에서 무아상으로 가는 경로가 ‘나’라는 상을 일으키는 업을 소멸하는 것이다. 그 업을 소멸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음으로 업을 소멸할 수 있는 일정한 법이 없다. 즉, 불가취(不可取) 불가설(不可說)이다.

그리고 법(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법이란 내가 대상을 보고 듣고 냄세 맞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인식작용도 모두 법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 나의 경험에 의해 나의 마음속에 저장된 정보가 현재 생각 속에 나타나 작용하는 것도 법이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이런 저런 걱정을 하는 것도 법이며, 눈, 귀, 코, 혀 앞에 나타난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일어나 집착하고, 욕심내고, 화내고, 말과 행동으로 이어가는 것도 모두 법이다. 이러한 모든 법(法)은 모두 개인이 어떠한 업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법이다. 이와 같은 분별심을 일어키는 일체 업을 완전히 소멸하였을 때 분별심이 없는 마음, 무분별심(無分別心)이 된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라고 표현한 반야바라밀의 마음이다.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춰보고”라고 한 것은 무분별심에서 일어나는 지혜, 무분별지(無分別智)가 작용한 것이다. 이와 같을 때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반야정지(般若正智)라 부른다.

사람마다 업에 의해 나오는 법은 업을 소멸한 청정한 반야정지(正智)에 의해 보면 법이 아니다. 즉 비법(非法)이다. 그렇다고 법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으니 비비법(非非法)이다.

금강경에서는 업에서 나오는 법은 현상세계를 어지럽게 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칠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나는 법이므로 업장 소멸하여 반야정지(正智)를 현실세계에 구현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

반야정지(正智)는 수행을 통해 모든 분별심이 있는 업장을 소멸하고 나면 상(相)에 자성이 없음을 알고 상 아닌 상(相)을 보게 된다. 즉 상에서 상 아닌 것을 보고, 상 아닌 것에서 상을 볼 수 있는 지혜가 나타난다. 상과 상아님이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므로 상에서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음이 보이고, 옴도 없고 감도 없음이 보이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이 보이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반야정지(正智)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체험하는 명상이 삼매, 선정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이다.

다음 문장에서 “부처님께서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했다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라고 수보리에게 물어 시고,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하였다는 것은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이라고 수보리가 대답했다.

“불국토를 장엄”하는 방법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중생들이 생각하는 불국토 장엄이다. 그것은 법당을 짓고 탑을 세우고, 도량을 장엄하고, 사경불사, 기도불사, 독경, 공양, 예경, 찬불가, 도량을 장엄하기 위한 보시 등 다양하다. 이러한 장엄은 장엄한 바가 있는 장엄이다.

수보리가 말하는 “불국토를 장엄한 바 없는 장엄”은 아래에서 설명한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청정한 마음을 낼지니라. 모양이나 색깔에 탐해서 마음을 내지도 말고, 소리 냄세, 맛, 촉감, 법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낼 지니라. 집착함이 없으면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느니라.”라고 청정한 마음, 닦을 것을 말씀하셨다.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둘째 장엄은 절에서 신도들에게 금강경 및 여러 경전 공부, 염불, 참선, 기도를 장려하여 ‘나’라는 상을 소멸시키기 위해 업장소멸을 하게 한다. 업장소멸을 하면 ‘나’다 ‘남’이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러다, 내가 했다, 너는 못한다, 나는 너보다 잘났다 등 일체 분별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이러한 분별심이 없으니 ‘나’라는 상은 ‘나’라는 상이 없는 ‘나’로 바뀐다.

‘나’라는 상이 없는 ‘나’, 무아상(無我相)으로 나타날 때, ‘나’는 ‘나’라는 자성(自性)은 일체가 ‘나 아닌 것’임을 인식하게 된다. 전체 우주법계, 태양, 물, 공기, 지구, 지구상에 있는 일체 중생 등 자연과 인류 문화와 문명 등 인연에 영향을 받은 복합적인 성품을 ‘나’는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즉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 나타나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모두 인연덕분임을 알고 인증하고 그 인연들에게 감사하고 공경하는 보살이 되고자 한다. 모든 인연들에게 분별하는 마음 전혀 없이 누구에게나 한 결 같이 평등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어야 상대를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과 같이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즉 무아상(無我相)을 생활상에서 단련하는 과정이 있게 된다. 이 때 이 보살이 있는 곳은 오로지 이 보살로 말미암아 불국 정토가 실현되어 장엄된다. 이것은 세간적인 불국정토 장엄이 아니므로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라 하고, 신불토(身佛土), 신불국토(身佛國土) 장엄이라 한다.

