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송

卽依此三性 立彼三無性 즉의차삼성 입피삼무성

故佛密意說 一切法無性 고불밀의설 일체법무성


곧 이 3성(性)에 의해 저 3무성(三無性)이 정립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밀의(密意)로 일체법이 무성(無性)이라 설(說)하셨다.


즉의차삼성(卽依此三性)의 즉(卽)은 ‘곧’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라는 뜻이고, 의차삼성(依此三性)은 이 ‘삼성에 의해서’ 인데 삼성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즉의차삼성(卽依此三性) 입피삼무성(立彼三無性)은 곧 이 삼성에 의해서 저 삼무성(三無性)이 정립(定立)된다고 했다.

변계소십성은 제7식이 8식에 의지하여 일으키는 심상(心相)이 자기 혹은 자기 것이라고 집착하여 여러 가지 득실(得失)을 따지는 계산이기에 그 심상(心相)에는 자성(自性)이 없고, 또 오감관에 비춰진 사물을 제7식이 8식에 저장된 과거 경험에 의지해 만든 심상(心相)에 집착하여 희비고뇌(喜悲苦惱)의 감정을 일으키거나 손익(損益)을 따지는 계산이기에, 이 심상도 실재하지 않은 허상(虛相)에 집착하는 것이므로 변계소집성에는 불변하는 고정된 성품이 없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성은 무성(無性)이라 한다고 했다.

이 무성(無性)에서는 현재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이 쓰는 마음은 변계소십성이니 반드시 고쳐야 하고 또 고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서의 무성이고, 개혁(改革)되어야 할 성품이 무성(無性)이니 반드시 개혁될 수 있다는 의미로서의 무성(無性)이다. 

의타기성은 인연법에 인(因)인 주체의 성품은 주체 자신만으로 자신을 알 수 없고, 또 주체 자신만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오직 연(緣)인 타(他)에 의지함으로서 자신의 성품을 의식할 수 있고, 또 그 연(緣)에 의해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서 무엇인가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주체는 객체에 의해, 객체는 주체에 의해 항상 변화됨으로 인해 의타기(依他起)할 수 있음으로 그 결과 자체도 항상 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고정된 의타기의 자성(自性)이 없으니 의타기성은 무성(無性)이라고 했다. 

의타기성의 무성은 주체인 ‘나’는 항상 자신과 상대를 바르게 관찰할 줄 알아야 하고, 그 관찰의 결과 나 자신을 위해, 상대를 위해, 어떤 결과를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면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서의 무성이다. 무성(無性)이란 고정된 성품이 없다는 뜻이니, 못 고칠 성품이 없고, 결과적으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서의 무성이고, 연을 따라 자신을 고침으로서 무엇이라도 창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법성게에서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여 자기성품 고집 않고 인연 따라 이루어지니,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이라 한 뜻이다.

원성실성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스스로 드러내지는 자성이 없다. 제6 의식이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선근(善根)의 종자에 의지해 제7 말나식이 하는 변계소집성을 소멸함으로서 드러나는 법이니 실상(實相)은 변계소집성을 어느 정도로 정제(淨制)했느냐에 따라 드러나는 상이 다르다. 그러므로 원성실성 홀로 주제할 수 있는 자성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원성실성도 무성(無性)이라한다.

원성실성이란 이런 것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성상(性相)이 없다고 한 것은 수자(修者)가 의지하고 집착할 수행의 대상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으니 없다고 할 수 밖에 없고, 없다고 하고 무심코 앉아 있으면 코앞에 나타나니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니 무성이라 했다. 

일체만법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의타기성(依他起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삼상(三相)에 의해 나타나는데 이 삼상(三相)이 모두 무성(無性)이라고 했다.

고불밀의설(故佛密意說) 일체법무성(一切法無性)

이와 같은 이유로 일체법은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삼성(三性)으로 설명되는데 이 삼성이 모두 무성이니 일체법도 무성이라는 것을 부처님께서 암시적(暗示的)으로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이 삼무성(三無性)설은 반야심경에서 설한 공(空) 도리에서 설명되는 것과 같다. 이 삼무성설도 공(空)도리에서와 같이 두 가지로 설명된다.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니 집착할 것이 못 된다는 의미도 있고, 무성(無性)이니 끝없는 발전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들의 창의력이 무한하고 행복의 한계도 끝없다는 의미도 된다. 이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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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유식30송 제19송 由諸業習氣 二取習氣俱 前異熟旣盡 復生餘異熟 Bultasa 2009.03.05 12503
14 유식30송 제22송 故此與依他 非異非不異 如無常等性 非不見此彼 Bultasa 2009.03.05 11246
13 유식30송 제29송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粗重故 便證得轉依 Bultasa 2009.03.04 10917
12 유식30송 제25송 此諸法勝義 亦卽是眞如 常如其性故 卽唯識實性 Bultasa 2009.03.05 10893
11 유식30송 제20송 由彼彼遍計 遍計種種物 此遍計所執 自性無所有 Bultasa 2009.03.05 10671
10 유식30송 제30송 此卽無漏界 不思議善常 安樂解脫身 大牟尼名法 Bultasa 2009.03.04 10577
9 유식30송 제21송 依他起自性 分別緣所生 圓成實於彼 常遠離前性 Bultasa 2009.03.05 10553
8 유식30송 제26송 乃至未起識 求住唯識性 於二取隨眠 猶未能伏滅 Bultasa 2009.03.05 10333
7 유식30송의 개요 Bultasa 2009.03.04 10294
6 유식30송 제24송 初卽相無性 次無自然性 後由遠離前 所執我法性 Bultasa 2009.03.05 10274
5 唯 識 三 十 頌 (한문) Bultasa 2009.03.04 10078
4 유식30송 제27송 現前立少物 謂是唯識性 以有所得故 非實住唯識 Bultasa 2009.03.05 10052
3 유식30송의 대의 Bultasa 2009.03.04 9978
2 유식30송 제28송 若時於所緣 智都無所得 爾時住唯識 離二取相故 Bultasa 2009.03.05 9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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