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지동귀지(止動歸止) 지갱미동(止更彌動)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니 그침이 다시 두루 움직이더라.


우리가 욕망이나 망상을 쉬게 하기위해 참선수행을 한다. 한 생각을 쉬게 하면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나 번뇌나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본 게송 11에서 이렇게 움직였다 사라지고 다시 움직이는 수행과정을 가지고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니 그침이 다시 움직이더라.’ 라고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앞 구절에서 일종평회(一種平懷)하면 민연자진(泯然自盡)한다. 즉 일종(一種)으로 바로 지니면 없어짐이 저절로 다하리라고 한 것이 곧 지동(止動)의 의미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들이 수행하는 방법부터 살펴보자.


움직이는 생각을 멈추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염불 - ‘옴마니반매훔’, ‘관세음보살’, ‘신묘장구대다라니’, ‘반야심경’ 등을 반복해서 외우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을 외울 때마다 마음을 집중하여 외우면 딴 생각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렇게 염불하는 동안 마음집중이 잘되면, 집중력이 길러진다는 의미이고, 염불하는 동안 다른 생각이 침투하는 것을 경험하면, 좀 더 빠른 속도로 외우면 다른 생각이 들어오는 것이 차단되며 집중력이 길러진다.


2) 간화선 - 화두를 잡고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을 냄으로서, 그 의심이 다른 생각을 차단하게 하는 방법이다. 화두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분심(忿心)을 냄으로서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화두는 자기가 간절하게 원하는 의문이 있을 때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분심이 일어난다. <예 : 중생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즉 화두는 다른 생각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패막이가 될 때, 화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집중력을 길러주는 방편이다.


3) 생각을 관하는 법 - 단전을 마음의 중심으로 삼고 고요히 앉아 있노라면, 어떤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 때, 그 생각을 막으려고 하지도 말고, 왜 오는가, 어디에서 오는가? 등 어떠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그 일어나는 생각을 바라만보고 있는 법이다. 바라만보고 있으면 그 생각이 꼬리를 내리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장난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보는 나는 생각을 일으키면 안 되고 다만 바라만 보는 ‘나’가 되어야 한다.

번뇌와 망상이 많이 일어나는 사람은 그것들이 일어나는 것을 제어하는 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니, 제어작용을 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스님은 이를 자각식(自覺識)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내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마음, 자각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능동적으로 그리고 의지적(意志的)으로 스스로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자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면 번뇌나 망상이 일어날 때 바로 인식하여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불교 용어로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바라만 보는 수행이다. 마음속에 저장되었던 모든 번뇌가 스스로 솟아나게 하여 털어버려 더 이상 솟아나는 번뇌도 없고 털어버릴 것도 없는 자리에 이르면 그 곳이 바로 불생불멸의 본래의 자리이다. 이 관법(觀法)이 지관(止觀) 중 관(觀)에 해당하는 것으로 요즈음 위빠사나로 알려진 선(禪)이다. 반대로 지관(止觀) 중 지(止)는 간화선(看話禪)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마타선으로 알려진 선이다. 묵조선(黙照禪)은 위빠사나선의 변형이고 간화선은 사마타선의 변형이라고 생각된다. 묵조선과 간화선은 중국 송대(宋代)에 시작된 것이고, 사마타선과 위빠사나선은 부처님 당시에 이미 있었던 수행법이다. 현대 미국사회에 맞는 선풍(禪風)이 불었으면!!!

수행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위 세 가지 방법을 겸수(兼修)할 것을 권한다.


우리들의 수준에서는 지동(止動), 번뇌의 움직임을 멈추면 또 번뇌가 일어나고, 그 움직임을 멈추면 또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것을 지갱미동(止更彌動), 즉 그침이 다시 움직이게 된다. 라고 해설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지동귀지(止動歸止)의 귀지(歸止)는 적정(寂靜)한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지동귀지(止動歸止)는 번뇌의 움직임을 멈추어서 적정한 곳으로 돌아가면, 즉 ‘모든 번뇌를 쉬어서 본래부터 평온한 고요한 자리로 돌아가면’ 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지갱미동(止更彌動)은 그 고요한 곳에서 다시 두루한(큰) 움직임이 일어난다. 즉 세속적인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출세간적(出世間的) 지혜의 움직임이 두루 일어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즉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응당 머무는 바 없으니 그 마음이 일어난다.’ ‘그 마음’은 이 구절의 앞 구절에서 나오는 ‘청정한 보살의 마음’이다. 보살이 응당 머무는 바가 없으니 청정한 지혜로운 마음이 일어난다. 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머무는 바가 없다는 것은 구하는 바가 없다는 말이고, 구하는 바가 없는 마음이 지동귀지(止動歸止)의 고요한 마음으로 해석한다. 구하는 마음이 없는 고요함에 들어가 보니 내 안에 모든 것이 이미 구족하여 있음을 깨달았으니 편안함을 얻은 자리가 귀지(歸止)의 지(止)라고 해석된다.

다시, 움직임이 멈추어져 멈춤으로 돌아가니 멈춤에서 다시 큰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움직임은 바라는 마음, 구하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이고, 이 마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불만스런 마음, 화내는 마음, 원망스런 마음 등의 움직임이다. 이러한 마음은 우리들의 마음에 저장되어 있는 업(業)에 따라 증폭될 수도 있고, 감소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수행을 통해서 ‘일종평회(一種平懷)하여 민연자진(泯然自盡)하라’ 한대로 하여 편견(偏見)을 떠나 중도(中道)에 안주(安住)하면 마음이 고요하게 될 것이니 지동(止動), 움직임이 멈추어진다. 움직임을 멈추었다고 해도 또 다른 움직임이 솟아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나, 만법(萬法)이 이미 나에게 구족하여 있음을 깨달았으니 전혀 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평온하고 고요한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 자리를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여 귀지(歸止)라 한다고 했다. 즉 해탈(解脫)하여 능소(能所)가 없는 세계에 든 것이다. 일종평회(一種平懷)가 되어 중도(中道)에 들면 능소(能所)가 없는 세계에 들게 된다.


지갱미동(止更彌動)은 능소(能所)가 없는 본래의 고요한 자리에서 ‘다시 크게 움직임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이 움직임은 베풀고자 하는 자비심이다. 앞의 마음의 움직임은 분별심이 있는 구하는 마음의 움직임이고, 미동(彌動)의 두루한 움직임은 무분별지(無分別智)로 천지만물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므로 그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라고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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