셋째 장엄은 신불토(身佛土) 보살이 일체 중생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는 보살행을 계속하면서 참선수행 중 심일경성(心一境性), 마음이 경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경계의 성품, 본질에 한결 같이 가지런히 함에 따라 그의 원대한 원력과 공덕이 깊어진다. 공덕이 깊어짐에 따라 미세한 업장마저 모두 소멸되어 항상 여여(如如)한 청정심이 나타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체 중생을 공경하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고자 하는 원력과 공덕이 더욱 깊어져 간다. 그에 따라 그 과보로 조건 없이 모든 중생들에게 베풀 수 있는 능력, 오안(五眼) 사지(四智)와 같은 지혜가 나에게 본래부터 있었던 불성(佛性)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이 지혜와 중생공경 인연공덕 덕분으로 아뇩다라삼먁 삼보리를 이루어 나의 모든 원력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국토 장엄이므로 장엄이 아니라 이름이 장엄이라 했다. 이러한 장엄을 심불토(心佛土), 심불국정토(心佛國淨土) 장엄이라 한다. 내 마음이 청정하면 온 국토가 청정해 진다는 원리이다.

그 다음 단락에서, 수보리야 비유해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산 중에 산인 수미산과 같이 크다면 그 사람의 몸은 크다고 할 수 있느냐고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묻고 수보리가 대답하기를 대단히 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몸 아닌 것을 큰 몸이라 하셨습니다. 라고 했다.

수미산은 자신이 크다고 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크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에 32상 80종호가 있는데 그 상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수많은 생을 통해 수행한 공덕의 과보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상호에 대해 중생들이 위대하다고 하는데, 수보리 너의 생각은 어떠냐고 수미산에 비유해서 간접적으로 묻었다. 수보리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신 적이 없음으로 그 이름이 위대한 몸이라고 했다. 바다가 깊어도 바다가 나는 깊은 바다라고 하지 않았고, 허공이 광대하여도 허공이 광대하다고 한 적이 없다. 바다나 허공이 아닌 사람들이 깊고 광대하다고 한다. 부처님과 같이 크게 깨닫고 실천하는 보살은 자신이 깨달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지에 가지 못한 중생들이 자기 업대로 깨달은 사람을 크다거나 작다고 평가한다는 말씀이다.

불국토 장엄을 위해, 시카고 불타사에서는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자.

그동안 부처님을 조성하고 부처님을 모시고 법회와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불사를 하고, 그 법당 안에서 법회, 사경, 기도, 독경, 염불, 공양, 찬불가 등 신도님들께 필요한 세간적 불국토 장엄을 해 왔다.

2003년부터는 신불토(身佛土) 장엄과 심불토(心佛土) 장엄을 위한 인재양성을 했다. 이를 위해 선학원, 불교대학, 동방대학으로 학원 이름을 바꾸어 가며, 30개월, 2년 반 과정을 원만히 이수하신 신도님을 수사(修士)로서의 자격을 인증하고 어린이법회, 청소년법회, 청년법회, 그리고 일반법회에서 스님을 도와 법회진행에 참여하게 했다. 그리고 2010년 5월 30일, 100일 백중기도 입제 때에, 10,000일기도 목표를 세우고 제1회 100기도를 시작했다. 이 기도에서도 스님을 도와주시는 기도 보조원이 동참하였고, 2014년 8월 10일, 100일 백중기도 회향 때까지, 제17회 1700일 기도 (4년+100일) 동안 스님을 보조해 주셨고, 현성스님이 주지 직을 이임함에 따라 저녁기도도 수사님들과 더불어 원만 회향 하였다.

이와 같이 어떠한 가치로도 따질 수 없는 신불토(身佛土), 심불토(心佛土) 장엄에 동참한 수사님들의 공덕에 현성스님은 늘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나무 관세음보살 현성 합장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494 2016.04.17. 불타사 일요 법회 공지 사항 심광@바라밀 2016.04.18 2488
493 2016.4.17.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이상적멸분 제14 - 3/4 현성스님 2016.04.18 2532
492 2016.04.10. 불타사 일요 법회 공지 사항 심광@바라밀 2016.04.12 2749
491 2016.04.03. 불타사 일요 법회 공지 사항 심광@바라밀 2016.04.12 2416
490 2016.4.10.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14품 2/4 현성스님 2016.04.11 2589
489 2016.4.3. 현성스님 법문 - 일체유심조 현성스님 2016.04.08 3057
488 2016.03.27.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14품 1of4 현성스님 2016.03.29 2492
487 2016.03.27. 불타사 일요 법회 공지 사항 심광@바라밀 2016.03.26 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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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 2016.03.06.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11품 및 부처님 오신날 현성스님 2016.03.07 2549
483 2016.02.28.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3-1 및 신중기도 현성스님 2016.02.29 2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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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 2016.02.14.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7품-1 및 법등회의 현성스님 2016.02.16 2511
480 2016.02.07.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9품 및 망년회 현성스님 2016.02.10 2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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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2016.01.24.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7품 및 구정제사 현성스님 2016.01.24 2517
477 2016.01.17.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제6품 및 성도재일 현성스님 2016.01.17 2738
476 2016.1.10. 현성스님 법문 금강경 5품 및 성도재일 현성스님 2016.01.10 2508
475 2016.1.3. 현성스님 법문-금강경 4품 및 신년 마지 기도 현성스님 2016.01.04 2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