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막축유연(莫逐有緣) 물주공인(勿住空忍)

    유연(有緣)에 쫓지도 말고 공인(空忍)에 머물지도 말라.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감에 있어서는 연(緣)이 있어야 현상을 유지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며,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연이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데 연을 쫓지 말라고 한 것은, 연이 사리에 어긋남에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도덕 불감증이 있는 사람이 연을 쫓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씀이다. 예를 들면 돈은 필요하고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리에 어긋나거나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돈버는 연을 추구하지도 말고, 명예에 집착해서 연을 추구하지도 말며, 무엇에나 집착해서 연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자본주의 혹은 실용(實用)주의를 주장하며 사리에 어긋나도 상관하지 아니하고, 도덕률에 어긋나도 상관하지 아니하고, 다만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대만 혈안이 되면, 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런 연(緣)을 쫓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돈이든 명예든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副作用)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사는 것일까?

이기적으로 부(富)를 축적하는 것을 사람들이 자본주의라 했는데 요즈음에는 실용주의라고 말을 바꾸어 부르지만 이렇게 발전되어 가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인류 역사상 16, 17, 18세기의 사상적인 배경, 그리고 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은 모두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권리’라고 하고, 이 권리는 사리(事理)나 도덕률에 앞서는 것이라는 서양사상에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이익을 추구하는 양대 세력을 형성하게 되고, 이 세력들은 1, 2차 세계대전을 유발시키지 않을 수 없는 흐름을 낳았고, 동시에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시대적인 흐름으로 빈부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산업발전을 위한 자연 파괴, 강물과 바닷물 그리고 공기의 오염이 극심해지는 등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와 자연훼손 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특히 부익부(富益富)와 빈익빈(貧益貧)의 사회문제는 기존의 사리(事理), 도덕 그리고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를 싹트게 하고, 가난한 일반대중이 이 사상운동에 참여하게 된 세계적인 사상 전쟁으로 발전하게된 것이다. 한국의 6·25 동란이 바로 이 사상 전쟁의 비참한 산물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말미암아 국가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정착하게 되고, 환경오염에 대한 정화운동이 함께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현재 미국에서 누리고 있는 노인복지 및 의료해택이 전 국민의 공생(共生)을 원칙으로 하는 사상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제도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세금을 부담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니, 불교적인 시야에서는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보시하는 공덕, 즉 복을 짓는 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 그 자체도 현대판 사회봉사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직업 활동에 의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직업 활동은 지속될 수 없으며, 지속되는 것은 그 직업 활동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지표(指標)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유연(有緣)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신심명에서 연(緣)을 쫓지 말라는 말씀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연을 쫓는 마음은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악업을 지을까 두려워 연(緣)을 추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되도록이면 모든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연을 추구하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공인(空忍)에 머물지 말라는 말씀은 공(空)에 의지하거나 공에서 무엇을 바라지도 말라는 말씀이다. 앞 구(句)에서 막축유연(莫逐有緣), 즉 있는 연을 쫓지 말라고 했으니 연을 쫓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어차피 모든 것은 항상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연(緣)이 다하면 없어지는 것인데 무엇에 연연할 것이 있고 할 일이 있는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또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참아서 공에 빠지게 하는 것, 즉 단공(斷空)에 빠지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반야심경에서도 오온(五蘊)이 공하였다고 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도 없고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도 없다고 했으니,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라고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 공에 머무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일어날 때, 그 일어나는 생각조차 꾹 참아 공(空)에 머물게 하는 것이 공인(空忍)이다. 이러한 공인에 빠지게 되면 허무주의(虛無主義)에 빠져서 살 의욕마저 잃게 되는 현상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공인에 머물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공사상과 제법무아(諸法無我) 법문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를 막기 위한 말씀이다.

앞에서 유연(有緣)을 쫓지 말라고 한 것은 사람이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 의지하거나 바라는 것이 있게 되면 그들의 변역(變易)에 무지해지고 또 자신의 변이(變異)에도 무지해지기 쉬우므로 자기 발전에 장애가 된다. 예를 들면 자기 부모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부모가 변해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 자기가 변해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의지만 하려고 한다. 이들에게 의지하거나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자신이 살기 위해 찰나 찰나에 자신과 자신의 주변 변화에 스스로 상응(相應)하여 자기 변화를 가져와 그들에 맞게 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함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비우게 하고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게 하기 위해 부모도 공(空)하였다는 뜻으로 반야심경에서 무색성향미촉법이라 하고, 자신도 공(空)하였다는 뜻으로 무안이비설신의라 하였으니 오온(五蘊)이 공하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부모를 의지하지도 말고, 자신의 욕망을 의지하지도 말고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라고 했다. 이 때, 반야바라밀다는 유식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의 체(體)이고 불생불멸하는 본래의 모습이다. 연을 따르되 때 묻은 마음으로 대하지 말고 깨끗한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이 공 도리이다. 즉 공(空)하게 하라는 말은 자신을 공(空)하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때(垢)를 공(空)하게 하라, 즉 없애버리라는 말로 해석하면 공인(空忍)에도 머물지 말라는 말씀이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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