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미생적란(迷生寂亂) 오무호오(悟無好惡)

    미혹하여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느니라.  


고요하다거나 산란스럽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미혹하기 때문이고, 좋은 것도 없고 미운 것도 없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다는 생각이나 나쁘다는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번 씩 일어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나 이는 우리들이 미혹하기 때문이고, 이치를 깨닫고 보면 좋아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다는 말씀이다.


미혹할 미(迷)와 깨달을 오(悟)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들의 감정이 외부조건에 의해 기뻐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며, 고요해지기도 하고 산란해지기도 하는 것이 미혹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누구로부터 선물을 받아서 기쁘고, 누가 갚을 돈을 갚지 않아서 감정이 상하고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 자녀가 공부를 잘하여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었을 때 부모로서 기쁜 일이고, 공부를 못하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면 기쁜 일이고, 못 벌어오면 답답한 일이다. 이 구절에서는 이러한 모든 감정적인 일들은 미혹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고, 깨닫고 보면 좋아할 것도 없고 싫어할 것도 없다는 말씀이다.

고요할 적(寂)에는 편안하다는 의미가 있고, 어지러울 란(亂)에는 불안하다는 의미가 있다. 편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는 기복(起伏)이 심할수록 더 미혹한 것이고, 불안함이 없는 편안함은 깨달음이 있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감정의 기복이 심할수록 양변(兩邊)에 치우치게 되는 것이고, 기복이 없을수록 양변이 공(空)해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심한 것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날카로운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어떠한 경우가 생겨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별로 없을 때는 어지러운 감정이나 불안한 감정을 별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감정이 이와 같이 작용하므로 게송 29)에서 ‘일공동량(一空同兩) 제함만상(齊含萬象) 즉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똑같이 다 포함한다.’고 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양쪽이 공해버리면 ‘오무호오(悟無好惡)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다.’가 되는 것이니 일체만상을 가지런히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는 너무나 이기심이 강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이러한 도인(道人)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과거에 심어진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현재의 일들은 또 어떠한 형태로도 변해가는 것이니,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관심을 가질 때, 잘 되어간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고, 잘못 되어간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깨달은 사람은 일체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깨달은 것이니 외부 조건에 의해 감정이 좌우되지 않으니 어떠한 형상(形象)에도 고요함이나 산란함을 느낄 리가 없다. 형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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