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일종평회(一種平懷) 민연자진(泯然自盡)

    일종(一種)으로 바로 지니면 없어짐이 저절로 다하리라.


일종(一種)은 제9절의 유연(有緣)과 공인(空忍)이 양극(兩極) 같이 보이지만 실은 같은 하나의 종자라는 말이고 평회(平懷)는 이와 같이 바르게 품는다는 말인데, 품는다는 말은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유(有)와 공(空), 즉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바르게 생각하며 활용하면 유(有)와 공(空)이 양극(兩極)이고 별개라고 인식한 마음이 민연(泯然), 즉 힘을 잃고 저절로 다 없어져 버린다는 말씀이다. 반야심경에서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한 것도 여기에서 일종(一種)이라고 표현된 것과 같은 뜻이다. 이해를 하고 마음에 새기면 유와 공, 즉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관계가 한 성품에서 나온 것이니 저절로 다 없어진다는 말이다.

이 뜻을 이렇게 바꾸어 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유(有)와 공(空)을 상대적으로 보는 우리의 습성(習性)을 고쳐서 유(有)와 공(空)의 중도(中道)를 보고 중도에 처할 수 있는 성품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있다고 생각하여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점점 욕심을 내다보면 생각 밖에 재앙이 기다리고 있고, 부모가 계신다고 의지만 하고자하면 생각 밖에 자신의 무능이 대기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을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없애주기 위해 색(色)이 공하였다고 하고, 부모를 의지하는 마음을 없애주기 위해, 법이 공하였다고 하는 것이지, 그 사물이 없다거나 부모가 안 계신다는 말이 아니다. 또 내가 공(空)하였다는 것도 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때 묻은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구하는 마음을 가진 내가 없다는 말이고, 부모를 의지하기만 하려는 마음을 가진 내가 없다는 말이다. 유연(有緣)에 집착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는 업을 짓는 사람에게 유연이 공하였다고 하고, 유연이 공하였다고 허무주의에 빠져 체념하는 사람에게 삶에 의욕을 갖게 하기 위해 공(空) 또한 공하였다, 혹은 공에 머물지 말라고 했다.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여 공과 색이 일종(一種)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있으면서 공하고, 공하면서도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과 얼음은 일종(一種)이다. 이것이 불교의 또 하나의 존재론이다.

나는 부모 복이 없다, 공부를 못한다, 돈이 없다, 여자 복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나는 부모 복이 있다,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돈 복도 있다, 여자 복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하기에 양극은 양극이 아니요 일종(一種)이라 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좋을 수 있는 기분이요, 기분이 좋은 것도 또한 나쁠 수 있는 기분이다. 좋고 나쁜 것은 양극이지만 하나에서 나오는 마음이니 일종이다.

우리의 마음, 감정, 육신, 명예, 재산, 사람 등 일체가 그렇게 존재한다. 명예도 인연에 의해 있는 것인데 있다고 생각하면 오만에 빠져 액운이 기다리니, 없다고 생각하면 액운을 피하게 된다. 명예는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보면 나에게는 명예가 없는 것이다. 명예란 없는 것이나 공복(公僕)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므로 명예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하므로 만사가 없다고 보면 있는 것이요, 있다고 보면 없는 것이니, 있고 없음을 바르게 새기고 활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므로 색과 공이 일종(一種)이라 했다. 

이 구절에서 지향하는 바는 있는 것이 좋다고 그에 집착하지도 말고, 없는 것이 나쁘다고 짜증내지도 말라. 양변이 다 재앙의 원인이 되니 없는 것 속에서 있는 것을 보려고 하고, 있는 것 속에서 없는 것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될 때, 있고 없는 것이 하나로 마음속에 바르게 새겨져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일종평회(一種平懷)라고 했다. 어느 것에도 의지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모든 것이 화평하여 저절로 형통(亨通)하게 되는 지극한 도가 있다는 말씀으로 해석한다. 즉 있고 없는 것은 서로 반대되고, 대립적이고, 또 양극이 될 수도 있지만 이들을 자세히 보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니 이를 바르게 새겨 지니고 활용하면 양극이고 대립적인 관계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여 결국 하나가 된다고 했다. 이 예로서 빈부(貧富)의 차가 극심하여 양극상태가 되었더라도, 이를 완화하면 양극에서 대립적인 관계로, 더 완화하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는 서로 다른 상반(相反) 관계가 성립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난한 사람과 부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다.  

 없을 때 없음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좋은 점을 볼 줄 알고, 있을 때 있음으로서 생길 수 있는 나쁜 점을 찾아 볼 수 있으면 있고 없음이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니 이 둘을 하나로 새길 수 있는 마음이 된다고 했다. 이러하니,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성질을, 공부 못하는 학생이 잘 할 수 있는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알라는 뜻도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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